무겁지만 아름다운 우리 인생

❀tiny mini flowers❀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by Autumnlim

어제는 토요일이었다. 출장을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원래는 목요일에 비행기로 돌아오는 출장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비행기 회항으로 이틀에 걸쳐 총 9시간 차를 타고 금요일에 집에 돌아오는 스펙타클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은 좀 쉬어야겠다 싶어 약간의 집안일을 하며 집에 있었다. 그러다 잠깐 아이들을 만나고 올까 하고 목걸이 만들기 세트를 챙겨 나갔었는데, 만나지 못했다. 너무 해가 쨍쨍할 시간이라 어딘가 들어가 있는 건지 보이지 않았고, 저 멀리 보이는 아이들도 일을 하느라 바빠 보였다. 사실 나도 해가 이렇게까지 뜨거울지 생각을 못하고 (나오기 전에는 구름이 있었는데 나오니까 구름이 걷혀서 해가 쨍쨍했다.) 모자도 안 쓰고 나와서 눈이 매웠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나갈 타이밍을 계속 보았지만 결국 나가지 못했다. 챙겨 놓은 가방을 식탁 의자에 놓아두어 계속 눈에 밟혔다.


4월부터 저녁을 먹은 후 뭉개지 말고 바로 일어나 산책을 하기로 남편과 약속을 했다. 그래서 요즘 최소 30분씩 산책을 하고 있다. 오늘은 산책을 나가는 김에 아이들에게도 잠깐 다녀오려고 바지 주머니 한쪽에는 판박이 스티커를, 다른 한쪽에는 물티슈를 챙겨 넣고 나섰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 이제 아이들한테 가볼까 싶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교회 고등부 우리 반 학생 S를 만났다. 운동을 가려고 나왔다고 했다. 요즘 진로 고민이 많은 시즌이라 그런지 S는 우리를 보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진로에 대한 질문을 늘어놓았다. 청소년이 먼저 고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꽤 귀한 일이라 최선을 다 해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10년 정도 먼저 살아보니 이런 부분들은 최소한 있어야 하더라, 그 외에 다양한 길도 있단다, 너무 지금의 결정이 네 인생의 전부를 결정한다고만 생각하진 말렴.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으로서는 어쩌면 뻔한, 나도 10여 년 전에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비슷하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왜 어른들이 그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었다. 그래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내가 살아온 20대와 S가 겪을 20대는 많이 다르겠지 싶어 마치 내 말이 정답인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와 다른 20대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남편도 거들며 현실적인 조언들을 몇 가지 건네주었다.


S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정말 그 또래에 꼭 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고민들이었다.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학과를 고를 수 있냐는 것이다. 이걸 고르자니 저게 걱정되고 저걸 고르자니 이게 걱정된단다. 안정된 일을 하고 싶은데 AI 때문에 앞으로 일자리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고민상담을 chat-gpt와 많이 하고 있다며 요즘 베스트 프렌드라고 하는 S를 보며 참 나 때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이런 생각이 들다니 흑흑...)


대학을 가는 대신 이건 어떨까요? 저건 어떨까요? 하며 이것저것 대안을 이야기하는 S에게 어떤 길도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네가 도피로 선택하는 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길을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면 응원하지만 대학에 자신이 없어서 이건 좀 쉬워 보여서 가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길이라고 했다. 고민이 가득한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는 S는 말랑 찹쌀떡 같았다. 때가 묻지 않은, 좋은 어른의 보호 안에서 예쁘게 자라온 그런 하얗고 보드라운 말랑 찹쌀떡 말이다. 이 나이 때 아이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수함이 예뻤고, 걱정이 되었다. 언젠가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충분히 영글지 않았을 때 급하게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지금껏 보호 속에 살다가 이제야 알게 되는 세상의 여러 모습들이 많은데, 너도 늦게 알았으면 좋겠다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오래도록 때가 타지 않게 지켜와 준 부모님과 어른들께 감사하며. 동시에 거친 길 위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도 생각이 났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맨 몸으로 겪고 있을까 싶었다.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주머니에 든 스티커를 보여주며 '아이들한테 스티커 붙여주러 같이 갈래?' 하고 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아이들이요?' '어디에서요?' 하고 물었다. '그냥 요기 앞 길거리 아이들한테 가는 거야. 스티커 붙여주면 좋아하거든.' 대답해 주니 신기하다며 같이 가겠다고 따라왔다.

어쩐 일인지 낯익은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도 내가 처음인 것 같았다. 가끔 애들이 한 번 싹 바뀌던데 근무 지역을 바꾸는 건지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를 한 건지 아니면 더위에 동네 사람들이 나와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를 기억하고 나도 기억하는 두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콧물을 질질 흘리며 떠돌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스티커 붙여줄까?' 하니 아이는 나를 쳐다봤다. 주위 잔디에 앉아 있던 어른들 몇몇이 '스티커 붙여준대! 알겠다고 해!' 하면서 아이 등을 떠밀었다. 아이는 부끄러운지 무서운지 어른의 다리 뒤로 몸은 반쯤 숨기고 엉거주춤 손을 뻗어 대충 스티커를 한 장 골랐다. '어디에 붙여줄까?' 하니 손을 내민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한 명을 붙여주고 있으니 다른 아이들이 몰려왔다. 열댓 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와서 자기도 붙여 달라고 했다. S에게 스티커 좀 나눠주라고 했다. 아이들은 스티커를 골라 와 내가 붙여주기를 기다렸다. 물티슈로 10초 정도 꾸욱 누르고 있어야 붙기 때문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아이들 손을 한 번씩 꼬옥 잡으며 열을 셋다. 스티커를 붙인 아이들은 눈을 스티커에 고정한 채 신이 나서 달려갔다. 좀 커 보이는 아이도 와서 붙여갔다.



그렇게 우당탕탕 아이들을 잠시 만나고 다시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갔다. S는 사회복지 전공하면 이런 일 하는 거예요?라는 엉뚱 발랄한 질문을 했다. S와 한 바퀴를 더 돌며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아.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선택한 일이 비록 세상에서 말하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라 믿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너만의 인생을 디자인하길 바라. 치열하게 고민하는 동시에 멀리 보아야 해. 인생은 장기전이야."


십 대 아이 앞에서 대단한 인생 선배인 것처럼 조언을 해댔지만 여전히 어리고 두려움이 많은 삼십 대의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S와 동일한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S에게 했던 말들을 곱씹으며 내 마음에도 새겼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시에 멀리 보자.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자. 지금 나의 선택들이 치열한 고민과 기도 안에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될지라도 감사하며 최고의 선택이 되도록 하자.


인생의 최대 고민에 빠진 S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고민을 넘으면 더 큰 고민거리가, 그걸 또 넘으면 더더 큰 고민거리가 찾아온단다... 하지만 다행인 건 나도 그 고민들을 넘으며 성장했기 때문에 다음 고민들을 넘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거야. 지금의 나는 서른 살 크기의 고민에 허덕이고 있지만 10년 뒤에는 마흔 살의 고민을 가지고 갓 서른이 된 아이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겠지. 지금 내게 조언해 주시는 어른들도 나와 같은 우당탕탕 30대를 보내왔을 거고 말이다.



비행기 회항으로 다시 돌아온 공항에서 타고 나갈 차도 없어 결국 짐을 실어 나가는 트럭을 히치하이킹해서 타고 나가는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 나는 엄청 재밌었다. 그 짐 더미 위에 앉아 덜컹거리고 정신없이 머리카락 휘날리며 보는 그 광활한 해질녘의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 바람과 냄새와 풍경이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 해 살아 있다고 흔들어 깨우는 것 같았다.


그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진로고민 가득한 청소년도, 늘 무겁지만 아름다운 내 인생도, 길 위의 그 천진난만한 아이들도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보자. 아주 뻔하고 뻔한 결론 같지만 뭐 어째,


우리 인생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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