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타고 한 마을 곳곳을 다닐 일이 있었다. 걸어 다니기엔 갈 곳이 많고, 차로 가기엔 골목이 좁아서였다. 창이 없는 오토바이 뒷 좌석에선 휴대폰을 하거나 잘 수 없다. 오로지 밖, 아니 곁을 보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여도 느껴지진 않았던 그들의 가난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소하고 나를 욱여싸고 덮쳐왔다.
나는 가난에 익숙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의 본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들을 연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나는 현장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난과 꽤 가깝고 현장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만나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난과 너무나 멀어 보이는 그들의 세상에 있다 보면 상대적으로 내가 꽤나 가난과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나도 나도 그 틈에 섞여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것을 탐하며 엇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나도 결국 가난한 그들과 다름을, 나의 세상은 가난과 닿으래야 닿을 수 없음을 반증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내 눈에 담겼던 그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다. 건조하고 추운 날씨에 다 터서 갈색으로 지글지글 선이 생겨버린 볼과 꼬질꼬질한 얼굴, 흐르는 콧물과 그것을 넬름넬름 핥아먹는 혀.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어본 적이 있을까 싶은 한쪽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는 목이 늘어난 상의. 원래 색과 형태가 무엇이었을지 가늠하기 힘든 오물이 묻어 얼룩덜룩하고 찢어진 하의. 고작 5살은 됐을까 싶은데 벌써부터 굳은살이 배겨 보이는 맨발. 상처 위에 상처가 생기고 고름과 피가 얼룩덜룩한 팔다리. 이런 행색의 아이들이 싸우는 건지 노는 건지, 오토바이가 쌩쌩 다니는 차도 옆에서 보호자도 없이 엎치락뒤치락 아슬아슬하게 뒤엉켜 있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누가 봐도 앉을만한 자리가 아닌 돌무더기 같은 곳에 몇 명이 앉아 떡지다 못해 갈라져 부스스한 머리를 헤집으며 이를 잡아주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초점 없는 그 눈동자.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시간에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그저 태어나 본능적으로 살아왔고,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에 내려 걷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아니, 이제는 후각도 동원한다. 오랫동안 묵혀진 듯한 썩은 음식물 냄새와 그 옆 어디든 쭈그리고 앉아 알 수 없는 음식물을 먹고 있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튀김을 뒤적거리며 팔고 있지만 식욕보단 역겨움이 먼저 든다.
아무리 남루한 차림으로 가도 눈에 띄는 나의 두 눈이 그들에게 구경처럼 느껴질까 싶어 나의 최선으로 웃고 친절하게 굴어 보지만, 그 또한 얼마나 어색하고 눈에 띌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 그들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나를 구경한다. 용기 있는 몇 명은 내게 다가와 피부를 한 번 만져봐도 되겠냐고 묻는다. 나를 만지며 부드럽다. 하얗다. 를 연발한다.
한 집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살짝 기울어져 있는 나무집이었다. 차마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 안에는 병색이 완연한 한 할아버지가 누워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도 최대한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집에 살고 있는 식구가 꽤나 많았다. 이 작은 집 안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낸다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아픈 사람이나 아이들 정도만 집 안에서 자게 하고 나머지는 여기서 잔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서 있는 집 앞 공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앙상하고 마른나무 몇 그루 위에 모기장이 돌돌 매달려 있었다.
공터라고 표현했지만 그곳은 평지도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돌과 흙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고, 바로 옆에는 음식물과 함께 썩은 물이 일렁이는 아주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나는 서 있고 싶지 않았는데, 이 바로 옆에서 이 집 식구들은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집에 방문했을 때는 집이 집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집 아래 땅과 집 사이, 띄워져 있는 그 공간에 살림살이를 하고 있었다. 버려진 기계와 물건들, 침대로 추정되는 판때기들, 곰팡이가 가득할 것 같은 육안으로 보아도 눅눅해 보이는 이불들. 비가 오면 다 흘러 들어올 것 같았다.
또 다른 집은 벽이 없었다. 가게가 집이었다. 구멍가게였는데, 물건을 놓은 한 면은 뚫려 있었고, 두 면은 천으로 막아 놓았고, 다른 한 면은 옆 집의 벽이 그들의 벽이 되어주었다. 우리 집 현관 정도의 크기의 평상이 가게 안의 전부였다.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이 7명이라고 해서 여기에서 함께 자는 거냐 물어보니, 몇 명은 평상에서 자고, 몇 명은 평상 아래 공간에서 잔다고 했다. 다시 보니 평상 아래 다듬어지지 않아 비탈져 있는 땅과의 간격이 있었다. 짐을 두어도 시원찮을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 잔다는 것이다.
한 아주머니는 아들이 잡혀가고,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남편이 급사하고, 돌아가신 지 일주일 만에 자연재해를 당해 집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 집을 다시 짓는 일을 도와드렸는데, 그래서 이 집을 보며 다시 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하며 아주머니는 또 울었다.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지만, 결국 눈물지었다. 그 아주머니의 슬픔과 아픔을 감히 내가 이해한다 할 수 없어 기도하겠다고만 여러 번 이야기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잘 안 보인단다. 그래서 한국 돈으로 천 원 정도 하는 안경을 사서 쓰는데, 써도 잘 안 보이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 원짜리 안경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가난이라는 것은 내가 감히 안다고,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적 빈곤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절대빈곤의 세계다.
기울어진 집 안에서 힘 없이 누워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던 병색이 완연한 할아버지 집을 떠날 때, 다가가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기도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집을 떠나는 끝까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울어진 집이 무너질 것만 같았고, 어떤 병이 있을지 모를 그 할아버지가 무서웠고, 무엇보다 너무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며 세상 바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정작 결정적 순간 앞에서는 한 발 자국 더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는 내가 참으로 위선적이었다. 역겨웠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밖을 나왔다. 우리가 타고 왔던 좋은 차에 다시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에어컨 바람 아래 하얀 침대에 누워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나라에 살면 살 수록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낯설고 어렵다. 이 세계에도 저 세계에도 속하지도 속하지 않은 것도 아닌 이 애매한 간극 속의 내가 여기서도 낯설고 저기에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이런 감정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배부른 소리이고, 위선적이며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한 번, 아니 여러 번 삼킨다.
가난, 빈곤이란 무엇일까.
이들을 만나야 하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일까. 점점 더 가난과 빈곤이라는 단어가 어려워진다. 알면 알 수록 더 무겁고 어렵고 그렇다. 어떤 단어로 이 깊이와 진하기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의 넓이와 깊이만큼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넓이와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하나님께 기도 했던 것이 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는 것은 외면하지 않을게요.'
세상의 모든 가난과 어려움과 고통을 내가 어찌할 수는 없지만, 내 눈앞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외면하지 않고 부름에 응답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무겁고 두렵고 자괴감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내게 거저 주어진 편안하고 깨끗한 잠자리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음식과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교육들의 값이라고 여긴다.
요즘 붙잡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
질적 성장.
흔들리지 않을 강인함과 다름을 품을 수 있는 넓음, 사랑이 있는 부드러움이 그 질적 성장의 과정이자 결과물로 여긴다. 점점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만큼 나의 역량과 그릇이 넓어져야 한다.
소위 말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름답고 고상한 일이 아니다. 치열하지만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사랑하고 지저분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음 방문에는 너무 울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했던 아주머니께 안경을 하나 맞춰 드려야겠다. 그렇게 안경을 맞출 수 있는 가게가 그 동네 근처에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알아보고 있다. 내가 비록 아주머니 인생의 고통을 다 헤아려드리고 해결해 드릴 수는 없어도, 눈물로 흐려진 세상을 조금은 밝게 보실 수 있도록 안경은 맞춰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