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났던 시절들에 대하여.
2019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한 해를 보냈고
2020년, 전 세계는 너 나할 것 없이 가장 길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을 다 함께 보내고 있다.
행복한 순간들이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왔지만 나를 가장 많이 변화하게 해 주고 깨우치게 해 주었던 순간들은 오히려 힘든 나날들이었다. 무엇인가가 붕괴하는 그 순간들은 너무나 힘이 세서 나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깊이깊이 박히고 나를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시키는 것 같다.
최근 그 변화의 한 복판에 있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두 사람이 있어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 명은 나의 절친한 친구, 다른 한 명은 나의 남동생이다.
#1. 내 친구의 Behind the scene.
초등학교 때 만나 중학교 때부터 친해진 나의 친구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예뻤다(문채원을 닮았다). 워낙 청순하고 여리여리해서 인기가 많았고, 중학교 때 학교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는 소위 날라리 남자아이와 연애를 하는 대담함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난 후에는 여러 동아리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원하던 광고일을 하기 위해서 유명한 광고대행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1년 뒤, 친구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더 정확히는 1년 간 회사 생활을 하며 벌어놓은 돈으로 호주의 르꼬르동블루 학교에서 베이킹을 배우며 동시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계획이었다. 친구는 손글씨가 예뻤고,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모든 류의 미술을 잘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친구가 혼자 호주로 떠난다는 건 큰 충격이었고, 안정적이고 창창한 광고대행사에서의 앞날을 버리고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던 베이킹을 업으로 삼으러 떠난다는 건 모두에게 2차 충격이었다.
내가 부모님이라 해도 이렇게나 예쁘고 착하고 일 잘하는 딸을 호주로 보내주기 싫었을 것 같은데, 친구는 씩씩하게 짐을 꾸려 20대 중반 호주로 떠났다. 그리고 시간은 늘 그랬듯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매일 흘러갔다.
사람 사는 게 다들 바빠서 그런지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졸업 후 각자의 자리를 바쁘게 찾아갔고 결국은 안정된 궤도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나도 사는 게 바빴고, 그 당시는 카카오톡 메신저나 SNS 등이 전혀 활성화되어있지 않았기에 간간히 안부를 주고받는 것만이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유였다. 친구는 묵묵히 전 세계에서 모인 학생들 틈에서 르꼬르동블루 정규 코스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력서를 넣어 페이스트리와 베이킹을 업으로 삼아 일하기 시작했다.
7년이 지났다.
이쯤이면 다시 한국에 들어올 것 같은 긴 시간이지만 친구는 여전히 호주에 있다. 그간 바뀐 걸 말해주자면 친구는 처음 호주에 베이킹을 배우러 갈 때 '이 곳에서 일하는 게 나의 최종 목표다'라고 삼았던 곳에서 일하고 있다. 유명한 호텔 체인의 페이스트리팀이었다. 그동안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며 틈틈이 비시즌 기간 동안 세계를 여행했고, 스스로 해 먹는 요리를 매일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아픈 이별을 하고 난 후엔 타지에서 혼자가 되어버린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하루에 요가 스튜디오만 3번을 갔다고 한다. 그간 일이 년에 한 번 씩 한국에 들어올 땐 한국의 베이킹 스튜디오에 일일 레슨을 등록하고 트렌드를 배워가기도 했다. 단 10일의 한국으로의 휴가 중 말이다. 그 시간마저 쪼개고 쪼개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그리움을 달랬다.
호주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면서는 틈틈이 스튜디오에 가서 도자기를 배웠고, 매일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실력은 나날이 늘어 해외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사진첩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녀의 시간은 매일 느리게 흘러갔고 그 시간 속에서 그녀는 단순히 손 놓고, 넋 놓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코로나가 터진 후 멜버른은 락다운이 시행됐다. 아침부터 밤까지 산책을 위한 잠깐의 외출 외에는 움직일 수도, 다수의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일 수도 없다. 무엇보다 한국에 오고 싶어도 '긴급한 사정'의 사유에 한해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국을 할 수 있었다. 남동생의 결혼은 '긴급한 사정'에 속하지 못했고, 결국 영상 통화로 가족의 결혼식을 지켜보며 많이 울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 동시에, 내가 아는 그 어떤 친구보다 마음이 넓고 단단한 사람이기도 하다. 7년 전 안정적인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생전 도전해본 적도 없는 베이킹을 하러 먼 호주까지 간다고 했을 때 만류하던 사람들은, 지금 그녀의 실력과 단단한 모습을 멋있다고 칭찬한다. 7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굳건히 성장한 모습을 결과물로 본 후에야 '내가 잘 될 줄 알았어.'라는 말을 한다.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일하고 존재하기까지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보장되어 있지 않고, 아직 젊지만 젊어서 더 불안하고, 해외에 혼자 지내며 보통 나이의 사람들이 겪을 외로움의 두 세배를 알아서 극복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의 이 모습이 되리라는 걸 알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본인의 의지대로 7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그녀였다.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게 본인의 갈 길을 남들보다 먼저 찾아냈다. 결과만 보고 그녀의 7년을 함부로 예측하고 가늠해선 안된다. 그녀는 충만하고 풍성한 경험 속에서 남들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 폭의 2배를 겪어왔다. 그리고 그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겪어온 경험치에 맞게,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고 안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한 사람을 결과로써 쉽게 판단하고, 그 지난한 과정은 그저 '잘 될 줄 알았어'라는 말로 퉁치는 경향이 있다. 정말 그 사람을 지금의 이 사람으로 만든 건 그 지난하고 길고 긴 과정이었는데도. 분명히 사람은 과정 속에서 더 예쁘고 아름답게 가꾸어진다. 단숨에 얻어버린 일확천금 같은 운은, 쉽게 얻은 만큼 쉽게 잃어버리기도 쉽다. 하지만 시간의 터널 속에서 매일매일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내온 사람의 분위기와 인상은 절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세포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시간의 힘은 절대 못 막는다.
시간 속에서 더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가 사랑하는 남동생의 Behind the scene은 이어서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