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결혼 축하해

일 년 사이에

by Minah

친한 친구가 12월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항상 좋은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어 했던 그 친구는 여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늘 결혼을 염두하는 사람이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부엌에서 같이 요리하고, 같이 티비보며 웃고 떠들고, 맥주 한 캔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


세상 모든 일이 얄궂게도 가장 간절하게 바랄 땐 오히려 타이밍을 빗나가는 법인지, 매번 긴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을 논하기 시작할 시점에 친구는 늘 이별을 맛봤다. 때로는 연인의 실책이기도 했고, 때로는 본인의 결단이기도 했다. 항상 누군가와 헤어질 땐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회사에 나타나 수분기라고는 없는 얼굴로 '나는 누군가랑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봐' 하며 자책을 거듭했던 너. 그 우여곡절을 7년 간 함께 겪어왔는데 어젯밤 결혼한다며 행복해하는 목소리를 들어서, 정말 기뻤어.

IMG_9839.jpg?type=w966 바다를 맘껏 바라보는 하루


같이 울고 웃고 축하하고 위로하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다는 것도 진짜 대단한 일이구나. 누군가랑 잘되는데 필요한 이유는 '사랑해서' 하나지만, 누군가와 헤어지는데 필요한 이유는 무궁무진한 거니까. 게다가 그 수많은 이유들을 나의 의지로 다 꺾어버렸다한들 결국 상대방도 나를 사랑해야 결혼이라는 지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였다.


새삼 생각나는 영화 <너의 결혼식> 속 대사.


- 너 지금 어릴 때 감정 붙잡고 나한테 고집 피우는 거야. 나 니가 생각하고 바라는 어릴 때 그 여자애 아니라구.

- 왜 아니야. 너 맞아.

- 너 그런 말도 몰라? 버스 가면 다음 버스 온다. 세상의 반은 여자다.

- 그래, 서울 인구 1,000만의 반 500만명. 그중에 내 또래만 10만 명 잡자. 그중에서 이미 연애 중이거나, 유부녀 빼면 한 5만 명 남겠네. 거기서 경주 황 씨, 동성동본 빼고, 재벌, 권력층, 우리나라 최상위 1% 빼. 내 친구들, 친척들이 사귀었던 여자들이나 좋아했던 여자들도 빼. 괜히 얽히면 복잡하잖아. 또, 세상의 반이 여자면 뭐해. 니가 아닌데.


이 영화 보면서 우연(김영광)이 힘들던 시절 내뱉었던 말실수 한 마디가 승희(박보영)의 마음을 할퀴었어도, 그렇게 우연이 승희를 놓쳐버렸어도, 우연이 승희를 처음 만난 날 이후 줄곧 '너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하던 그 순수함을 나는 좋아했다. 나는 늘 오래 지속되는 것들을 믿었다.

IMG_9844.jpg?type=w966 예쁜 장면들만 고르고 골라 카메라 안에 담다가
IMG_9880.jpg?type=w966 오랜만에 그 장면 안에 나도 넣었다.


그러고 보니 일 년 전 이맘때, 친구는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로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12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과 하루 차이로 결혼을 한다. 일 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시간은 힘이 세다.


그렇게 갈림길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고, 앞으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IMG_9913.jpg?type=w966 사람들이 바닷가 앞 작은 언덕에 누워 책도 읽고, 헤드폰 끼고 노래도 듣고,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변화의 문고리를 잡고 대차게 문을 열었던 건 나였는데도 익숙함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나에겐 늘 편안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가끔 너무 갓길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종종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특성들은 주로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혹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심히 지켜봤던 캐릭터들, 내가 본능적으로 끌려하는 사람들에게서 왔다.

IMG_0023.jpg?type=w966 한쪽 손으로 치마를 잡고 파도에 발장난도 쳐보는 오후.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본업에 충실한 사람, 내가 힘들다 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사람, 버거운 상황도 유쾌하게 웃어넘길 줄 아는 사람, 마음이 튼튼하거나 튼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미움보단 사랑이 많은 사람, 정직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의 힘을 믿는 단단한 사람,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포근한 사람.


쓰고 보니 꼭 한 사람 같네.

IMG_0083.jpg?type=w966 저 네 사람, 한참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갔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갓길에서 천천히 안전한 곳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울컥하는 마음에 이 갓길에 확 누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게 굴지 말자고, 따뜻하게 대해주자고 다짐하는 밤.

IMG_0087.jpg?type=w966 때로는 거친 파도로,
IMG_0094.jpg?type=w966 때로는 잔잔한 파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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