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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h Nov 25. 2020

#37 결혼 축하해

일 년 사이에

친한 친구가 12월에 결혼을 한다고 한다. 항상 좋은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어 했던 그 친구는 여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늘 결혼을 염두하는 사람이었다. 왜 결혼이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부엌에서 같이 요리하고, 같이 티비보며 웃고 떠들고, 맥주 한 캔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 


세상 모든 일이 얄궂게도 가장 간절하게 바랄 땐 오히려 타이밍을 빗나가는 법인지, 매번 긴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을 논하기 시작할 시점에 친구는 늘 이별을 맛봤다. 때로는 연인의 실책이기도 했고, 때로는 본인의 결단이기도 했다. 항상 누군가와 헤어질 땐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회사에 나타나 수분기라고는 없는 얼굴로 '나는 누군가랑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봐' 하며 자책을 거듭했던 너. 그 우여곡절을 7년 간 함께 겪어왔는데 어젯밤 결혼한다며 행복해하는 목소리를 들어서, 정말 기뻤어.

바다를 맘껏 바라보는 하루


같이 울고 웃고 축하하고 위로하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다는 것도 진짜 대단한 일이구나. 누군가랑 잘되는데 필요한 이유는 '사랑해서' 하나지만, 누군가와 헤어지는데 필요한 이유는 무궁무진한 거니까. 게다가 그 수많은 이유들을 나의 의지로 다 꺾어버렸다한들 결국 상대방도 나를 사랑해야 결혼이라는 지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였다.


새삼 생각나는 영화 <너의 결혼식> 속 대사.


- 너 지금 어릴 때 감정 붙잡고 나한테 고집 피우는 거야. 나 니가 생각하고 바라는 어릴 때 그 여자애 아니라구.

- 왜 아니야. 너 맞아.

너 그런 말도 몰라? 버스 가면 다음 버스 온다. 세상의 반은 여자다.

- 그래, 서울 인구 1,000만의 반 500만명. 그중에 내 또래만 10만 명 잡자. 그중에서 이미 연애 중이거나, 유부녀 빼면 한 5만 명 남겠네. 거기서 경주 황 씨, 동성동본 빼고, 재벌, 권력층, 우리나라 최상위 1% 빼. 내 친구들, 친척들이 사귀었던 여자들이나 좋아했던 여자들도 빼. 괜히 얽히면 복잡하잖아. 또, 세상의 반이 여자면 뭐해. 니가 아닌데.


이 영화 보면서 우연(김영광)이 힘들던 시절 내뱉었던 말실수 한 마디가 승희(박보영)의 마음을 할퀴었어도, 그렇게 우연이 승희를 놓쳐버렸어도, 우연이 승희를 처음 만난 날 이후 줄곧 '너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하던 그 순수함을 나는 좋아했다. 나는 늘 오래 지속되는 것들을 믿었다.

예쁜 장면들만 고르고 골라 카메라 안에 담다가
오랜만에 그 장면 안에 나도 넣었다.


그러고 보니 일 년 전 이맘때, 친구는 그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로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12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과 하루 차이로 결혼을 한다. 일 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시간은 힘이 세다.


그렇게 갈림길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고, 앞으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바닷가 앞 작은 언덕에 누워 책도 읽고, 헤드폰 끼고 노래도 듣고,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변화의 문고리를 잡고 대차게 문을 열었던 건 나였는데도 익숙함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나에겐 늘 편안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가끔 너무 갓길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종종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특성들은 주로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 혹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심히 지켜봤던 캐릭터들, 내가 본능적으로 끌려하는 사람들에게서 왔다.

한쪽 손으로 치마를 잡고 파도에 발장난도 쳐보는 오후.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본업에 충실한 사람, 내가 힘들다 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사람, 버거운 상황도 유쾌하게 웃어넘길 줄 아는 사람, 마음이 튼튼하거나 튼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미움보단 사랑이 많은 사람, 정직하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의 힘을 믿는 단단한 사람,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포근한 사람.


쓰고 보니 꼭 한 사람 같네.

저 네 사람, 한참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갔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갓길에서 천천히 안전한 곳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울컥하는 마음에 이 갓길에 확 누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게 굴지 말자고, 따뜻하게 대해주자고 다짐하는 밤.

때로는 거친 파도로,
때로는 잔잔한 파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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