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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h Jan 21. 2021

다들 미라클 모닝을 이야기할 때

밤늦은 새벽까지 깨어있는 나를 지켜주는 것들

추운 겨울을 통과하는 중


예전에도 화두이긴 했지만 점점 더한 가속도로 유행 중인 ‘미라클 모닝’. 서점을 가도, TV를 켜도 다들 온통 이른 아침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들 그 트렌드에 폭 빠져있을 때 묵묵히 역행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건 바로 요즘의 나.


호주에 있을 땐 이미 새벽 6시부터 가게문, 카페 문이 열리고, 출근도 하기 전에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 커피 마시며 느긋하게 잠 깨우는 모습을 자주 봤다. 모두가 움직이는 그 시간에 맞춰 나의 기상 시간도 덩달아 앞당겨졌었고, 나도 자연스레 사람들이 말하는 그 ‘아침의 기적’을 맛보곤 했다. 똑같은 1분 1초인데 시간대가 주는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고 해야 하나, 농도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밤늦은 시간엔 유독 평온함을 많이 느꼈던 반면, 이른 새벽 시간엔 활력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 이른 아침부터 깨어있는 생활을 하던 나는 서울로 돌아왔고, 그 이후 천천히 새벽 기상과 멀어져 갔다. 계기가 뭐였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영향이 꽤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야말로 24시간 깨어있는 도시이기에 밤늦은 시간까지 활동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그도 그럴 것이 브리즈번에서는 밤 아홉 시만 되면 동네 주택들의 불이 다 꺼져있어서 항상 내가 제일 늦게 자는 느낌이었는데, 서울에선 새벽 2시에도 불 켜진 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도 미라클 모닝을 잘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도시 이야기는 다 핑계다. 나는 그냥 혼자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음으로써 마음이 안전한 상태를 길게 누리고 싶었던 것뿐.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하루하루를 소화하고 보내주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홀로 깨어있는 시간엔 따뜻한 티도 만들어 마시고, 방에서 족욕도 하고, 책도 읽고 짧은 일기도 쓰면서 늘 마음에게 시간을 준다.  

모두가 잠든 시간. 그래서 당분간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잠든 세상이 깨어나기까지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그렇게 나는 하루를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기보단, 하루를 남들보다 늦게 마무리짓는 사람이 되었다.

근데 최근에 이런 생활을 하면서 유독 기분 좋은 발견을 많이 하게 됐다.


항상 다시 듣기로 챙겨 듣는 매주 금요일 코너.


먼저 그 늦은 밤에도 나와 같이 깨어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꽤 많다는 것. 심야 라디오를 작게 틀어두고 있으면 정말 온갖 사연이 실시간으로 오고 간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아직 잠들지 못한 사람도, 벌써 잠들기는 싫은 사람도 있다. 비록 내 옆 가까이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같은 시간대에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니. 게다가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있으면 모두가 나름 뭔가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어서 엄청 귀엽다. 잘 살아보려고 어떤 걸 공부하고 있거나, 잠잘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만들고 있거나, 뭔가(혹은 누군가)를 잊고 싶은데 못 잊어서 노력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모두 세상 어느 한 구석에 자신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로 위로받는 것 같았다.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라디오에만 있을까. 나는 종종 늦은 새벽, 지구 반대편에서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살고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한다. 이곳과는 달리 지금쯤이면 깨어있는 게 당연한 사람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그들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응답해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24시간 언제라도 소중한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는 셈인 거고, 그건 나에게 엄청난 안정감으로 작용한다. (물론 굳이 새벽에 연락해보진 않지만.)


그러니 미라클 미드나잇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연대감과 장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도우의 장편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는 불면증으로 늘 늦게까지 깨어있는 서점 주인 은섭 이야기가 나온다. 굿나잇이 늘 인생의 화두였기에 서점 이름마저 ‘굿나잇 책방’으로 지은 은섭은 세상 곳곳에 흩어져있는 야행성 사람들을 ‘굿나잇 클럽’이라 부르며 이들과 서점 블로그에서 소통하기도 한다.

그런 은섭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첫사랑 해원이 어느 겨울 은섭이 있는 시골로 잠시 내려오게 되고, 은섭은 창문을 통해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해원의 방을 보게 된다. 


새벽 3시인데 건너편 호두 하우스 H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잠이 안 와서 나와 있다고 했었지. 내 불면증이야 워낙 익숙한 거지만. 혹시 H도? 세상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야행성 점조직, 굿나잇클럽에 들어오라고 말해볼까? 하지만 나는 아마 말하지 못하겠지. 네, 못 합니다. 그래도 잘 자요, 아가씨.


모두가 잠든 어두운 시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깨어있을 수 있는 기쁨을 상상하며. 이제 정말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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