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 하나 끓여보고 싶었다.
오늘은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연애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 많지 않은 경험들 가운데서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 하나.
내 마음에 가장 솔직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군대 첫 훈련, BMT를 마치고
직업훈련소에 막 입소했을 때였다.
7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화장은커녕 로션조차 마음껏 바르지 못했던
말 그대로 가장 ‘날것’의 나였다.
직업훈련 첫날, 기숙사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룸메이트와 이름이 같아서였다.
‘누굴까?’ 하고 그냥 넘겼다.
다음 날 아침.
훈련소에서는 아침마다 쓰레기통을 비워야 했는데
덤스터는 건물 밖에 있었다.
하필 비가 오던 날이었다.
뛰어갈까, 우산을 빌릴까 망설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비를 맞으며 나에게 걸어왔다.
“너 쓰레기 버리러 가는 거야? 내가 버려줄게.
나 벌써 비 맞았어.”
그때는 그냥, 참 친절한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기숙사에서 불리던 그 이름의 주인공이,
비 오는 아침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던
바로 그 아이였다는 걸.
사실 내 마음은 그랬다.
‘내가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데 이 친구는
나를 이모처럼 생각해서 도와주나 보네.’
그런데 그 이후로 그 친구는 내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무리에 자주 나타났다.
라이드도 주고, 운동도 가르쳐주겠다며
어느 날은 내 번호를 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그 친구가 직접 내 앞에 휴대폰을 내밀었을 때
살짝 놀랐다..
에이 설마 혹시.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쓰레기 대신 버려줬으니까 커피 한 잔 사줘야지.’
훈련 기간은 4개월이었고 그 친구는 나보다
한 달 먼저 훈련이 끝날 예정이었다.
라이드를 받다 보면, 도움을 받다 보면 정이 드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나.
처음엔
‘이 친구 연락 자주 하네’ 정도였는데
어느 날, 룸메이트가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나... 그 남자아이 좀 괜찮아.”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친구와 연락하는 것이
정말 마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친절 때문인지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말을 들은 바로 다음 날,
그 친구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
기숙사 공용 공간에서 마주치면 알 수 있었다.
아, 이 친구 나 좋아하는구나.
눈빛이 그랬다.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날것의 나인데도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마음 한구석에 계속 룸메이트가 걸렸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항상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데이트를 나가면 이 친구가 상처받겠구나’ 싶었다.
결국 룸메이트는 그 남자아이의 행동에 눈치챘고,
“이제 그 남자 안 좋아해”라고 말했지만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는지
그날 이후로 나를 조금 힘들게 했다.
그마저도 지금 생각하면 참 풋풋하다.
(라이벌로 생각해 줘서 고마워, 아이야.)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내 감정에 솔직해지자.
“너 나 몇 살인지 알아?”
“그래도 좋아?”
그 아이는 좋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렇게 달달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좋아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다정함과 친절함,
나를 도와줄 때 보였던 따뜻함이
사실은 나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질투가 났다.
그리고 화가 났다.
'넌 왜 너를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도와주는 거야?'
싸우고, 그만하자고 했지만
그 아이는 친구로라도 지내자며 붙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에 하지 못했던 풋풋한 사랑을
다 채워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였나 싶다.
감사합니다. 잠시 달달했어요.
그 아이의 훈련이 먼저 끝났고
우리는 그렇게 롱디를 하게 됐다.
매일 영상 통화를 하고
영상 통화로 같이 영화도 보며
나는 잠시 20대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만 바라보던 시간.
하지만 달달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고 잠시 집으로 휴가를 왔을 때였다.
마지막 영상 통화에서 그 아이는 말했다.
“부모님 전화가 와서, 두 시간 뒤에 연락할게.”
그게 마지막이었다.
처음 며칠은 급한 일이 생겼나 걱정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아, 우리는 정말 끝났구나.
처음 겪는 잠수이별이었다.
나는 인스타와 전화번호를 지웠다.
웃긴 건,
내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이자
그 아이는 다시 돌아오려 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아니야. 나는 너 없이도 잘 살고 있어.”
나에게 잠수는 이별이다.
그렇게 30대의 나는
매달리는 아이를 아주 냉정하게 정리했다.
아름답게 익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충분히 솔직했다.
내가 언제 또 이런 풋풋함을 다시 경험해 볼 수 있겠나.
비록 잠수 이별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