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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반 아이의 고백

시드니의 겨울, 저녁 산책길에서

by min

부산스럽지만 간단한 저녁을 지어먹고 강아지 산책을 나간다. 그런 때면 어김없이 Mummy, Can I come with you? 함께 길을 나서곤 하는 세 살 반 아들.


6월 시드니의 저녁은 금세 저물어 오후 5시만 되어도 캄캄해지니,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길 위에서 작은 아이는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언제 손이 이만큼 컸지, 조금은 더 단단해진 아이의 손에서 전달되는 온도가 새삼 따뜻하다 하며 걷는데 아들이 말한다.


"엄마, 이 산책 다 하고 집에 가서 나 안아줄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순간, 내가 아이를 잘 안아주지 않았던가, 둘째가 태어나고 많이 신경을 못썼나. 급히 돌아보기 시작한다.


"Because I like you."


그냥 별 뜻 없이 안아달라고 한 거겠지. 욕심 많고 이기적인 엄마라, 행여나 사랑을 부족하게 느꼈을까 봐 그 짧은 찰나에도 죄책감이 앞서 아이에게 대뜸 사랑 고백을 해버린다.


"엄마도 수박(첫째 태명)이 무척 사랑하지."

"저는,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고, 사랑이(둘째 태명)도 좋고, 모모도 좋아요.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다~ 좋아요."

"와 - 수박이는 좋겠다. 수박이는 그럼 행복해?"

"네! 행복해요. 집에 가서 엄마를 안아줄 거예요. 난 엄마가 좋으니까요"


'행복'이라는 단어가 불필요하게 난무한 시대에 살면서도, 나의 자식이 그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잘하는 아이, 앞서가는 아이, 칭찬을 많이 받는 아이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하며, 무엇보다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래 보아야 아이 나이 고작 3살 반이지만, 앞으로 아이에게 남은 무수한 시간 앞에서 나는 또 얼마나 단단한 엄마로서 그 시간을 담을 그릇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그저 제 옆에 있는 가족 구성원이 좋다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의 가슴이 감사했다. 나는 어땠나. 나에게도 건강하게 자라나는 네가 있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너의 동생이 있으며, 미적거려 내 속을 뒤집곤 하지만 그래도 다정다감한 남편, 우리 옆에 꼬옥 함께 있으려는 반려견까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아이처럼 그렇게 고백하듯 나 행복해! 하고 마알간 마음으로 외쳐본 적이 언제였던가.


나이가 죄이지 싶으면서도, 주책맞다고 생각해 외치지는 못하더라도, 2021년 우리가 함께 걷던 어느 겨울밤처럼, 작든 크든, 어떤 형태의 행복이든 종종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리낌 없이 사랑을 말하고 행복을 이야기하는 지금 너의 가슴을 깊이 간직한 채, 지금처럼만 무럭무럭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네 말대로, 우리 많이 많이 꼬옥 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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