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Nov 21. 2021

삶에 빨리 지치지 않기 위해 소파에 눕는다.

워킹맘의 그럴싸한 변명

작년에 한 번뿐이었다는 언플러그 데이(*우리 모두 하루 그냥 일하지 말자, 는 날)를, 이번에 운 좋게 두 번째 받았다. 회사에서도 이제 곧 바쁜 시간이 몰려올 거라는 걸 알기에, 이날을 충분히 누려야겠다는 다짐을 거창하게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평소에는 기상예보에 비가 온대도 해만 쨍쨍하던데, 오늘은 오후부터 오기로 했던 비가 아침부터 내리는 것이다.


오페라하우스까지 걸어갈까, 비치에 가서 책을 읽을까 하던 계획은 모두 접고, 빨래를 시작한다. 윙윙 규칙적인 세탁기 물 돌아가는 소리, 젖은 도로 소리가 채우는 집안을 서성이다 아껴둔 책을 집어 들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모모가 다리 위로 올라와 노곤한 듯 휴식을 취하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이내 빨래가 다되었다는 익숙한 모차르트의 멜로디가 울린다. 빨래를 널고 나니 비도 멈추었다.



동네를 걸었다. 빗물을 머금은 싱싱한 초록잎은 포동포동하고 싱그러운 우리 아이들 같았다. 하염없이 걷다가 처음에 가겠다고 생각한 카페보다 더 먼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조림 사과와 크림이 듬뿍 들어간 애플턴오버, 블랙커피를 시키고 앉아 책을 마저 읽는다.


사실은 일하는 마음에 대해 정리를 좀 해보겠다는 걸, 은근슬쩍 미루는 중이다. 꾸준히 써보겠다는 마음과 같은 곳을 담당하는 부분 같은데, 마치 미루는 게 익숙하다는 듯, 거기에서 받을 스트레스도 없던 일인 척 돌아서는 일이 어느새 능숙하다. 함부로 다짐도 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쉬이 마음먹고 그만큼 지키지 않는 자신의 가벼움을 조금은 덜 느끼고 싶다는 비겁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 저녁을 짓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젖병을 씻고,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을 재우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잠들기 전 모모 산책까지. 이후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 것만 같지만, 에라 모르겠다 소파에 누워버리며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나는 삶에 너무 빨리 지치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는 거야. 넷플릭스도 기웃거리고, 책장에 고이 모셔둔, 예전에 읽었거나 아껴둔 책들도 괜히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매일매일을 충실히 산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은 피곤한 일이다. 원대한 꿈을 꾸던 시절은 다 지나갔으니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는 아이러니한 반증이기도 하다.


집에 돌아가면 매콤한 떡볶이를 만들어 먹어야지. 내가 아까는 장난 좀 쳤어, 하는 표정으로 햇빛이 얼굴을 들이내민다. 이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