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내 인생, 시간 낭비하지 말자
머신러닝 중의 한 모델을 이용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적이 있다. 그 알고리즘에 대한 페이퍼를 어느 기관에 낼 거라고 하여 좀 더 전문성 있게 작성해달라는 업무지시가 내려왔고, 다 마쳐갈 즈음, 회사 전체 이메일을 받았다.
12월에 있을 컨퍼런스에서, 동료가 내가 쓴 페이퍼의 주제로 스피치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얼굴이 올라와 있는 포스터도 함께 첨부되어. 12월에는 육아휴직으로 회사에 없을테지만, 그 이메일을 보는 순간 뒤통수가 얼얼했다.
미리 귀띔은 해주는 것이 예의이다. 컨퍼런스 기간에 내가 부재중이라 어차피 못할지라도, 대표는 그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나와 상의했어야 했다. 이름이 올라간 동료는 이메일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고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들떠서 상기된 얼굴을 하고 앉아있다. 평소 대표의 꼬리를 졸졸 잘 따라다니며 일하는 똑똑한 친구였다.
시드니 지사는 직원 10명 남짓의 작은 회사였다. 대표는 자신이 경영하는 비즈니스이므로, 내가 페이 하는 너희들은 나의 소유, 너희가 내는 아웃풋도 나의 소유라는 개념이 강하여 종종 직원에게 Kaggle (빅데이터 경연 플랫폼)에 참여하여 우승자에게 주는 상금을 받아 회사에게 내라는 소리를 회의 때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곤 했다.
사실 그해 초 유산을 겪고, 일을 맡기는 스타일이 공격적인 대표에게 업무의 양을 조정해줄 것을 요구한 적 있다. 클라이언트가 왕이라는 회사의 모토에 걸맞게 무조건 YES를 남발하여 없는 것도, 하지 않은 것도, 한 적이 있으니 맡겨만 달라고 약속을 해두고는 직원에게 며칠 안에 해내라고 지시하는 영국인 대표. 보통 아웃소싱 하는 앱 서비스 센터 전화 같은 걸 직원에게 맡겨 밤낮없이, 주말 없이 연락을 받도록 하면서, 고맙다는 말보다는 이 회사에서 월급 받는 일부의 업무와 다름없다고 정당화하길래, 그 일 나는 못하겠다 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뭔가 자꾸 더 '못하는' 사람, '뒤로 밀리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래. 워라밸을 지키는 대신 이 정도 희생은 감당해야 하는 거겠지 하고 생각하려 애쓰면서도, 이미 넘쳐나는 업무 양으로 매일같이 노트북을 집으로 끌고 와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생활에 몸도 많이 약해졌었다.
당시 써놓았던 기록을 얼마 전에야 들쳐보았는데, 짐짓 놀랐다. 어쩌면 그곳에서 가스 라이팅을 당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칠 만큼, 자존감도 낮았고 마음은 많이 지쳐 있었다. 그 상황이 속상한 이유를 내가 현명하지 못한 탓으로 돌리고 있었고, 스스로의 실력을 자주 의심했다. 연봉협상 시 입 다물도록 미리 세뇌라도 하는 듯 당신은 A를 못하니 B를 맡도록 하세요, 따위의 업무 전달 방식에 익숙해졌고, 직원이 A를 얼마나 하는지 확인해볼 만큼 부지런한 대표도 아니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어느새 나는 정말 A를 못하는 무능한 직원인 것만 같았다. 잘한 일에는 그 정도 누구는 못하니 식이었고, 부족한 부분은 더 돋보이도록 조종되는 분위기에 스스로 매몰되어갔다.
시간이 지나면, 이 상황을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나는 알게 될까?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이같이 격려가 고프다. 정확히 말해서는 믿음이 고프다. 무한한 믿음과 지지가 담긴 시시콜콜하고 낯 뜨거운 말들이, 그래서 그 믿음에 응답하고 싶을 만큼 힘이 되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 함께 나누는 기쁨이 배가 되는, 그런 응원이 고프다.
어른이 되어 만난 세계에서는, 특히나 '일'을 하는 회사에서는 서로 진정으로 지지하고 힘을 주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종종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아마도 길지 않은 회사 생활 중, 똥 한번 거하게 밟은 케이스인 줄도 모르고, 다른 모든 회사들도 이런 식일까 봐 겁부터 났던 것이다. 어떻게 앞으로 30년을 더 이 짓을 겪어가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남의 돈 버는 일이, 이렇게도 더럽고 힘들 수밖에 없는 일인가.
잘못된 리더는, 팀원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유리 멘털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이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 자기 검열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기 쉽다. 바로 그 잘못된 리더가 의도한 바대로, 당신의 중심은 무너지고, 스스로를 잃기 시작하는데, 본인이 그걸 알아차리는 일이 어렵다. 내가 여기서 이런 식의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라는 건방이 시급하다. 누구도 당신을 작게 느끼도록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돈 벌려다가, 나의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을 자주 맞이한다면,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부족한 면이 자꾸만 크게 느껴지는 곳에서는 누구든 위축되기 쉽다. 한 없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렇다. 하지만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듯, 잘난 면이 분명히 있다. 잘하는 구석을 찾아내어 갈고닦아, 빛을 내는 데에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당신의 부족한 면을 마치 당신의 전부인 양 이야기하는 사람과 어떻게 얼굴 맞대고 일을 할 수 있는가.
소중한 내 인생, 시간낭비하지 말자.
에잇 더러워, 하고 박차고 나오지 못한 이유는 현재 몸 담고 있는 곳이 있어야 이직 시 유리하다는 남편의 등쌀을 못 이겨 꾸역꾸역 다니느라 그랬다.(그래서 제목도 주저 말고 떠나라, 라고 못했다.) 왜 자꾸 나를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밀어 넣느냐는 투정을 하며 나름 몸에 독을 품고 다닌다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끝까지 시간을 다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쌓은 업무 경험이 스킬적인 부분에서는 현재에도 매우 도움이 되고 있고, 또 그곳에서 겪은 사람 경험을 통해,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똑바로(정신 번뜩) 배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똥 같은 경험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민들레를 피우는 거름처럼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회사에서 무척 힘들어 당장 떠나든, 준비를 하고 떠나든, 어느 선택이든 옳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사실 옳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고,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 테니까. 지금 왜 나는 이런 일을 겪고 있나,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그 좌절의 구렁텅이도 곧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당신만의 빛나는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을 만들어내는 시간일 뿐,
그 시간이 당신의 고귀함을 빼앗지는 못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