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업무를 대하는 태도

If you can't change it, change your xx

by min

지난주 후임 한 명이 퇴사를 통보했다. 아직 6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지 않아 노티스 기간은 딱 일주일. 이번 주 월요일이 공휴일인 점을 감안하면, 하던 업무를 체크하고 전달받고 인사하는 데에도 시간이 빠듯해 보인다.


일은 꼭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온다. 일어날 법한 변수들이 한 번에 함께 일어나면서 생각지 못하게 나의 리스트가 눈 깜짝할 새에 쌓이는 것, 즉 일복이 터졌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성향도 있고, 해야 할 일 리스트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으면 (대부분이 그렇듯) 찝찝하여 그때그때 일을 처리하는 편인데, 엑스트라로 얹어지는 일 중에서는 바로바로 해치울 깜냥의 일들이 아닌 것도 있었다. 그동안 업무에 따른 시간관리를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일이 쌓이니 스트레스 같은 것이 꾸물꾸물 춤을 추며 올라오기 시작한다.


Repriotisation, 즉 우선순위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뒤로 빼고, 팀 프로젝트가 아닌 회사 차원의 업무는 날짜 제한이 있으므로(보통 이런 일은 드문데 하필 지금 있다는 점) 이를 우선한다.


모든 일이 지금 해야 할 일들 같아도 이렇게 일이 많을 때는 애써 카테고리를 나누어 지금 해야 할 일과,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리스트를 적고 보니 여전히 많은 건 많은데, 그래도 이전처럼 숨 막힐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입으로 중얼거린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가 나를 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일을 리스트에서 지우는 것이 마음 편해서, 빨리 해치워야 후련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팀은 그런 성향을 막 악용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칫하면 어? 얘는 일을 빨리 잘하네, 하고 계속해서 일을 이쪽으로 돌리며 perform 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로봇이 아닌 이상, 계속해서 빠른 페이스로 quality 있는 일을 생산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하면 일을 예전만큼 못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쓸 위험이 있고, 혹은 개인적으로 번아웃이 빨리 찾아올 수 있다.


일이 많이 몰려오는데 불만은 없느냐?


일이 좀 줄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다. 두 번의 이직을 거듭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어디에나 다 이렇게 바쁜 때가 있고, 일이 많은 때가 있다. 핵심은 밀려오는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나의 스트레스 관리이다.


이런 경우라면 사실 누구에게나 스트레스일 수 있다. 여기서, 이건 나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는 내가 '어떻게' 상황을 다루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스트레스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달콤한 월급과 재택근무가 자유로운 회사를 때려치울 마음도 없고, 동시에 내가 스트레스받는다고 일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심플한 문장으로 일단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본다.


동시에, 이렇게 들어오는 질문이나 업무 요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내게 회사의 시스템이나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작은 기회들이라 믿는 부분이 있다.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지만, 업무 특성상 사내 다른 팀과의 교류가 활발한 편인데, 이때 데이터만 아는 것보다, 금융권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으면, 내게도 분명 플러스가 될 것이다. 나만이 아는 작은 성취감 같은 것도 따라올 것이고 말이다.


If you don't like something, change it. If you can't change it, change your attitude.

-Maya Angelou


어떻게 보면 회사 말고는 다른 옵션이 없는 사람으로서, 회사에 마음 붙이고 지내기 위한 주문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왕 다니기로 한 회사, 부정하며 다니고 싶지는 않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일더미에 묻혀 헐떡거리는 시간을, 이번에는 불만과 무게에 짓눌려 땅으로 꺼지는 쪽보다는, 마리오가 아이템을 하나씩 먹으며 앞으로 걸어가 듯, 가끔 명랑한 점프도 해가며 하나씩 해치워 나가 볼 생각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어디로든 가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조금은 짧아진 내 TODO 리스트를 얻을 수 있겠지.




Image:unsplash.com/Sharon McCutc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