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뭔데) 인사할 시간도 없니?

스몰토크의 힘

by min

How are you?

How was your weekend?

How’s your family? All well?


현재 회사에서 업무까지 통틀어 가장 많이 듣는 Top 3을 적어보았다. 안부를 묻는 인사인데 스몰토크에 약한 편인 내게는 업무 관련 질문이 차라리 대답하기 쉬울 만큼 곤혹스러운 질문이었다(질문, 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지. 스치는 박수 같은 인사일 뿐인데). 문제는 이 인사말을 다큐로 받는 성격 때문. 예를 들면, “과연 저 사람이 정말 관심이 있어서 묻는 것일까, 겉치레식 인사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나, 지금 이런 얘기를 할 시간이 있는 걸까” 등등의 생각이 전쟁 중 가드를 올리 듯 내 안에서 탁 하고 올라온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질문처럼 느껴졌고, 굳이 대답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소리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딱히 말할 것도 없어 "좋았어요", "매일 똑같죠 뭐", 라는 식으로 서둘러 대화를 끝내고 화면조정시간 같은 것도 없이 업무 이야기로 들어가곤 하였다. 우리는 여기에 일을 하러 온 것이니까. 잡담할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칼퇴하는 것이 너도 나도 좋지 않겠냐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안부 인사를 받다 보니 한마디로 끝났던 대답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말에 가족이랑 공원으로 피크닉 다녀왔어. 노스쇼어에 있는 곳인데 물가에 있어서 경치도 좋도, 강아지도 데리고 갈 수 있어서 온 가족이 도시락 싸서 가기 좋은 곳이야. 주말에 날씨 좋았는데, 너는 뭐했니?”


집에만 있던 날에는,


“애들이 아파서 집에만 있었어. 근데 그 참에 이불빨래를 몽땅 다했지. 주말 내내 세탁기만 돌린 것 같아. 너는? 적어도 나보다 더 신나는 걸 했을 것 같은데?”


TMI를 속사포로 쏟아낸다. (안 물어봐주었으면 어쩔 뻔).



안물안궁 그녀는

어쩌다 재잘이가 되었나.

팀장의 칼렌더를 보면 회의로 스케줄로 빡빡히 채워져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있는 나의 미팅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저 사람의 바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래서 미리 회의에서 커버해야 할 자료들을 다 열어두고,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보여줄 수 있거나, 리포팅 툴에 연결해두어 실시간으로 변화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팀장은 꼭, 인사를 했다. How are you?라는 질문에 정말 할 말이 없어, 초등학교 영어책에 나오는 Good, thank you (and you? 마저도 잘라먹음. 잠시의 정적 때 아차 싶어 뒤늦게 you? 를 하거나 아니면 그저 팀장의 끄덕거림), 그리고는 내가 먼저 Well, Should we look into- 하며 바로 우리가 상의해야 할 것들로 넘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말은 “How are things?”였고, 아, things니까 어떤 띵이든 되겠다 하여 프로젝트의 관점에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대답 중 한 템포 쉬는 때에, 보통은 차분히 다 듣던 팀장이 이어가려던 말을 가로막는다.


잠시만.

(뭐지.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내 질문은 요즘 당신이 어떻냐는 질문이었는데.

아.

아이들은 어때요? 가족들 다 건강하고?


콕 집어 질문을 하였으므로 질문자가 무안하지 않도록 딴에는 사소하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근황 하나를 대충 얼버무려 말했던 기억이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은 1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이제 팀장은 우리 집 아이들에게 생기는 일들을 100%까지는 아니지만 꽤 가까이 알고 있다. 아이들 어린이집 바뀐 스토리부터, 어느 어린이집이 더 나은지, 아이들이 아플 때는 업무 시간도 조정해줘 가며 말이다.



사람과 함께하는 일

비단 팀장뿐 아니라, 모든 팀원이 비슷했다. 항상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길게 이야기해도 안부를 나누는 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 5분의 시간을 내지 못해 동료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갈 기회를 내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특히 현재까지 일주일에 1-2번만 오피스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으로 일하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 동료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5분도 못 낼 만큼 바쁜 일이 (이제와 돌아보니)일개 미생인 내게 있을 리가 없는데, 혼자 세상 바쁜 척 한 건 아닌지.


[일]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일을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일을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대답을 주고받는 시간이 쌓여 마침내 '관계'가 형성된다. 어느 한쪽이 이직을 하면 바로 깨질 수 있을 만큼 부서지기 쉬운 관계(물론 이직 후에도 일부는 계속 연락할 수 있겠지만)라 할지라도, 함께 일을 하기 위해 맺어진 집단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분명 가치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바쁜 와중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 대화를 하고,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당신에게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긍정의 제스처가, 일종의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고 시그널이다. 이제는 안다. 당신과 내가 나눈 시답잖은 안부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일에 있어서도 부드러운 윤활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애써 노력하지 않고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어딘가에 나처럼 회사에서의 스몰토크가 불편한 사람들이 5분의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며.



*제목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미 가까워진 사람과는 이야기를 잘 하지만, 또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교류할 때면 어김없이 저 문장을 되뇌어주어야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