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에게 나는 무슨색으로 말할까

나를 지키는 언어의 색깔

by min

이직한지 막 1년이 지난 시점, 구조 조정에 관한 이메일을 받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여지껏 했던 구조 조정은 비용 절감의 차원, 그러니까 직원들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10에 9이었다면, 이번에는 순전히 비즈니스 라인의 합병과 리포팅 라인을 재정비하는 차원의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싱숭생숭했다. A라고 하면 A 이겠거려니, 하는 입장에서는 왜 싱숭생숭한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기나긴 회사생활 동안 '구조 조정'이라는 말을 접해온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마음 저변에 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나. 아직 구조조정이 일어나지도 않은 시점, 합병되기로 한 라인쪽의 상사들이 이런저런 요청을 해오기 시작한다. 리더와의 회의에서 분명 누군가는 '영웅'이 되기 위해 갑자기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요청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라고 하는 걸 듣긴 했지만,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다들 불안하구나.


심지어 다른 라인, 같은 레벨의 리더 간 은근한 기싸움(?)을 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혼자만의 기싸움이었겠다. 우리 팀에서 만든 데이터를 상대 팀에서 보고 싶어 하였고,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양쪽 리더의 이메일 체인에 나 역시 끼어 있게 되었다. 문제는 상대 리더의 톤이었다. 내가 이 바닥의 짱이야 같은 톤이었다고 해야할까.


"이것 좀 빨리 줄래요."


PII정보가 있어, 일부 이용자에게만, 그것도 국한된 시기에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되어, 곧 사라질 것이라고 미리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보니 데이터가 없다고 나와요. 이것 좀 빨리 고쳐줄래요. 오늘 당장 필요해요"


우리 팀 안에서 쓰는 데이터랩이 따로 있으나, 정보 보안으로 다른 팀과는 랩을 따로 공유하지는 않고 테이블일부만 한정적/일시적으로 공유하고 있는데, 앞뒤상황 고려하지 않고 상대 리더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 팀에서는 이렇게 테이블 한정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랩을 공유하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을 팀원이 알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방식을 따라해보는게 좋을거에요. 특히나 곧 합병이 되는 시점에, 이렇게 다른 팀의 더 나은 방법을 쓰는 것이 포인트 아니겠어요."



이 사람 뭐지. 정확하게 문장 하나하나를 따와서 직역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의 대화와 뉘앙스가 꼭 위와 같았다. 딱히 누가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라인 합병으로 개인적으로는 다뤄야하는 데이터의 분야가 넓어지겠구나 긍정적인 확대로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받은 "내가 이끌고 있는 우리 팀이 더 잘났어."식의 태도가 충격적이었다. 마치 불안에 떨고 있으면서 아닌 척 하고 싶어 더욱 크게 소리치는 소년 같았다고나 할까. 반면 그 리더를 대하는 우리 팀 상사 이메일은 (팀나누기 아님. 태도가 정말 대비됐음.)



"(데이터가 지금은 볼 수 없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쪽에서 착오가 있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볼게요."


"좋은 정보를 공유해주어서 고마워요. (우리만의 랩 관리 방식의 이유를 간략히 브리핑한 후) 당신들에게 좋은 방법이 있다니 우리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한 번 검토해보도록 할게요."






말에도 색깔이 있다고 한다. 평소 그 사람이 하는 대화의 톤이, 이메일에도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한쪽은 다소 공격적이고 자의식으로 점철된 강렬한 색의 같은 느낌이라면, 한 쪽은 상대가 뱉어내는 색깔에 상관없이 은은한 고유의 색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 두사람은 같은 레벨의 리더였다. 이들의 아랫사람인 나의 시각이 이러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들의 윗선이 혹시 이 둘의 이메일을 보게 되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갈렬한 리더가 시끄럽게 자기의 공을 떠들고 있으니 더 능력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까? 이와 같은 리더가 인정받는 회사의 분위기는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콱 막혀왔다. 다행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미 임원급 미팅에서도 누군가는 '영웅'이 되려고 설쳐댈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그저 딱 그들의 예상에 있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되는 것 뿐이 아닐까.



인간적 깊이를 수련하기 좋은 곳

회사라는 공간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일하는 곳에서,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 곳이 회사일것이다. 그 때마다 차분함을 유지하고 나 자신의 베스트 버전을 유지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예를들면, 무례한 톤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인간적 수련이 부족한 일개 미생인 나 같은 사람은 '아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응대할거야!' 라는 욱함이 올라온다. 컨트롤 해야할 그 어떤 욱함이 올라오지 않은 정도까지 수련이 되어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욱함을 컨트롤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잠시 위의 일화의 뒷이야기를 하자면, 그 이메일 체인에 내가 대답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 전에 우리 팀 Director와 잠깐의 미팅을 할 기회가 있어, 감정은 다 빼고, "곧 확인해보고 제가 그 이메일 회신할게요". 정도로 말했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확인한 거 저한테 알려주겠어요? 그 사람의 톤이 딱히 좋았던 편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상대하는 것이 좋겠어요."


이 분도 상대의 톤을 느꼈다. 나의 대응방식을 염려해서였을지, 아니면 팀원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옳다구나, 나는 내심 그만원펀치 회신을 예상하고 있었다. 한 방 먹여주세요와 같은 심보였다.


그런데 웬일. 좋은 정보를 공유해주어 고마워요 - 로 시작하는 초록색 푸른하늘의 이메일을 보고, 잠시 다른 종류의 충격에 사로잡혀 이메일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이런 사람을 이렇게 상대할 수도 있다고?)



무례한 사람을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일차적인 방법은 나 역시 똑같이 하는 것. 순간 내 속은 무지 후련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무례한 상대에 말려들지 않는 것. 나를 지키며, 상대는 언젠가 부끄러움을 느낄 것만 같은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가 핵심이다. (상대가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무례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나 역시 그 사람 레벨로 낮아질 필요가 없을텐데, 역시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


나의 톤은 무슨색일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들리고 싶은 톤의 색깔을 탐색해본다. 너무 강한 빨간색으로 들린 적은 없는지, 그것이 그나마 열정적인 빨간색이 될 수 있었을까. 너무 아이처럼 샛노랗게 이야기한 적은 없는지, 그것을 팀에 밝은 기운을 주는 노란색이 될 수 있었을까. 같은 색이라도 나의 의도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색의 톤 역시 정해진다. 즉, 좋은 색, 나쁜 색이 아니라(색이 슬퍼할 수 있으니(?)), 같은 색이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화났을 때,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어느 색의 톤으로 말하는 사람인가?(이럴 때가 찐임.)


일단, 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남편의 답답함을 보았을 때 어떤 색으로 말하는지 자기 관찰을 시작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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