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작은 회사였다. 본사는 유럽에 있고, 호주에서는 이제 막 2년 반을 넘은 스타트업에 가까운 회사로 직원 수가 많지 않은 덕에 일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인데 신입 면접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었다. 매번 구직하는 면접자로 들어가다가,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에 '구직'의 관점이 바뀌는 큰 계기가 되었는데,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1단계: 이력서 2단계: 케이스 스터디 1 - 시드니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지 10분 안에 풀이 내기 3단계: 화상 면접(20분) - 이력서 바탕으로 한 질문 4단계: 화이트보드 케이스 스터디(90분) - 실제 데이터 샘플로 문제 해결 과정 토론 5단계: 케이스 스터디 2 - 오피스에서 하루 팀원과 함께 일 하며 데이터 수집/분석 실행하기 6단계: 프레젠테이션(60분) - 5단계 2~3일 후 오피스로 와서 분석 발표하기 7단계: CEO와 간단한 면담
당시에 코로나로 실업자가 많아 그런지, 지원자가 보통 때보다도 더 많았다. 한 번 걸러진 이력서를 받아 보고 그중에서 다음 단계에 가게 될 지원자를 보는데, 주로 스킬 셋에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와 함께 프로젝트 참여 경험 들이 설명되어 있으면 쉽게 통과가 되는 편이다.(한국에서 구직할 때는 자소설을 써대곤 했는데,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을 글 몇 천자를 써대는 대신, CV에는 스킬/경력 설명에 더욱 힘을 주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다.)
케이스 스터디 1은 정확히 나무가 몇 그루다, 라는 결과보다는, 결과 도출을 위한 로직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여 며칠이 걸릴 법한 방안을 제시하고 아무 추정 값을 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컨설팅 회사였고, 클라이언트 베이스로 운영되므로, 시간 내에 방법이 무엇이든 일단 중간 결과물이라도 생산해내길 원하는 회사 문화 상 그런 경우는 또 탈락이 된다. 살짝 힘을 뺀 유연한 사고가 더 도움이 되는 케이스였다고 할까.
실제로 지원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3단계부터흥미진진하다. 보통 대표와 함께 면접에 들어가는데,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에는 지원자를 거르는 것이 목적인 단계임을 감안해 보통 'No'라는 쪽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가끔 대표의 'No'라는 이유가 신박했다. 많은 면접자가 있었으나 그중 일부만 예를 들어보겠다.
당신이 면접에 탈락한 이유
지원자 A: 대표의 논리에 허점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지원자.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뷰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회사의 방향이나, '클라이언트가 왕'이라는 모토인 대표는 지원자의 태도가 클라이언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 염려되어 'No'.
지원자 B: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대표도, 면접이 끝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거들었다. 지원자는 이번 단계에서 나무 케이스에서 본인의 논리가 어땠는지 의논할 줄 알았는데 하지 않았으니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적극성과 논리성, 그리고 그의 경험과 데이터에 대한 열정, 회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 사 괜찮은 지원자라 생각했다. 대표는, 왜 묻지도 않은 걸 설명하고 나서는가가 'No'의 이유라고 하였다.
지원자 C: 4단계 화이트보드 케이스에서 이 지원자는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다른 종류의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어진 데이터로는 여러 가지 가정을 바탕으로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그것이 신빙성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하필면접 보는 회사가 종종 데이터가 부족해도 이런저런 가정을 세워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는 것을 원한다는 것. 결국 아마존에서 근무하고 있던 지원자 C는 4단계를 통과하지 못한다.
보다시피, 다들 실력이 출중하고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원자들이었지만, 다음 단계로 가지 못했다.
최종에 올라온 지원자가 정말 이 앞의 지원자 셋 보다 나았는가?
아니었다.
지원자 D: 좋게 말하면 사람이 밝고 착한 편이었고, 대표의 입장에서는 조금 편하게 일을 부릴 수 있을 것 같던 지원자. 결코 실력만으로 그녀가 최종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뽑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모든 회사가 이렇게 사람을 거르지는 않는다. 대놓고 대표 뒷담화를 하는 것 같아 찔리긴 하지만, 면접의 아이러니함을 직관한 1인으로서, 이런 건 기록을 하여, 훗날 어딘가에서 또 구직을 하고 있을지 모를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펼쳐봐야지 싶었다.
Emily in Paris Season 2 마지막에서 Emily와 그녀의 직장 상사 Madeline의 대화를 빌려보자면
|Emily: Don't we need to replace the experience that we lost?
|Madeline: I don't need willful execs with ten years of bad habits they need to unlearn. I need little mounds of clay that I can mold into the exact team that I want.
|Emily: like... like me?
|Madeline: Exactly. You are my little terminator. I need more of you, but not too many.
Madeline은 이 대화에 앞서, Younger, greener, much cheaper 즉, 이제 더 젊고 파릇파릇한, 게다가 더 저렴한 인력들을 고용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경력으로부터 오는 일의 스타일이나 본인의 잣대가 있는 사람보다는, 작은 지점토처럼 본인이 딱 맞추어 모양을 낼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고.
이처럼, 어떤 회사에서는 종종, 위와 같은 조건을 마음속에 두고 사람을 뽑기도 한다. 내가 잘나서 뽑힌 게 아니라 단지 젊거나 저렴하여, 혹은 누군가를 위해 작은 지점토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뽑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바지 면접관으로 들어갔던 회사에서 떨어진 친구들은,
낙심할 필요가 있었을까?
더 나은 곳을 가려는 여정일 뿐
떨어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실력보다는 사람 자체의 끌림으로, 혹은 성향으로 결과가 갈리는 경우도 많고, 타이밍 같은 것, 혹은 누가 면접관으로 들어가느냐의 운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덜 간절해서(간절의 척도는 없지만, 간절하니 붙더라는 말을 듣고 현타 왔던 1인), 실력이 부족해서, 못나서가 아니라, 외부의 모든 복합적인 것이 섞여서 나오는 결론. 이렇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 떨어지는 게 오히려 잘됐다 싶은 곳도 있고 말이다.
회사의 합격은 마치 웨딩마치와 같다. 딱 그 순간, 축제 같은 분위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 같은 걸 느끼지만(응? 내가 결혼할 때 그랬나?), 회사생활과 결혼생활은 길게 보고 가야 한다. 결혼식이 결혼생활의 시작인 것처럼, 회사의 합격은 길고 긴 회사 생활의 시작일 뿐인 것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둘이 맞추어가는 어려운 결혼 생활이 그나마 평탄할 수 있듯, 좋은 회사를 만났을 때, 그지 같은 회사 생활이 그나마 견딜만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불합격 소식에 너무 낙심하지 말자.
예전에는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기가 죽기도 하고, 자책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이 나에게 맞는 곳,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만족하며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나기 위한 여정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