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독립군인 우리가 어린이집에 의지하는 정도는 100%, 아니 2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가 9개월부터 다니기 시작하여, 둘째도 자연스레 합류한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양가 부모가 이곳에 계시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가족과 같았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는데, 아이들에게 단호하면서도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주어 부모의 입장에서는 선생님께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번번이 느끼곤 했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첫째 맡길 곳을 못 찾아 남편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 원장님께 잘 아는 내니를 소개해줄 수 있는지 부탁하게 되었다. 아무리 출산하는 그날 하루지만, 온라인에서 찾은 내니에게 덥석, 또 진통이 오는 때가 몇 시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아이를 맡기려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정을 들은 원장님은 그날 오후, 놀랍게도 본인과 수퍼바이저 선생님이 출산 시 첫째를 돌보는 걸 함께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진통이 언제 올지 모르므로, 본인이 어린이집 나와야 하는 시간일 때는 수퍼바이저 선생님께 본인이 연락을 하여 첫째를 데리러 오시는 것으로, 오전에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사이 계획을 세우신 것 같았다.
사실 이 분들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코로나가 막 시작되고 경제가 악화되면서 남편 회사가 송두리째 파산 신청을 하여 일이 없어진 시기가 있었다. 다행히 나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으나, 한 사람의 수입으로 어린이집 비용에 융자까지 감당하기는 너무 비용이 컸다. 어린이 집에 양해를 구하고, 남편이 일이 다시 잡히는 대로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원장님께 전화가 왔다.
수박이 그냥 보내세요. 코로나로 저희도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한 명이라도 아이가 더 오면 서로 놀 친구들도 있고 좋을 것 같아요. 우리도 수박이가 보고 싶고요.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해 주실 일인가.
나는 둘째 임신 중이었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직장 잃은 남편과, 아이까지 집에서 복작대니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으니, 그때 원장님의 전화는 정말 한줄기의 빛이었다. 선생님께 죄송하면서도, 정말 아이를 그냥 다시 보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재미없는 엄마 아빠와 있으면서 아이도 답답해하는 것 같았는데, 어린이집에 가더니 아이의 얼굴이 활짝 핀다. 거기서 배우고 놀던 가락이 있어, 아이도 내심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를 보내고 일주일 후, 정부에서 코로나로 인해 모든 어린이집 비용을 한동안 부담한다는 정책이 발표되었고, 남편 회사 문제 역시 2주도 채 되지 않아 해결되었다.(어쩔 땐 이런 게 로또다 정말.) 사실 마냥 길어질지도 모르는 남편의 실직기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선뜻 손 내밀어주셔 참 감사했었다.
둘째 출산은 딱 40주가 된 첵업하던 날. 이미 자궁경부가 5cm가 열렸는데 이러고 돌아다닐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병원에서는 다시 집에 나를 보냄) 내일 새벽까지 진통이 오지 않으면 오전 6시까지 병원으로 와서 양수를 터뜨리기로 예약을 했다. 덕분에 새벽에 급하게 진통이 왔다고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아도 되었고, 그날 저녁 첫째는 거리가 가까운 수퍼바이저 선생님 댁에 가서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선생님 딸과 함께 선생님 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 날 아침에 선생님 출근하실 때, 함께 어린이집에 가 저녁에는 남편이 픽업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오전 중에 둘째 출산을 무사히 마쳤다.
이랬던 어린이집이었는데. 어린이집 자리에 메트로가 들어서면서 건물주와 도로공사 쪽과 문서/법적 문제가 많았었나 보다. 난데없이 2주 후에 어린이집 문을 닫는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선생님이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어린이집 자체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서, 선생님을 먼저 걱정했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당분간은 아무 계획이 없고, 조금은 쉬어가보겠다고 하신다. 그래 좋은 생각이에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사셨어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어요. 마지막 날 선생님들께 꽃다발과 선물을 전해드리면서, 아이들보다도 내 마음이 더 헛헛했던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것도 2주 안에. 그것도 우리 부부 둘이서만 알아보아야 하는 상황이 막막했다. 정말 급히 알아보고, 오리엔테이션을 잡고, 2주 안에 어찌어찌 구하긴 하였으나, 우리 아이들의 첫 번째 Second home(너무 집 같이 해주셔서, 우리끼리 어린이집을 불렀던 말) 만한 곳을 찾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거의 천운을 타서 마치 마법사와 같은 원장님과 그곳의 선생님들을 만나, 둘이 맞벌이하면서도 든든하게 4년을 보낼 수 있었다.
Elizabeta 선생님,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초기의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어요. 덕분에 죄책감도 없이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는 게 너무 당연한 엄마가 되었네요. 가끔 아이들이 다 알고 우는 척을 한다고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럴 땐 모르는 척 있으면 알아서 일어나 다가온다고 알려주신 것도요(둘째 성향 파악 저보다 잘하신 듯요). 첫째가 친구에게서 '넌 내 친구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은 것 같았는데, 아이가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의 마음을 호탕히 쓰다듬어 주셔서 감사해요(아이가 집에 와서 말해줬어요). 단호할 땐 단호하셔서, 아이들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제 때 배운 것 같아 감사해요. 이 외에도 줄줄이 나열하자면 많겠지만, 이만 줄일게요. 첫째가 종종 선생님 이야기를 한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시고 언젠가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