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순, 아이들이 한번 크게 앓던 때 남편도 같이 아팠던 적이 있다. 연애기간까지 합쳐 10년을 함께 지내면서 남편이 아픈 걸 본 적이 없는데, 올해 한 번 크게 아픈 걸 보고 적잖이 놀랐었다. 그 와중에 나만 안 아프다고, 정말 강철체력이야 혼자 에너지 뿜뿜 다녔는데.
남편은 회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장을 다녀왔고, 이후 병이라고는 평생 안고 가는 류머티즘과 갑상선 말고는 잔잔바리로 아픈 적이 없던 내가 뒤늦게 앓기 시작했다.
약 좀 챙겨 먹을까 싶어 약상자를 보니 유효기간이 무려 2년 전에 끝난 것뿐이었다. (여보, 당신이 아플 때 먹은 약 그거 2년 지난 약이야.)
다들 싹 나았는데, 혼자 뒤늦게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족구가 한 바탕 집안을 휩쓸고 지나가던 때. 이번에도 나 빼고 온 가족이 아팠다.
내가 아이들을 더 많이 돌보니까 병균이 옳아서 아픈 거야.
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다 생각하면서도 선뜻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니야, 내가 손을 얼마나 깨끗이 씻는데. 당신 막 둘째 얼굴에 자기 얼굴 부비고 그런 거 아니야? 손은 잘 씻었어?
남편의 위생을 지적하며 내가, 이번에 또 다들 회복하고 나서 아프다.
이 정도면 아픈 걸로는 뒷북 전문가.
이렇게 아이들 아프고서 그걸로 끝, 하고 지나가면 너무 다행이지만 갑자기 나까지 아프면 곤란해지는 이유가 있다. 회사에 이미 아이들을 돌본다고 Carer's leave를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본인이 아프다고 병가를 내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회사가 이해를 해주고 어쩌고 해도, 일단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왜 하필 아픈 건 밤 사이 급작스레 오는 건지. 전날 회사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아픈 티가 났다면, 뭔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은데, 회사에서 정말 팔팔하다가 갑자기 아프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가시방석이다. 직속 리더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밤사이 열이 많이 나서..내일 다시 업데이트해 드릴게요.
많이 아파요? 걱정 말고 푹 쉬어요. 어서 낫길 바랄게요.
그렇게 그날 하루는, 병가를 내고 쉬는데 하필 둘째도 또 숨에서 쇳소리가 나고 하여 쉬는 게 좋겠다 싶어 완전 혼자 쉬지는 못하고 둘째와 껴안고 쉬었다.
어른 한 명이 아플 때, 아이가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라면 아이 하나도 같이 쉬게 되는 현실.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 어린이집 가는 아이도 고될 텐데, 이럴 때 아이도 평일 하루, 엄마나 아빠와 쉬지 싶어서 그렇게 한다. 혼자 완전히 쉬는 날은 럭셔리인 거다.
다음날 무겁던 몸이 그나마 앉아서 일할 정도는 되는 듯 하여 아침에 직속 리더에게 문자를 보냈다.
열이 내리니 몸이 한결 나아졌어요. 오늘 집에서 일할게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어요.
무리하지 말고 쉬란다고 정말 쉴 나도 아니지만, 이런 문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힘이 된다. 만약 내가 오늘은 좀 나으니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했는데, 아 그래요 그럼 이거이거이거 좀 처리해 줄래요 라는 대답 같은 게 돌아오면 업무의 무게감도 무게지만 마음이 얼마나 무겁겠느냐는 거다.
한번은 아팠던 시기가 바쁠 때여서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일은 언제나 있어요. 몸 회복에 신경 쓰고, 돌아왔을 때 하면 되죠. 걱정 말아요. 다 삶의 일부지 뭐.
It is a part of life.
그때 깨달았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내가 아픈 것. 혹은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는 것. 이 모두 삶의 일부라는 걸. 물론 [일]역시 삶의 일부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일] 앞에서는 다른 여러 가지 일부를 쉽게 취급한다. 내가 아파 일을 못하게 되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고, 아이가 아픈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삶의 중심을 지탱하는 것들이 신호를 보내와도 나에게 돈을 주는 일이 먼저가 되곤 하는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플 수 있지. 아이들은 원래 아프면서 크는 거고, 일 보다 중요한 일이 생길 수 있지.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일] 외의 것들을 돌보아야 하는 시간들을 쓰면서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워하면되는 것이다.
Work Ethic,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다. 나를 위해서도, 팀을 위해서도 더 잘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하는 것. 그러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당신의 건강이, 당신의 가족이 먼저니 잘 돌보고 돌아오라고 말해주는 배려를 기꺼이 받고, 그래서 여력이 될 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지금 내게는 최선이 아닐까.
물론 아프지 않으면 이렇게 깊이 고민할 일도 없다. 둘째 끼고 자고서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몸이 비실비실 생각보다 가늘고 길게 간다. 빨리 잘 먹고, 잘 쉬어서 퍼뜩 일어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