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본격 재택으로 들어선 지 4-5개월 정도 지났다. 백신 접종률이 80% 이상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바깥 활동의 제한이 풀려, 이제 회사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오피스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실천하는 중이다.
회사 가는 날, 우리 집 아침 풍경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시장통. 남편은 일찍 일어나지도 않으면서 아침부터 요가와 근육 운동을 하겠다고 하고, 꼭 아이들 준비시켜야 하는 시간과 맞물려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이때부터 속이 끓기 시작). 재택을 하는 날에는 내가 아이들을 맡아 준비하면 되지만, 회사 가는 날은 나도 준비를 해야 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 마음이 바쁘다.
강아지 산책도 해야 하고, 첫째는 조금 컸다고 일어나기 싫다는 투정부터 시작해, 옷 입히고 준비하는 내내 어르고 달래다 어느 날은 그러면 그냥 잠옷 입고 가, 선포 아닌 선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옷을 갈아 입힌다. 집 나서기 전부터 이미 퇴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날 우리는 10분 늦게 버스에 올라탔다. 준비하는 시간만 바짝 전쟁통이지, 또 나오면 나온 대로 숨통이 트인다. 오랜만에 시티로 나가는 길이 설레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버스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으니까.
시간을 보니 아무래도 아이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는 건 무리일 것 같다. 어린이집은 예전 회사와 가까웠다. 다행히 남편 회사도 그쪽이라 남편이 데려다주면 되는데 아이가 서운해한다. 모처럼 엄마도 같이 나왔는데 엄마가 같이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냥 데려다주고 조금 늦게 갈까. 고민하다 남편에게 말하니 늦지 않게 가는게 좋지 않겠느냐 한다.
헤어져야 하는 길목에서 첫째가 나의 다리를 껴안고 엄마, 같이 가면 안돼 울먹인다.
수박아 오늘 우리가 늦게 나와서 엄마가 오늘은 같이 못가, 미안해 다음에 꼭 같이 갈게.
훌쩍거리며 제 아빠 옆에서 걷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는 나도 얼른 회사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아직 아무도 없다. 그래 뭐 첫번째로 출근할 수 있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뭐지.. 딱히 정해진 출근시간은 없지만 9시 즈음으로는 일을 시작하는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 있다고 믿었고, 이직한 지 6개월 정도 되어 가는 이 늙은 미생은 그 시간을 지키려는 편이었다. 락다운이 끝난 후 처음 오기로 한 날이어서인지 9시 반 즈음에 하나 둘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 속상해. 늦더라도 어린이집 갔다가 갈껄, 오늘따라 다들 늦게 왔어.
남편에게 문자 하며 애써 속상한 마음을 훌훌 털어내고는 저녁에 아이를 만나면 꼬옥 안아줘야지, 잘 설명해줘야지 생각하며 퇴근길을 서둘렀다. 아이를 만나자마자,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수박아, 아침에 엄마가 어린이집 못데려다줘서 속상했지?(엄마도 속상했어~ 라는 말이 이미 목구멍까지 마중나왔는데)
응? 뭐라고 엄마?
아니 아침에~
아 내가 뭐하는거지. 굳이 또 들출 필요가 있나. 한 번에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그 일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면 '속상' 비슷한 말만 들어도 귀가 번뜩 했을텐데, 보아하니 아이는 이미 까맣게 잊고 어린이집에서 신나게 놀다가 온 모양이다. 그래 다행이다 금세 잊어서.
돌아보면 오늘따라 아이도, 회사도 그 뭐 그리 매사 진지하게 마음을 쓰고 충실히 하려 하나, 하는 것만 같다. 뭐 좀 못데려다줄 수도 있고, 아니면 데려다주고 늦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괜찮은데 혼자서 온 마음 써가며 마음이 불편했다가 아쉬웠다가 줄다리기를 한 셈이다.
남들 커리어 시작하는 20대에 도망치듯 한국에서 나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살아남느라 나이만 먹었다. 그 사이 일한 카페 경력은 커리어가 되지 못했고, 한국 학위는 인정이 잘 되지 않아 돌아 돌아 겨우 회사원의 꿈을 이룬 경력 짧은 병아리 워킹맘(이라 쓰고 늙은 미생이라 읽는다).
오늘도 아이와 회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의 대가를 치러내는 중이다. 언젠가는 조금 덜 동동거리는 단계로 레벨업 하리라 믿으며.
일단은 다들 엄마 회사가는 날은 좀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