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는 때가 있다

두번 째 백수의 삶을 시작하며

by min


할 일이 없으면, 아니 할 일이 쌓였어도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냥 이 5평짜리 방에 들어와 음악이나 듣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끝을 모르는 불확실성에 지친다.
평균은 해오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낙오자가 된다. 애쓰는 위로에 나는 또 미안하다. 괜 찮 다. 그 순간엔 눈물 찔끔 날만큼 당황스러운 일에도 나의 존재는 가벼워 죽겠는데 이런저런 감정 담아가며 나를 저울질할 필요가 있을까.

공허 그 자체의 밀도는 쇳덩이 었다.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얼마나 무거워 떨어졌는지, 바스락거리며 깨지는 소리가 초겨울 내내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울부짖다 굳어버린 마음의 비명인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일까.

오늘은 바람이 불었다. 죽음보다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제 나는 안다. 눈이나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 2009.11.10 00:00


인턴 후 꾸준하게 함께 면접 스터디를 해왔던 친구들과 지원했던 회사에 나를 제외하고 모두 합격소식을 쥐어들던, 그들의 인생에선 꽤 역사적이었을 그 날은 나에게도 차라리 쉬웠다. 축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부럽다고 말하는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다음날에도 해가 뜬다는 사실과 하루아침에 확연히 달라진 그들과 나의 인생이었다. 날카로운 겨울바람과 함께 창가를 가르며 들어오는 햇빛을 피해 마치 죄인인 냥 웅크리고 앉아 길고 긴 낙담과 좌절을 눈물로 담아내던 어린 시절이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따위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떨어진 것도 감당하기 힘든데, 졸지에 간절하지도 않았다는 혹은 덜 간절하였다는 열정에 대한 의심까지 어깨에 고스란히 얹혀, 마주해야 하는 결과는 마치 내가 간절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삐딱한 마음까지 갖게 된다. 내 간절함에 얼마나 더 보태야 당신이 가졌던 그 간절함의 크기가 되는 걸까. 그 편리하고도 당당한 문장의 진정성을 의심했고 외면하고 싶었다.


당신 너무 부정적이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 이후로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더 이상 입에 담지도, 믿지도 않는 적당한 냉소를 갖춘다. 나 역시 미치도록 간절해 보았으나, 이루어진 적이 없던 무수한 파편 같던 날들이 뾰족하게 각인되어 그 멋진 드라마 같은 문구를, 이제는 덤덤하게 읽을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 말하지는 못한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을, 혹은 오늘도 하염없이 간절할 하나하나의 삶을 비하하지 않기 위한 예의를 차리는 방식.


7년이 지났다. 세월만큼, 개인적으로는 해외생활을 하며 부쩍 단단해진 마음을 갖추고 서른이 되어 간절한 듯 간절하지 않게, 그러나 독하게 공부를 한다. 2016년 6월 중순 논문을 제출하고 6월 말 프리젠테이션을 마쳤다. 간간이 바리스타 트레이너를 하겠지만 공식적으로는 통계학 과정을 마치고 직업을 구하는 '백수'이다. 또다시 그때 그 자리, 인 듯 하지만 많이 변한 스스로를 바라본다.


몇 개의 이력서를 냈으나 Unfortunately 라는 단어만 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메일을 받는다. 이미 논문이 끝나기도 전에 일을 구했다는 연구실 한 친구를 보며 나도 얼른 시작하고 싶다는 그 욕심 같은 간절함은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천천히, 하고 싶은 일에 지원한다. '경력' 이 없으면 유난히 일을 구하기 힘든 이 나라의 시스템 상 막 졸업을 한 내게 그 경력을 만들어줄 회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무장된 마음으로 가뭄에 콩 나듯 공고되는 일자리들을 찾는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좌절을 할 이유는 없다. 행여나 지원한 곳에서 '당신은 아니에요.'라고 한다면 그건 그 회사가 나와 맞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 마치 인생 전체를 거절당한 듯, 그 회사가 삶의 전부였던 듯 낙담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약했던 마음 덕분에 호되게 배웠다. 사회가 결론짓는 판단, 소속, 지위에 의존하다 다친 마음에 대한 책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 있으니 친구들의 소식이다. 공부하는 동안, 여섯 명의 친구가 아이를 낳았고 두 명의 친구가 임신을 했다. 이제 막 과정을 마친 지 일주일이 되는 나는 머무르지도 나아가지도 못하겠는데, 그 와중에 아이를 낳는 친구들이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니, 그 멀리 있어도 이런 것들이 신경 쓰인다니 신기하단다. 인이 박히듯 삶 속에 녹아들어 버린 내 나라의 문화는 얼마나 끈질긴가.


느리게 산다는 것은 오늘도 참 어렵다.

모두에게 때가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자리가 나면 지원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니 모처럼만의 휴식을 자발적으로 즐기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함부로 간절해하지 않는 이 식어버린 마음을 조금은 애달프다 여기며, 담담하게 거절의 터널을 지나갈 수 있도록 나만의 여정을 만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