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며칠 전 부터 첫째 때의 고통이 상기되면서 뒤척이는 밤을 보내는데, 한 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보다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겁부터 앞선다. 아는 고통이라 더 무서운 것이 아무래도 출산은 한 번 경험이 있다고 쉽게 맞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듯싶다.
첫째 때,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읽은 글귀들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특히, 진통을 겪는 동안 엄마는 우주 저 편으로 가 아이에게 줄 영혼을 따 오는 것이라는 말에 많은 힘을 얻어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지날 때마다 아이를 위해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홀로 별나라를 여행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출산일은 아이가 정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첫째 때도 41주 하고도 하루를 넘어 자연진통이 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조금 더 일찍 내려왔는지 39주인데도 골반쪽이 종종 불편하다. 어제 본 정기 검진에서는 자궁 경부가 조금 열려 있다고 하고 의사 선생님 내진 후 곧 진진통이 올 듯 밤새 배가 아파 잠을 설쳤는데. 해 뜨니 진통이 또 가라앉는다. 둘째라고 가진통 진진통 구분도 척하면 척으로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니 첫째 경험이 다 무안할 따름이다.
뒤척이는 밤과 함께, 다짐하게 된 것은 결국 내가 강해야 한다는 것. 엄마의 고통만큼 아이도 힘들고 아프게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함께 하는 여정 속에서 내가 숨을 잘 쉬어야 아이에게도 편안하게 공기가 간다는 것을,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기억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왠지 모르게, 이번에 둘째가 태어나면 정신이 없을 것만 같아 출산 후의 계획도 얼추 간추려 보려 한다.
1. 몸을 건강히
첫째 낳은 후,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생겼다. 이미 류머티스라는 자가면역질환이 있었고, 첫째 낳은 후 이직한 회사 생활이 고되면서 스트레스성 두드러기 등등 면역이 많이 약해졌었는데, 이번 출산 후에는 스스로의 건강을 되찾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햇빛을 쬐고, 많이 걷고, 근육량도 서서히 늘리면서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
2. 마음도 건강히
몸을 건강히 하고자 하는 이유는, 몸이 아프면 마음도 많이 약해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피곤하다고 느끼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정신적으로도 많이 부정적이었고, 그렇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쉬이 소홀하게 되었다. 아이가 둘이면, 기본을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더 힘들지 벌써부터 상상이 되는데, 건강한 마인드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고 싶다.
3. 일과 가정, 그리고 나 발란스 맞추기
늦게 일을 시작한 만큼, 아직도 커리어적으로 단단하지 못한 나는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마음고생이 심한 편이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의 자질보다는 더 많은 클라이언트로 확장하기를 바라는 대표의 압박 역시 작은 회사 콤플렉스의 일종이었으리라. 물론, 이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얻는 장점들도 있다. 이미 익숙해진 일과 사람들, 그러니 더 잘해보겠다고,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업무에 대해서는 계속 저평가될 테니, 그곳은 그저 그렇게 대표의 왕국으로 두고 나에게 좀 더 맞는 분위기의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둘의 엄마로서 새로운 회사를 다시 알아보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와 우리 가족에게 긍정적 효과를 주리라 믿고 도전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는 홀수를 좋아한다. 텔레비전 볼륨을 홀수에 놓고, 물을 마실 때도 홀수만큼 목 넘김을 한다는 그 종류의 사람. 그래서 아이도 셋을 낳고 싶다고 남편에게 어필하지만 훗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딱 우리 두 사람의 수만 채울 두 명이 좋다는 남편이라 소중하게 찾아온 둘째가 우리의 마지막 아이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출산 후의 시간을 좀 더 명확히 그리려 하는 것 같다.
이제는 다른 에디션 없이 그대로 삶이 계속되어가는 것이니까. 아이를 돌보고, 회사를 나가고, 저녁을 고민하고, 자칫 쳇바퀴처럼 굴러가게 될 그런 삶. 그리고 그 삶에 행여나 지쳐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출산 후의 삶을 그려보며 나 자신부터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를 품는 동안은 희망을 품는 느낌이었다. 다달이 뱃속에서 커가며 태동으로 신호를 보내는 아이, 곧 그 아이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감 같은 것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존재를 받아들이고 맞이하는 시간이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는데, 이제 그런 시간이 다시는 없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살짝의 허전함까지 든다.
진진통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 남편과 나,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조금 더 성숙한 부모로아이들과 함께 성장할 날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