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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Nov 29. 2023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라

뭔지 알아도 꾹 참고 지켜볼게

이건 먹어봐야 돼. 이거 이상해. 뭔지 모르겠는데 계속 생각나거든.


출국 전, 일단 도착하면 졸리비에서 햄버거부터 먹고 시작하자는 친구의 말에 속으로 얼른 들어가서 애들 재워야 할 텐데, 그 시간에 햄버거를?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지시각 밤 11시가 넘어 필리핀에 도착하여 친구얼굴을 보니 지쳤던 데다 안도감이 들어 갑자기 허기지기 시작했다. 그랩을 잡으려는 친구를 붙잡고 말했다.


햄버거 먹자며!


꼬불꼬불 영어메뉴를 찾아 읽으며 메뉴를 고르자, 친구가 예전에 사진 보내준 것 기억하냐며 졸리비 스파게티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다지 볼품없이 생겼던 스파게티 사진을 보내오며 이상하게 생각난다했던 그 스파게티.


우와, 먹어보니 평소 알고 있던 토마토 스파게티 맛도 아닌 것이, 약간 달달한 고추장 맛 같은 게 나는 것 같으면서도 고추장은 또 아닌 것이. 되게 단데 또 막 달기만 한 건 아닌 이건 도대체 설명할 수 없는, 모르는 맛인데 맛있다. 뭐지?





살다 보면, 그런 게 참 많은 것 같다. 뻔히, 아니 빤-히 보이는 것들. 그런 만큼 거기에 걸려 넘어지기가 쉬운 것 같다. 실은 내가 요즘 그러고 있는 것 같다.




1학년 2학기 들어 받아쓰기를 시작한 첫째는 100점을 받고 싶다며 징징 거렸다. 방법이 줄줄 보인다. 첫째, 받아쓰기 연습을 죽어라고 하는 거다. 여러 번 쓰고 달달 외다보면 틀리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둘째, 책을 많이 읽는 거다. 받아쓰기 연습보다 시간은 걸릴 테지만 인생에는 받아쓰기 급수표에 나와있는 글자들만 필요한 게 아니니까 궁극적으로 더 많이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많이 쓴다.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봐도 좋겠고, 아니면 읽은 책에서 문구를 발췌해 적어도 좋을 것이다. 당장의 효과는 첫 번째 방법이 제일 좋을 거고 장기적으로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이 맞춤법을 익히는 데 훨씬 좋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런데 아이는 세 가지 방법 다 쓰지 않은 채 징징. 그러면서 글씨 모양이 예쁘지 않다며 한 자 쓰고 지우고, 한 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받아쓰기는 당장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맞춤법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인 것이라 생각하는데 너무 간 건가. 글씨가 안 예쁘면 동그라미 두 개(이걸 받아야 쿠폰을 준단다)를 받을 수 없다며 울며 지운다. 그런 아이를 보며 너무 답답해 급기야는 지우개를 빼앗아두고 지우지 않고 일단 쓰자고 한다. 울며 쓰는 아이를 보며 속에선 천불이 난다. 아이도 답답하지만 실은 그렇게밖에 못하는 나 스스로가 더 답답하다.








최근 읽은 자녀 교육 관련 책에서 하는 말이 어렸을 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보게 하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커서 삽질한다고. 안다. 아는데 왜 잘 안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보다 시행착오를 덜 겪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 그래서 좀 더 쉬이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안다. 가지 않은 길은 미련을 남기고 미화가 되어 현재 가고 있는 길에 원망과 한탄을 남길 수도 있다는 것을.



미대입시에 실패 후 재수 생활이 확정됐을 때 부모님은 단번에 미술은 하지 마라 하셨다. 삐쭉삐쭉 입을 내민 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수능 날짜로 질질 끌려가던 내 머릿속에는 '미술을 했다면'이라는 게 계속 있었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황은, 미술을 하기 위해 공부해 온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술학원에 있는 시간 동안 다른 애들은 공부를 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성적이 떨어지면 야자를 빼주지 않겠다는 선생님 말씀 때문에 성적을 유지가 아니라 오히려 올렸다. 네 성적이면 미술을 그만두고 리더십전형으로 서울에 있는 무슨 대학교에 수시로 충분히 간다는 학년부장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공부를 못해서 미술을 하는 게 아니라 미술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겁니다'라고 당차게 말했던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게 다 사라지고 나니 그냥 시간에 목죄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련으로 미술은 몇 년이고 내 곁에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다른 전공을 선택하여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를 하던 중, 다니던 학교에 예체능 과로도 실기 없이 복수전공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했다. 신이 내게 준 기회(무교인데 어떤 신이 주신걸까)라 생각하고 신청했으나 성적을 관리하기에 실기 과목은 불리하다 판단, 겁이 나 이론 수업만 듣다가 조교의 실수로 교직복수전공은 신청되지 않았다는 것을 졸업무렵에나 알게 되어 복수전공 취소신청서를 작성하고 졸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조교가 원망스러운 게 아니라, 누가 말려서 미술을 못 한 게 아니라 내가 겁나서 미술을 못 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무런 미련이 없다.



그런 것이다. 졸리비 스파게티를 먹기 전엔 그 맛을 모르듯 안 살아봤고 공부라는 걸 처음 해보니 받아쓰기를 어찌하면 다 맞을 수 있는지는 이리저리 해보며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엄마가 하란 대로 해봤자 그 방법을 쭉 고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졸리비 스파게티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입맛에 따라 기호가 정해지는 법이다.






20대 중반 첫 해외여행으로 동남아 3개국을 간다는 나에게 아빠는 거길 뭐하러 한 달이나 가있냐고 했다. 그때 나는 대답했다. 한국에서만 20년 넘게 살았는데 다른 데 며칠은 오히려 너무 짧다고.


인생이 무너질 것 같던 1년의 재수생활도, 취업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아 불안했던 1년의 임고재수생활도 지나고 보니 인생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안다며 대들었던 나를 잊지 말고 아이가 골고루 찍어먹어 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걸 찾을 수 있도록 조금 잠자코 있어보려 노력해야겠다. 아직 아이는 어리고 시간은 많으며 조금 늦어도 열렬히 지지하겠다.


몇 점을 받아오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되 아이가 좋아하면 더 호들갑 떨겠다. 그러면서 책도 읽어주고 지켜보다 보기만 하지 말고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툭툭 던져주겠다. 그러고는 강요하진 않겠다(이게 제일 어려울 것 같다).


써놓고 보니,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엄마가 ㅇㅇ하랬지!(혹은 하지 말랬지!)” 라는 말부터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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