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더 충분히 쉬어도 돼
때는 약 일주일 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생각에 신나야 할 무적의 초딩 큰 아이가 울며 방으로 왔다. 무서운 꿈을 꿨다며 안기는데 아이를 안은 그 순간 이상하다 싶다. 이마를 짚어보니 뜨끈. 평소 기초체온이 높은 녀석이라 손발이 찬 어미가 만질 때마다 뜨끈하긴 했으나, 그래서 추위를 잘 타는 어미가 애착인형마냥 아이를 안고 자야지만 꿀잠에 들 수 있어 잠자리 독립을 한 뒤로 아이보다 더 아쉬워 했으나 이건 뭔가 잘못됐다 싶어 서둘러 가져온 체온계를 귓구멍 깊숙이 쑤셔넣고 재보니 38.9도. 38.9? 삼십팔점구?????? 와- 큰일났다.
저출생 시대라지만 사는 아이가 많은 이 동네에서 소아과 가기란 어지간한 오픈런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번엔 늦잠을 자서 6시 10분(저녁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는 바람에 눈 뜨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소아과로 달려갔지만 다 늦은 6시 28분(다시 말하지만 저녁 아니고 아침)에 도착, 51번째 순서로 접수하게 되었고 병원 진료 시작 후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로 넘어갈 것 같으니 순서 보고 시간 맞춰 잘 오시라고. 새벽 5시부터 대기해도 절대 1번일 수 없는 그런 곳에 살고 있기에 크리스마스에 아픈 큰 아이를 보며 심장이 쪼그라드는 조바심을 느꼈다.
똑닥 어플과 네이버 지도로 오늘 연 소아과 병원을 찾은 뒤, 그나마 접수가 가능한 곳에 접수를 해놓고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 상황설명을 했다. 지난 달 둘째가 두 번의 폐렴과 한 번의 장염으로 입원을 했고, 장염 때는 첫째도 함께 입원을 했던 데다 그 이후로 지속된 감기 증상으로 둘 다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던 터였기에 다행히 병원에서는 고열임을 감안하여 오라고 해주었고, 보던 의사선생님께 보기로 해주셔서 똑딱 어플로 해놓은 접수는 얼른 취소한 뒤 병원에 갔다. 저번 독감처럼 바로 수액 한 대 맞추면 열 내리겠지 했던 예상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열이 난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독감 검사를 해도 안 나올 확률이 50%이니 내일 아침에도 열이 나면 오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39.3도까지 열이 오른 아이를 재웠다. 종일 병원에 다녀올 생각으로 긴장해서인지, 아니면 그 긴장이 풀려서인지 컨디션이 너무나 안 좋았다. 코가 막 막히려들면서 재채기가 쉼없이 나오더니 맑은 콧물이 꽉 막힌 콧구멍 안에서 잘도 흘러 나왔다. 닦아도 보고 풀어도 보고 막아도 봤지만 콧물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포기할 줄 몰랐다. 아이들이 일찍 잠들었기에, 남편에게 열보초를 부탁해두고 타이레놀을 두 알 입에 털어놓고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영 이상하다. 낌새가 독감인 느낌. 하지만 직업 특성상 하루를 쉬면 수업 보충으로 일주일 이상 죽어나야 하니까, 게다가 학기 말 업무가 있어 꼭 가야 하니까 아이를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 다음날 있을 학교 행사 준비를 부지런히 하고 1교시 수업을 들어갔다 나오는데 어, 몸이 진짜 이상하다. 아무래도 독감같다. 눈에는 깜빡이면 흐를 것 같이 눈물이 고여있고 머리는 깨질 것 같다. 옷을 입었는데도 너무너무 추워 몸을 웅크리게 되고 허리가 만삭 때보다 더 끊어질 듯 아프다. 무릎이 시리면서 쿡쿡 쑤시는 것이, 독감은 처음이지만 독감이다. 확실히. 한 시간 사이에 축 쳐져버린 몸을 이끌고 교무실로 올라가는데 눈을 마주친 사람들마다 "아파요?" 묻는다. "네 그런 것 같아요...독감인 것 같아요..."
교무실에선 난리가 났다. 지금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 순간 수업도, 행사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아프니 중얼거린다. "저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독감인 것 같아요." 벌벌 떨면서 복무를 상신하고 다음날 행사와 관련된 일을 최대한 마무리한다. "죄송해요..나아서 올게요." 수액 맞으면 낫겠지 라는 생각으로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운전조차 힘들다.
남편은 회사로 들어가봐야 해서 큰 아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 함께 누워있다가 수액치료를 다 받은 아이를 집에 옮겨두고 그제서야 병원에 가서 검사(역시 독감이었다) 후 수액을 맞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38.6도라는 체온을 찍어봤다. 인터넷으로 독감에 대해 찾아보니 40도가 넘는 체온계 사진도 돌아다니고 그러던데 38.6도는 그리 높지 않게 보일 수도. 하지만 나로서는 독감도 처음이고, 38.6도라는 체온도 처음이었다. 와- 그동안 애들 39도 넘고 그랬을 때 얼마나 아팠던 거지? 그런데 그거는 그거고 나는 나대로 죽겠다. 엄마라면 자신이 아니라 자식을 더 잘 챙겨야 맞는 걸 텐데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아프고 나니 나 아픈 게 너무 커서 다른 게 잘 안 보인다. 엄마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정신 부여잡고 물이며 먹을 거며 잘 갖다, 사다 날랐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숨 자기로 한다. 조금은 쉬어야 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수액을 맞고 나서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흥건히 흐른 땀에 몸이 같이 녹아버렸는지 일으켜세우기가 힘들다. 아직도 두통이 심하고 몸살도 심하다. 해열진통제를 하나 더 맞을 수 있나 물었지만 의사선생님과 간호선생님 모두 지금은 안 되니 시간맞춰 처방약을 먹되 조금 더 누워 있다가 최대한 천천히 가라고 얘기해준다. 염치불고하고 눈을 좀 더 붙인다. 2-30분의 짧은 잠을 더 자고 나서 여전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집에 갔다.
시어머니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시고 아이들의 밥을 차린다. 입맛은 없지만 약을 먹어야 하기에 내 밥도 한 숟갈 뜬다. 남편이 오자 전원을 꺼버리고 두 살 둘째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아파 낑낑거리며 남편을 불러 추가로 약을 먹어가며 밤을 보내고 나니 상태가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행사 날이므로 몸을 일으키기로 한다. 새벽에 먹고 잔 약 덕인지 열이 조금 내려 당장 병원에 가더라도 해열진통제는 처방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제발 집에서 쉬면 안 되냐는 남편의 말을 뒤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건다.
학교에 도착하니 어떻게 왔냐는 눈치다. 힘들면 들어가라고. 하지만 행사 업무는 내 업무다. 안 할 수 없다. 시간이 갈 수록 몸이 무거워진다. 약을 털어넣지만 해소가 되지 않는다. 괜찮냐는 질문에 애써 웃으며 행사를 마무리짓는다. 뒷정리만 남았는데 다들 아파서 도움도 안 되니 빨리 가라고 한다. 또 죽겠어서 결국 뒷정리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불덩이다.
생각한다.. 분명 어제만 해도 집가서 조금이라도 애들 챙기려면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액 맞고 한 숨 더 자고 그랬는데 왜 오늘은 그걸 잊고 학교에 갔을까.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라는 부품이 없이도 학교는 잘 돌아가는데 어쩌자고 이렇게 다녀온걸까. 그래서 다시 열이 오르고 이렇게 힘들고, 애들도 집안도 돌보기가 힘들고 이러다 결국 길게 아프면 그게 더 식구들과 학교에 민폐인 것 아닐까. 책임감때문이라며 나갔지만 길게 아프면 더 책임감이 없는 것 아닐까. 생각에 괴롭고 몸살에 괴로운 밤을 보내고 나니, 큰 아이는 싹 나아있다. 아 하루 이틀만 더 아프면 내 독감도 끝나겠지, 아니면 못 쉬었으니 하루 이틀 더 걸리려나 생각한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가래섞인 기침을 한다. 쉴 때 제대로 못 쉬었더니 깔끔하게 낫질 않고 해를 넘겨 고생중이다. 좀 더 제대로 쉬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스스로를 더 아끼고 쉴 때 쉬어가야겠다. 엄마도 선생도 그만둘 게 아니니 보다 잘 해내려면. 그리고 글도, 일년을 넘게 쉬다 벼락치기 중이다. 그랬더니 제목빨이겠지만 브런치에 '픽'되기도 했다. 이제 그 다음 글은 무엇이 될지, 있긴 있을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안 쓸 게 아니라면 쉬어가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잘 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말고 지금보다 마음을 편히 먹게 해주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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