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일하지 않기로 마음먹다

당장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by 시월
내년에 보자


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아? 아~


지난 주 독감으로 못한 수업 한 시간에 더해져 오늘은 수업이 다섯 개다. 나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내년에 보자고 인사를 했더니 애들이 어버버한다. '바보들'하며 귀엽다는 듯이 웃고 싶지만 아직도 그게 어렵다. '바보'라고 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지. 그래, 애초에 '바보'라는 말도 놀리는 말로 가벼이 쓰이는 말이지만 적절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 하며, 자기검열의 기제가 발동한다. 말 한 마디도 쉽지가 않다.


24년 12월에 일어난 대한민국의 여러 비극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은 누군가 그랬지 않았나, 적절한 애도의 기간이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이제는 어떠어떠해야할 때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이다. 벌써 4년도 더 된 일이지만 사사건건 시시때때로 전화를, 문자를 해대던, 그러다 교육청에도 민원을 넣어대던, 몇몇의 사람들이 여전히 감시의 눈을 하고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아 숨쉬기 힘들 때가 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이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떤 장면 장면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생각난다. 그 사람들이 떠올라 예뻐하다가도 멈칫하게 되었던 그 사람들의 자식들이 떠오른다. 그걸 보고 뒷짐지고 나몰라라 했던 관리자들의 면상이 떠오른다.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지금 그곳이 아닌 여기에 있다. 복직한지 한 학기.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는 긴장에 공황 증세가 심해지던 시기도 있었으나, 한 학기 동안 일을 하면서 여기서 있었던 일로 인해 숨을 가쁘게 몰아쉬어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웃으며 밥을 먹었고, 업무에만 집중하여 일을 쳐냈다. 다만 가장 좋아했던 수업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는데, 하나는 에듀테크가 성행하게 된 상황에 적응하느라 그러했고, 하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얼굴들 뒤에 어떤 얼굴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 다행히도 그 얼굴들을 마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내년을 앞두고 있다. 이 시기는 업무 분장의 시기이다. 내년도에 하고 싶은 업무를 '업무분장 희망원'에 적어 낸다. 물론 그대로 된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말 그대로 '희망'하는 것이지, 그대로 해주는 것이 아니므로. 이럴거면 쓰라고나 하지 말지 하며 투덜거린 적도 있지만, 그래도 쓴다. 암, 써야지. 쓰고 종교는 없지만 두 손 모아 간절히 빈다. 이 자리 그대로 앉아 올해 했던 업무를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본다. 한편, 본디 담임이 맡는 업무였던 자리에서 비담임으로 배려를 받았으므로, 그리고 진로진학 대학원에 다니며 진로진학상담 전문교사가 되고자 하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으므로 용기내 담임을 지원하기로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2월이 되어야 안다. 모든 교사가 전입과 전출을 마치고, 기간제 교사 채용도 마치고 나서야 확정이 된다. 그러니 앞으로 두 달 동안 내년에 어떤 학년을 맡아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다만 계속하여 '희망'하며 점쳐볼 뿐이다. 가능성을 100% 열어둔 채 말이다. 이 시기는 정말이지 의미없이 속썩는 시간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어차피 담임은 하고 싶지 않다. 두렵기 때문에. 그러나 직접 희망원을 써서 냈고, 희망원에 비담임을 적어도 비담임하기란 쉽지 않으니 분명 담임이 될 것이다. 어느 학년일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담임이 될 거라는 사실뿐. 그렇다면 그냥 담임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한다. 업무는 지금 하던 걸 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많이 고민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걸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자면 업무도 하고 싶은 것은 없다. 덜 하기 싫은 것이 있을 뿐이지. 모든 직장인들은 다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괴롭게는 하지 않기로 한다. 어떻게 잘 보낼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기에도 모자란 게 시간이고 삶인 것 같으니.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부자는 일을 하지 않고도 자본소득으로 생활이 가능해야 부자라고 한다. 중산층은 일은 해야 하지만 자본소득도 있는 경우리고 한다. 그럼 일을 해야 생활이 가능한 나같은 사람은? 서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민은 영어로 working people라고 한다고. working people인 나는 당장 의원면직할 것이 아니므로, 매일 아침 일찍 소중한 내새끼들을 집에 두고 나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학교에 있을 때 괴롭지 않기로 결심했다. 누가 악의적으로 괴롭힌다면 또 다시 몇 년전의 그때처럼 지옥이 따로 없게 되겠지만 그런 일이 있지 않길 바라며 스스로 일터를 괴로운 곳으로 정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주 오래된 어느 광고에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했던 것처럼.



성탄절에도, 해가 바뀌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요즘이지만 이렇게 마음 먹고 나니 한결 편하다. 일단 내일 쉬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덧,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 만나요!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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