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말고 내가
작심삼일러가 되고 싶은데 삼일씩(?)이나 꾸준하기가 어려워 매일 작심하기로 작심하였다. 그렇게 작심 4일 째. 오늘의 작심 주제는 '집공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곧 겨울 방학의 시작 아닌가. 방학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안 지켜질 게 뻔한 계획을 세우는 데 있지 않은가. 엄마된 자의 도리로, 그리고 프로 작심러(이젠 작심삼일러도 아니다ㅋ)된 자의 도리로다가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집공부
사실 거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은, 아이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학습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그래서 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얘들아1기 동기 유선화 작가님께서 그 동안의 노하우를 담은 책을 내셨다. 제목은 무려 '1등급 집공부 학습법'.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6년 째 집공부를 이어오고 계신 노하우가 담긴 책과 더불어 혜자스럽게 특강까지 마련해주셨다. 안 들을 수 없지!
졸린 눈으로 열정적인 강의를 듣던 중 들어온 말 하나(둘, (셋, 넷, 열, 쉰, 아흔, 백가지 말이 모조리 다 기억에 남지만 책의 내용과도 연결되므로 두 가지만 말하기로 한다), 가족 대회에서 아이 비중을 늘리라는 것. 즉, 잔소리를 줄이라는 말이었다. 와, 잔소리가 업(業)인 사람으로서, 교사가 체벌을 할 수 없게 된 시절에 교사를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괜히 체벌했다가 체급이 한 수 아래인 것이 들통 나는 것보다 말로 조지는 것이 더 걸맞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이거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었다. 이론으로는 알겠지만 절대 실천이 어려운.
그 다음 말 둘, 공부할 때 지적말고 한 것을 찾아주라는 것. 앞선 것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결국은 잔소리를 줄여야 아이의 자기주도성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성취한 것을 찾아 칭찬해주면 아이는 또 성취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길 것이고 그에 따라 또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결국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목표나 동기가 생겨 자기주도성이 높아지게 되겠지. 그런데 잔소리 안 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
큰 아이가 일곱살이 되던 해 학습 패드를 구매하여 매일 기본학습과 중국어를 하게 했다. 영어도 시키고 싶었는데 영어는 절대로 안하고 중국어를 하고 싶다길래 뭐라도 꾸준히 하는 습관을 길러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기본학습은 사실 뭐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수준인 것들이어서 괜스레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글자도 잘 모르는 것이 중국어를 뻐끔거릴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영어를 억지로라도 시킬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큰 아이 여덟살, 어휘 독해 문제집과 연산 문제집을 풀게 했다. 풀리다보니 어휘 독해 문제집까지 꼬박꼬박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이가 학교에 학원(예체능이지만)까지 다녀온 뒤 패드학습과 문제집을 매일 풀려니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극성으로 시켜왔던 것도 아니면서 조바심을 느낀, 작심만 하는 엄마는 윽박과 협박을 버무린 잔소리 바가지를 박박 긁어대다가 현타가 와서 '스케줄러'와 '보상'이라는 묘책을 도입했다. 작심 전문가인 엄마와는 다르게 아이는 스케줄러가 두 세 권이 되도록 할 일 작성 및 체크를 해가며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거실도 서재화했다. 텅 비어있던 베란다 확장부분에 커다란 책장을 놓고 서재에 있던 책을 죄다 꺼내 꽂았다. 먼지가 가득한 어른책(이라 쓰고 내책이라 읽는다)의 대부분은 정리를 하고 꼭 보관하고 싶은 것만 서재에 남겼다. 그랬더니 첫째가 슬금슬금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걸 본 둘째가 끊임없이 책을 꺼내 놀고 읽기 시작했다. 둘째를 칭찬하자 첫째는 더 부지런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 이정도면 아이는 잘하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아직 영어는 까막눈이고, 책은 편식을 하는 등 갈 길이 멀지만 아이에게 부족하다고 느꼈던 '자기주도능력'은 유선화 작가님 말씀에 따르면 고등학교에 가서도 갖추기 힘든 역량이고, 한 것에 대해 인정을 해주어야 하니까 아이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기로 한다.
문제는 언제나 나다. 시작만 하고 끝이 없는, 꾸준함을 모르는 내가 꾸준히 해왔던 딱 하나. 바로 잔소리. 그것을 줄여야 아이가 자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큰 그림을 그려서 방향성을 제시해주며,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것처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하게끔 하는 훌륭한 역할까지는, 애초에 꾸준해먹지 못한 사람으로서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주눅이 들거나 너무 하기 싫지는 않도록 입이라도 좀 닫아야 하지 않을까.
말로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아이에게 하는 말같지도 않은 말은 돈이 되지도, 경력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만 내기 십상이니 2024년이 다 지나가는 이 마당에 하루라도 입을 다물고, 스스로 수양하는 자세로 집공부에 임하겠다고, 아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갖고 내가 갖춰야 할 자세를 탐구하는 그런 집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면 반나절이라도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