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얼죽코만 통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필리핀에서 사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왔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작년에 애 둘 데리고 쳐들어(?) 갔을 때 아주 반겨주던 그 친구가. 하여 다른 친구와 시간을 맞추어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사는 곳이 각각이다보니 결국 대한민국의 중심인 수도 서울에서 보는 것이 제일 낫겠다는 판단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를 어째. 독감에 걸렸다. 말 그대로 정말 뒤지게(?) 맞은 것처럼(그렇게 안 맞아본 게 함정) 온 몸이 쑤시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애들 돌봄과 출근을 해야 해서 낮시간엔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해가 지면 증상이 심해졌다.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리를 불렀다. 해떠있을 땐 원수같이 굴었던 남편이지만 약을 가져다 줄 유일한 동앗줄이다. 시리야, 남의편에게 전화 걸어줘. 시리야. 시리야..손끝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고 몸을 뒤집어 핸드폰을 손에 넣을 수 없어 애가 타도록 시리를 찾아, 결국에는 둘째 옆에 잠든 남편을 깨워 약을 타먹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안 그래도 먼 서울이 더 멀게 느껴지지만 더 멀리서 온 녀석도 있으니 장소를 바꾸자고는
못하고 날짜만 하루 미뤄 만나기로 한다. 당일이 되니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생각에 막막한 한편, 서울 사람들은 모두 얼죽코(얼어죽어도 코트)이지 않을까, 패딩을 입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다.
서울에 패딩입고 가도 되냐.
생각해보면 사는 날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그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이렇게 해도 될까. 저렇기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기 했다가 괜히 이러이러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들을 신경쓰는 날들이었다. 아니면 당위에만 가득한 날들이었다. 뭐뭐 하고나서 뭐뭐 해야하고, 그걸 할 때는 저러저러하게 해야 하고 그 다음엔 그러저러하게 해야 하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존재하지도 않는 정답을 찾다가. 의무와 당위 속에 해야 하는 것만을 좇다가. 잃었다. 내 자신을.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즐거운지 줄줄이 나열할 수 있었던 과거는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추워도 패딩을 입으면 혼자 동떨어지는 것 아닐까 두려워하는 얼간이만 남았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춥기까지 하면 누구에게 손해일까 생각하다, 그것은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거라는 자명한 사실을 되뇌이며 내복에 니트에 패딩으로 무장했다. 그 동안 차타느라 써본 적 없던 핫팩도 챙겨 대중교통 여행을 나서기로 결심,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걸려 나와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올 때와는 다르게 낯선 광역버스 번호를 웅얼거리며 외다가 타서 생각한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봤을지 모르겠으나 친구들과 먹은 밥은 정말 맛있었고 먹으며 떠드는 동안 눈물 날 만큼 웃었던 적이 몇 차례나 되고, 배가 찢어지도록 과식을 하였으나 마음이 편하여 부대낌이 없다. 이거면 된거 아닌가. 입은 겉옷이 코트인지 패딩인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다짐한다. 남들의 시선과 당위나 책무에서 조금은 벗어나며 나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찾으며 살아 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