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10days essay training_season2. day4.

by 시월

라면은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를 대변하기도 하고 늦은 밤 배부른 줄 모르고 먹는 야식을 대표하기도 한다. 그런 라면을 제일 많이 먹었던 때, 내 나이 16살일 때였다. 아빠의 사업이 망한지 2년 째 되던 해였으므로 가난하긴 했지만 다행히 끼니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선택에 의한 저녁 식사이긴 했다.


지금으로 치면 동아리 정도 되는 당시의 C.A 미술부에서 만난, 한 번도 같은 반을 해본 적 없던 친구들과 어쩌다 보니 엄청 친해졌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크로키를 그리러 갔을 때부터였나. 아니면 선화예고에 미술대회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 버거킹에서 감자튀김을 나눠먹었을 때부터였나. 아무튼 걔네들과 당시 유행하는 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성을 하나씩 따서 스스로를 묶어 부르며 우리는 친해졌다. 왜인지 우리를 참으로 아껴준 미술 선생님의 특혜로다가 미술실 열쇠를 얻은 우리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미술실에 모였다. 그런 우리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이 필요했는데 라면이 제격이었다.


길기로 악명깊었던 우리반의 40분짜리 종례가 끝나면 우리 넷은 가방을 미술실에 던져 놓고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 세븐일레븐으로 갔다. 더 가까운 곳에 패밀리마트가 있었지만 라면물을 부어 걸어오는 동안 라면이 익기에 아주 적절한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늘 그곳에 갔다. 거기서는 늘 박소현의 러브게임이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8시에 하는 걸 보면 내 기억이 잘못된 걸 수도 있겠다 싶다. 아무튼 라디오와 최신 유행곡이 나오는 그곳에서 우리는 늘 컵라면을 골라 물을 부었다.


다른 건 없이 오직 라면 뿐이었는데 그걸 들고 조심스레 학교로 돌아오는 길조차 재미났다. 어느 날은 새로 나온 라면볶이와 스파게티를 사왔는데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라면볶이에 소스를 넣고 물을 부어온 친구덕에 내내 웃었고, 너무나 싱거웠던 그 면을 나머지 세 명은 자기 라면 국물에 담궈먹으라며 나름의 배려와 해결책을 제시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며 컵라면은 닭갈비로, 찜닭으로, 백순대로 바뀌었다. 이제는 멀리 살고 바빠져 자주는 보지 못하지만 줌으로라도 만난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두고 얼굴을 보면 우리 마음만은 국물을 내주던 그 때 그대로라는 걸 느낀다. 아니, 더 깊어진 것 같기도 하다. 조만간 또 줌으로라도 만나자고 제안해야겠다. 그때는 라면을 먹어볼까나.

매거진의 이전글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