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가도 되지? 애들만 데리고 가면?
작년 10월, 추석연휴는 역대급 황금연휴였다. 학교는 앞뒤로 재량휴업일을 끼워넣어 무려 12일간, 거의 여름방학에 준하는 날짜만큼 쉬게 되었다. 이 학교에 발령받기도 전부터 10일에 달하는 연휴로, 휴직 중에도 벌렁벌렁 하고 있었는데 12일이라니. 게다가 추석연휴엔 생일도 있어 괜스레 더 떨리고 기대되었다. 교사는 학기 중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황금 기회였고, 남편도 연차를 몇 개 안 쓰고 길게 쉴 수 있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때였으니 말이다. 이에 1, 2년 전부터 들썩들썩 거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남편은 매주 토요일 출근을 한다. 특근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남편은 연휴에도 출근을 한다. 특근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근은 1.5배 수당이므로 한 번 나가고 안 나가는 것의 차이가 꽤 크다. 문제는 특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거다. 그러니 그냥 여행을 가자 싶은데 아무리 맞벌이여도 가장이라며 그 무게를 지고 있는 남편은 그게 안 된단다.
철없는 나로서는 심통이 났다. 이제 곧 여름 방학인데, 누구는 어디 갔다왔고, 누구는 어디 간다던데. 맨날 돈만 벌어 뭘 할 건가. 아니, 돈이라도 많이 남았으면 모르겠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럴거면 쓰고나 죽자(?) 싶던 차, 동생이 엄마랑 모녀 여행을 가잔다. 반복해 물으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황금연휴 말만 꺼내면 화내는 남편에게 던져 본다.
당신 모르면, 나는 가도 되지?
동생이랑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 태국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름의 계획을 세워 떠나는 여행에 너무너무 신이 나면서도 엄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거에 부담도 느껴졌다. 마지막 여행은 친구집으로 가는 필리핀 여행이었으므로, 신남보다는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지전 문제, 느닷없는 총기 사고 등이 발발하면서 걱정이 산을 이뤘다. 남편에게는 말도 못하고 끙끙.
그래도 안 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수년만에 환전도 준비하고 남편의 배웅으로 떠난 여행길. 무려 4시간 가까운 여유를 두고 출발했는데 남편이 묻는다.
몇 터미널이야?
...? 어디지?
그제서야 찾아보니, 출국은 2터미널, 환전신청은 1터미널에 해두었다. 장하다 내 자신. 이렇게까지 엉망일 줄이야. 지리에 밝은 남편 덕에, 혼자 남아 일하는 남편 덕에 1터미널에 들러 돈을 찾아 2터미널로 간다. 뭘 또 빠뜨렸을까 손발이 덜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진맥진이다. 카드를 실컷 준비해오고도 라운지를 못찾아 못들어가고, 찾았을 땐 대기가 길어 포기 후 푸드코트에 가고. 동생에게 민망해 멋쩍게 웃어보인다.
그렇게 바보같아지는 공항이라도, 또 가고 싶다. 몇 번이라도 바보가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