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하늘

by 시월



나의 첫 비행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제주도 수학여행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을 놀리는 말은 그때도 있었다. 물론 신발은 잘 신고 탔다. 그 뒤로는 멀미도 없는데 비행기 탈일이 없다가 교사가 되고 나서야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를 드디어 다시 타게 되었다. 무려 3주간의 해외여행이었다! 대학 졸업 후 1년간 공부를 한 뒤 딱 1년을 근무한 겨울방학에, 1년 휴학 후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확정된 대학 동기 K가, 무려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1년을 보내고 온 그 친구가 나를 여행메이트로 간택해주어 확정된 일정이었다.


파워J 친구의 장단에 맞추어, 시키는 것은 잘 해내는 P인 나는 그 친구와 함께 26쪽에 해당하는 여행계획을 세웠고, 비행기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시작한 그 여행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K와의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아니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의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지만, 유심도 로밍도 없고, 중간에 시위도 열려 26쪽 중 21쪽부터는 무용지물이었지만 큰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내 방광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애를 둘 낳았다지만 하나를 낳기도 훨씬 전부터 내 방광은 좀 참을성이 없었다. 마땅한 표현을 찾자면, '절박뇨'쯤 되려나. 젊디 젊은 20대에도 그러했다. 때와 장소는 가리지 않았다. 마려우면 견디기 어려웠다. 이쯤되니 쓰면서도 별 얘기를 다 한다 싶은데 아무튼 그랬다. 얘가 언제, 왜 문제였냐...그것은 슬리핑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갈 때였을 거다. 몇 시간을 갔던가. 몸이 둥실둥실 떠있는 듯한, 그런데 딱딱한 그 슬리핑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데 신호가 너무 세게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싼 버스를 타고 갔기에 버스 안엔 화장실이 없었다. K도 급한 듯했다. 우리는 거의 울듯이 잠도 못자고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런데 급한 건 우리만은 아니었나보다. 국적도 모르겠는 어떤 여행객이 기사님께 자기의 상황을 전했고 버스는 멈췄다.


버스가 멈춰선 곳엔 정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아득히 깜깜한 밤. 태어나 처음 봤고 지금까지 본적 없는 어둠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여기가 너희의 화장실이야."


그 여행객과 우리 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각자 어디론가 주춤주춤 움직였다. K와 나는 말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앉아 볼일을 보았다. 자연스레 고개는 먼 곳을 응시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건 이런거구나' 싶었다. 뭘 하고 있었는지는 생각지도 않고 서로 하늘 좀 보라며 이야기를 나눴다. 라식 수술을 아직 받지 않았을 때였기에 시력이 나쁜 게 한이 될 정도였다.


별 하면 떠오르는 그 날의 화장실, 그날의 하늘...방광이 강력했다면 볼 수 없었을 그 하늘이 십 수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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