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 가고 싶다

by 시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공부가 잘 안 되거나 인간관계가 잘 안 풀리면 집 근처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서점에 가곤 했다. 휴대폰도 꺼놓고 잡히는 책을 한 권, 그야말로 떼고야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아니 친해졌던 그때의 나로서는 서점이 곧 동굴이었다. 짧고 굵은 잠수. 꼬로록.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어떤 책을 읽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당시의 베스트셀러나 에세이 등을 읽곤 했을 것이다. 전공 서적에만 파묻혀 있던지라 그 시간은 달콤한 휴식처럼 느껴졌던 감각만은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은 나를 위해 서점에 가는 일이 드물다. 도서관도 그렇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종종 나들이 삼아 선물을 사주듯 가곤 하는데 그때도 동굴 입구에 가서 코를 벌름거릴 시간은 단 0.5초도 허용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봤다며 이 책 저 책을 가져와 이야기하기 바쁜 첫째, 아무거나 만져대는(만지기만 하면 다행인) 둘째의 콜라보는 그야말로 대환장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있는 서점에, 도피처같았던 서점에도 내가 기댈 곳이 없는 게 쬐금 슬프다. 부지런히 짬 내어 도망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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