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버려야 하는 이유

다이어리

by 시월

몇년 전부터 미니멀라이프를 지향...아니 지양이었던가. 분명 넷플렉스에서 곤도 마리에의 영상을 비롯해 알고리즘에 뜬 여러가지 영상을 봤고, 유튜브를 보며 이것저것 비우긴 했는데, 비우다 실패하고 비우다 실패하는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서재였다. 결혼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수백권의 책을 결혼과 동시에 가지고와 서재를 꾸몄다. 그렇게 서재는 정리가 부재한 영역이 되었다.


매 방학마다 이번엔 정리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턱 막히고 주저앉게 되는, 서재 안의 추억이라 해야 할지 비밀이라 해야 할지 모를 리빙박스가 두어 개 있다. 그 안엔 국내외 유명가수들의 씨디와 테잎이 수십 장, 함께 초등학생 때부터 받아온 편지가 세 무더기쯤, 그리고 무려 중 고등학생 때부터 써온 다이어리가 십 수권이 있다.


출근을 앞둔 지난주 일요일, 작년에 설치한 트리를 드디어 정리하여 담으며 트리의 마땅한 자리를 찾다가 리빙박스들의 자리를 내어주기로 결정했다. 쿨하게 말했다. 어차피 정리할 것이니 내리고 트리를 둬도 된다고. 강제로 상자들을 열어 정리하던 중 몇 번이고 멈췄다. 좋아했던 가수들의 앨범과 사이사이 뽑아놓거나 적어둔 가사들도 털어내고, 편지도 몇 가지 읽어보았다. 아빠가 앞으로는 다정한 아빠가 되어보겠다는, 그러니 너도 좀 잘 풀어내라고 써둔 편지를 읽으며 그 시절 아빠는 나보다 어렸을 텐데 마음은 지금의 나보다 더 깊었구나, 그러나 나처럼 마냥 다정하기만은 어려웠나보다 싶었다.


그리고 대망의 다이어리. 언제 쓴 건가 싶어 후루룩 넘겨보니 아차차 전 남자친구의 이름이 나온다. 이거 위험한 물건이 집에 있었구나. 너무나 잊고 지냈더니 별 얘기가 다 있다. 다 정리하기 전에 일단 덮어둔다. 저것들 다 진즉 버렸어야 하는 요망한 것들이었구나.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이것들, 정말 버려야 하는 이유를 드디어 찾았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사라져줘야 겠다. 내일 안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