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한 익힘과 적당한 거리에 대하여
"야채도 먹어야지"
체중 관리가 필요한 첫째에게 슬쩍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을 내민다. 아이는 어떤 때는 맛있다고 먹고 어떤 때는 손도 안 대는데, 콩나물보다는 시금치가 특히 외면받는 주인공이다. 겨울 시금치가 얼마나 달큰한지 모르는구나 하면서 계란후라이에 시금치를 밥 만큼 넣어 고추장 조금과 함께 슥슥 비벼 입에 욱여 넣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나물은 여러모로 어렵기도 하지.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만만한 나물인 것 같지만 또 그만큼 만들기 어렵기도 하다. 이븐하게 익혀야 하는데 자칫하면 콩나물은 시루에서 지금 막 한 움큼 잡은 것처럼 날 것에 가까운 맛이 나기도 하고, 자칫하면 멕아리없이 축 쳐져 영 싱싱한 맛이 없이 입에서 미끄덩거리는 느낌이 난다. 시금치는 어떠한가. 팔팔 끓는 물에 분명 넣었는데 아직 나물 녀석이 팔팔한가 싶어 몇 초만 더 기다려볼까 하다 건져보면 녹아내려버린다. 물기를 쫙 짜서 무치는데 이것들이 그냥 흩어져버린다.
그렇다면 간 맞추기는 좀 쉬워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 직상 상사 비위 맞추듯, 시어머니 눈치 보듯 소금과 액젓을 적-당히 뿌리고 비벼 간을 보면 꼭 싱겁다. 조금만 더 넣어야지 하고 추가하면 거짓말처럼 짜다. 요리가 쉬워진다는 연두만으로 간을 했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이젠 콩나물이나 시금치는 한번에 간을 하지 않고 꼭 나누어 짠 경우에 넣을 녀석들을 남겨둔다. 그러면 그제서야 간이 맞아 떨어져 참기름과 깨를 뿌려댈 수 있으므로.
아차차. 양 조절도 쉽지 않다. 나물은 이렇게 힘들 게 해 놓아봐야 한 주먹밖에 나오지 않으므로 노력에 비해 늘 결과물이 아쉬워 양껏 사면 너무 많다. 지난 겨울 시금치 프리타타를 해달라는 첫째의 말이 반가워 시금치를 한 무더기 샀다가 손질해 데치느라 익은 시금치보다 내가 더 축 쳐져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애써야만 하는 것이 마치 아이와의 관계 같이 어렵다 싶다. 사실 콩나물이나 시금치 먹이는 건 어쩌면 일도 아니다. 지난 겨울부터 영어 학원을 가고 싶다는 큰 딸에게 레벨 맞는 반을 찾아주고자 노력했으나 이미 커버린 딸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해온 친구들 사이의 격차는 남과 북의 70년 분단 저리가라할 정도의 간극이었다. 아이는 좌절했다. 분명 꼼꼼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며 매사에 성실하고 자기 조절이 잘 되는 아이인데. 만들기도 줄넘기도 너무너무 잘하고 기억력과 관찰력도 훌륭한 아이인데. 모두 엄마인 내 탓이었다.
다섯 살 때 영어유치원을 알아보다가 집과 직장 주변 및 경로에 등하원 시간에 맞는 영어유치원이 없어 고민 중 코로나가 터졌고 이런저런 이유로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이사 후에 영어를 많이 가르치는 일반 사립 유치원을 알아보다가 아이가 옮기기 싫다는 말에 그러려무나 했다. 일곱 살 때 패드 학습을 시키며 중국어는 재밌어서 하고 싶지만 영어만은 싫다는 아이의 말에 그래라 했다. 여덟 살 때 영어 방과후가 재미없다는 말에 그래도 해야지 했다가 지금 영어책 읽고 영어 영상도 보고 있으니 괜찮겠지 했다. 분명 연산도 시키고 책도 나름 읽힌다고 읽혔는데, 아이가 글을 쓰는 걸 보면 생각도 있고 조리도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믿었는데 믿기만 했더니 가지고 온 건 아이의 좌절이다. 두려웠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할까봐, 지칠까봐 모든 게 싫다고 할까봐. 믿음이라는 말보다 더 컸던 건 나의 두려움이었다.
어젯밤, 아이는 울었다. "나만 못하니까 속상해" 완벽주의 성향까지 있는 아이가 욕심을 내려는데 잘 안 되나 보다. 학원이 하나가 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해내려니까 버거운가보다. 너는 하려는 마음이 있고 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니 잘 할거라고 말해주면서도 안쓰럽다. 아니 내가 더 어렵다. 아이에게 어떤 걸 해주어야 더 도움이 될까, 지금 힘들면 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영어처럼 될까봐 지금부터 꾸준히 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버티게 해야 할까.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을 무치며 고개를 연신 갸우뚱 거리는 것은 나의 일일 뿐이고, 그걸 먹든 안 먹든 그건 어쩌면 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이면 맛있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처럼 아이에게 최선일지 아닐지 모를 여러 방법과 응원을 해주는 것은 엄마로서의 영원한 숙제일테지. 그런데 아주 어려운... 아! 다시 생각해보니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쯤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오늘 저녁엔 얼려둔 시금치를 녹여내어 따뜻한 된장국 한 그릇 끓여내고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놔야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말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