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불어오는 바람 어쩌지도 못한 채 난 그저 멍할 뿐이었지

by 시월

버스와 지하철만 타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까진 두 다리로만 다녔는데, 고등학교 미대 입시 시절에 미술학원을 다니며, 대학교를 다니며, 또 임용공부를 한다고 종종 노량진이나 스터디 모임에 다니며 버스와 지하철을 수도 없이 탔더랬다.


지하철보단 버스가 좋았다. 버스는 대체로 자리에 앉기 수월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하철처럼 사람이 목을 죄듯 촘촘히 들이닥쳐 압박해오는 일도 드물었다. 때로 학교 앞 버스는 그만큼 붐벼 어딘가 잡기는 잡았으나 몸통은 기우뚱 숙여져 기사님 정수리를 바라보며 간신히 버텨야 할 정도인 날도 있었지만 그건 지하철에 비해 대체로 잠시여서 할만 했다.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하를 달리는 경우가, 지상을 달리는 경우보다 많았고, 지상을 달릴 때에도 지상인지 지하인지 알 길이 없을 정도였으므로, 기사님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인지 세야할 때도 탁 트인 앞유리창이 있었으므로 버스가 더 좋았다.


그러나 그 시절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간다면 어디에 가게 될까. 왜 나는 재수를 하게 되었을까, 저 사람은 버스카드에서 '청소년입니다'가 아니고 '감사합니다'가 나오는데 나처럼 재수생일까. 학점은 몇점이 나올까,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남자친구는 왜 이러는 걸까, 계속 만나도 될까. 이번에 교사를 뽑긴 뽑을까,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 뽑기는 할까. ... 끝이 없었다. 창밖에 아름답게 빛나는 조명을 봐도 눈물이 툭툭, 쉬이 터지는 웃음만큼 헤프게도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게만 느껴지기 힘든 깜깜한 밤이었다.


더 이상 대중교통을 타지 않는 요즘, 정류장에 머물러 멍 때릴 시간도, 버스 차창에 기대어 상념에 젖을 시간도 없다. 편하게 자차를 이용하고 그때보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렸던 그때랑 과연 많이 다른가 싶다. 어플로 위치를 볼 수 있다고 해도 기다려야 할 시간이 줄지는 않는 것처럼 알지만 힘든 것들이 새로이 새로이 끝도 없이 생겨난다.


장범준은 노래에서 말했다.


해질 무렵 바람도 몹시 불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창가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 어쩌지도 못한 채

난 그저 멍할 뿐이었지

난 왜 이리 바보인지 어리석은지

모진 세상이란 걸 아직 모르는 지

터지는 울음 입술 물어 삼키며

내려야지 하고 일어설 때

저 멀리 가까워 오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댈 봤을 때


나에게도 '그대'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수없이 많은 정류장들을 지나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하여 나는 다신 안 태어나고 싶다. 바보인 나로 다시 살기는 너무 힘들어서. 그저 머무는 동안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고, 버스를 타면 최대한 풍경을 즐겨보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 여전히 지친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택시를 못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