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휴가라니. 휴가는 무엇일까. 가끔 친구들이 말하던데. 반차내고 집에 누워있다고, 연차내고 놀러간다고. 휴가가 그런거라면 직장생활 14년 차. 단 하루도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나는 교사다. 교사는 방학이 있다. 방학이 있는 대신 학기 중 연가는 꽤나 제한되는 편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체계적인 인력풀이나 보강 시스템 등이 없기 때문에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휴가가 있다 한 들 쓰는 것이 곧 자신의 목을 죄는 것이 되므로 아마도 얼마전 정년퇴직하신 분도 20대 꽃같은 나이부터 60대 무르익은 40여년 세월동안 제대로 쉬어본 적 없으실테다.
다시 말하지만 방학이 있다. 그러나 방학은 휴가가 아니다. 어찌 그러냐면 아이들도 방학이 있기 때문이다. 방학은 너무나도 오롯이 엄마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는 건 '나'의 스케줄 같은 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아이가 하나였고 어렸을 땐 그나마 좀 낮시간에 숨 좀 쉬어가며 집안일을 해치웠는데, 아이가 둘이고 둘의 나이차이가 꽤나 나는 지금, 게다가 큰 아이가 초등학생인 지금은 여전히 엄마손길을 필요로 하므로 휴가같은 건 없다. 모든 것은 아이에게 맞춰진다. 학기중엔 어른들의 도움을 받지만 내가 방학이면 어른들도 방학이다. 되도록 내가 한다. 그래서 더더욱 휴가란 없다.
그런데 만약 휴가가 생긴다면 당일치기로 많이 가는 후쿠오카를 갔다올까. 하카타역에 내려 세븐일레븐에서 스무디 갈아마시고 하타카 역 근처 몰에 있는 우동집에 가서 냉우동을 먹을까. 아니면 텐진에 가서 백화점에 있는 함바그집에 갈까. 그 위층에 라멘 로드가 있는데 그 중 괜찮아보이는 곳을 가서 라멘을 먹을까. 그리고는 부산한 아이들과 비싼 디저트엔 영 쫌생이같이 구는 남편때문에 조용히 그리고 충분히 즐길 수 없었던 카페에 갈까.
아니다, 차를 몰고 실컷 밟아서 강원도 바다를 보고 올까. 두부 젤라또 맛있었는데 애들 나눠주느라 부족했던 그걸 먹을까. 시장구경도 재밌었는데 시장가서 눈치안보고 군것질로 배를 채울까. 디지털 온누리카드에 충전해놓은 금액 많은데, 그걸 써도 되겠다. 용돈 굳었다, 앗싸! 오는 길엔 멀리 살아 보기 힘들었던 친구에게 연락해서 얼굴이라도 볼까. 온누리카드로 아낀 용돈으로 밥을 사야겠다.
아니다, 서울이나 가볼까. 사람많고 번잡스러워 못갔던 서울 어듸메를 갈까. 그것도 아니면 에버랜드에 가서 무서운 것만 실컷 반복하고 떡볶이 한그릇 사먹고 슬러시랑 아아를 쪽쪽 빨며 미친듯 놀다 올까. 아니면... 어디 호텔에 가서 짱박혀 있을까.
아니다, 아니다. 그냥 집에 혼자 딱 있으면 그게 제일 좋겠다. 세상 밖순이었는데 이제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송장처럼 누워있는 시간도 하루쯤은 있으면 좋겠다 싶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휴가를 원하는 건 그만큼 아직은 내가 할 일도 쓰임도 많다는 거겠지. 부지런히 부지런히 휴가를 기다리고 바라며 살아야겠다. 그러면서도 너무 간절할 만큼 나를 갈아 넣지는 않도록 경계하며 마음 속 한 구석 정도는 나를 위해 남겨둬야지. 그리고 야금야금, 하루를 통으로 쓰진 못해도 얼마만큼은 헐어내며 숨쉴 틈 만들어 쉬익쉬익 호흡하며 살아야지. 이렇게 10분, 15분 글을 써가며, 또 쉬릭쉬릭 종이를 넘겨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