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먹고 싶어?"
"구워 먹는 고기! 고기! 고기고기!"
기침할 때 입을 가릴 줄은 알아도 음식 가릴 줄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꼭 고기를 먹자고 고집해 마지않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그날은 구워 먹는 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전날 가서 하룻밤 자고 천천히 일어나면 좋았을텐데 계획성이라고는 일할 때나 겨우겨우 즙을 짜내는 인간인지라 미리 숙소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춘천에 다녀왔다. 당일치기라고 하기엔 반나절치기로. 새벽 네시쯤 갔다가 오후 세시쯤 돌아왔던가.
춘천 마라톤 대회. 당연하게 닭갈비를 먹고 오겠거니 생각했으나 몰린 사람들의 수를 보니, 거기 있다가는 닭갈비는 다른 나라에서 닭을 길러다가 잡아와야지나 먹겠다 싶어 대회를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나왔다. 차는 별로 밀리지 않았지만 갈 때도 올 때도 졸음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남편 대신 유일한 출전자였던 내가 왕복 운전을 해야만 했고 피곤함과 배고픔은 극에 달했다. 그랬기에 그렇게 애 타게 구운 고기를 찾았다.
세 네시, 점심이라기엔 늦고 저녁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이른 그 시간 구워 먹는 고기를 먹었다. 대회가 있기 딱 일 년 전, 아홉 살, 두 살 아이들 데리고 생일에 구워 먹는 고기를 먹은 것 말고는 어른들 생신 때 구워주는 갈비집에 몇 번 간 게 전부였다. 열 살, 세 살이 된 아이들은 달리지는 않았지만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며 엄마를 기다려서 그런지, 온 마음으로 응원해서 그런지 고기를 미친 듯이 해치웠고, 우리 부부는 흐뭇하게 쳐다보며 외쳤다.
"여기 쌩맥 두 잔이요!"
아니, 그런데 기계가 고장나 맥주가 안나온단다. 말도 안 돼. 병맥을 두 병인가 비워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2차 가자 외쳐댔다. 쌩맥이 말랐다. 흔쾌이 오케이를 남편이 이끈 곳은 '와플대학'. 장난하나, '와플대학'은 최소 3차지! 오케이 저기다. 역할맥. 얼음쌩맥을 먹어야겠다 싶어 염불을 외웠다. 남편이 여쭈니 다행히 아직 손님들이 붐비기 전 시간이라 그런지 얼른 들어오란다.
"여기 쌩맥 두 잔이요!"
다시 외쳤고, 깨질듯이 차가운 유리잔에 내 마음을 가득 채우듯 흐르기 직전의 맥주가 두 잔 나왔다. 짠 하고 먹으니 아이들은 옆에서 파인애플 샤벳도 먹고 떡볶이랑 튀김도 먹는다. 예쁘다며 사장님께서 키링과 빼빼로를 주신 덕에 쌩맥을 만난 우리 부부보다 더 신난 모습이었다. 결혼 직후 첫째가 생겨 내내 얼씬도 못했던 맥주집에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이사를 앞두고 어머님댁에 살았던 딱 한 달의 시간동안 맥주집에 가본 게 전부였던 우리는 드디어 다시 5년만에 생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먹고 나와 '인생네컷'까지 찍으니 그렇게 스케줄도 마음도 꽉찬 하루가 없다 싶었다.
조만간 다시 그렇게 달콤한 생맥주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해야겠다. 구워먹는 고기와 그때 못 먹은 '와플대학'도! 물론 '인생네컷'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