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트레이닝 시즌 4. 인연
재수를 했다. 재수도 없지. 아니, 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무튼 재수학원에 갔더니 재수생만 있는 게 아니라 삼수생, 사수생, 군대갔다온 생(?) 등 되돌아온 생명들도 참 많았다. 그 사이에서 그 언니와 친구 녀석을 만났다.
언니는 지금으로 말하면 특성화고를 다니다 무용과로 진학했지만 부상으로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곳이 아니면 차라리 대학에 안가고 말겠다던 포부를 가지고 있던 그 언니랑은 이상하게도 죽이 잘 맞아 언니가 학원을 관두고, 내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종종 만났다. 서로의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과 상담, 이별후의 허우적거림을 나눴던 친구 녀석도 함께였다. 우리는 회비를 걷었고 그걸로는 어딘지도 모르는 계곡에, 횡성에 한우를 먹으러 가다 주저 앉아서, 발을 담그고 닭도리탕과 함께 맥주를 끝없이 마시는 데 썼다.
그 언니는 언젠가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건성으로 대답했다. 소개팅이 너무 일스러웠기 때문이고,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여행 후에는 누구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해준다는 언니 친구와의 소개팅이고, 그것까지만 하자고 마음먹었기에 긴긴 여행을 마치고 와서 가볍게 나갔다. 그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언니는 청첩장을 받으며 말했다. "만나보라는 거지, 결혼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뒤에 더 많았는데... (남편을 보며) 잘해, 이 새끼야."
친구 녀석은 웃었다. "너는 어떻게 너도 세면서, 너보다 더 센 형님을 만났냐. 잘 됐다 아주" 참 고소해하던 그 녀석은 미술학원에서 만난 내 친구를 소개시켜줬다. 소개팅을 마치고 전화해서는 말했다. "야, 네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날이 있구나. 고맙다 고마워!" 그 둘은 결혼을 했다. 미술학원 친구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뭐, 결혼하라는 것까진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 덕에 식기세척기를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둘은 최근 아들을 낳았는데, 내복을 두 벌 사서 선물했다. 조만간 아기를 보러 가게 되면 또 선물을 사갈 예정이다.
얽히고 설킨 인연들 사이에서 가끔 남편에게 하소연한다.
"아 내가 재수만 안했어도..."
남편은 말한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
그러면서 덧붙인다. 어린 시절의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러니까 그때 나한테 전화하지 그랬어!"
분명 서로의 존재도 몰랐을 때의 이야기에 대해서 늘 저렇게 말한다. 그러게, 그때 전화할 걸 그랬다. 이렇게 어차피 만나 부대끼고 살거라면 그때 전화할 걸! 그러지 못했으니, 앞으로나 잘 지내야겠다. 시간을 되돌려도 만났을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