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트레이닝 시즌4. 아버지
옆집을 가려해도 한참을 가야 하는 쓰러져가는 시골집에서 그는 셋째이자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니 다섯째라고 해야 하나. 그나마도 있던 땅을 노름을 날려버리는 아버지 덕에 그의 집은 불가능할 것 같았으나 놀랍게도 더 가난해질 수 있었고 글도 모르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가르쳤으나 그의 누나 둘과 여동생 하나는 초등학교만을 마치게 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글을 깨우치지 못하였으나 시대는 바뀌어 그나마 나머지 여동생들 중 둘은 중학교를, 막내는 무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아래로 태어난 작은 아들도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그의 어머니는 큰 손주와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막내 아들을 유달리 예뻐했다. 그보다 먼저 낳은 아들 둘이나 갓난 아기 때 잃고 얻은 그였지만 막내 아들보다는 귀하지 않았다. 그가 죽지 않으려면 허양어머니를 만들어 가짜이름을 붙여야 한대서 그랬던 걸까. 그의 효심은 언제나 진심이었음에도 그의 어머니는 막내 아들만을 바라봤다.
그는 달리기를 잘했다. 단거리든 장거리든 사고치고 도망쳐 버릇하다가 실력이 늘어버렸는지 작고 말라가지고는 매우 날쎘다. 없는 형편이지만 체대에 가고 싶었던 그는 입학이 거의 확실시 되었지만 돈을 요구하는 학교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느닷없이 의경이 된 그는 경찰의 길을 걷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세상이 '억까'했던지, 특채가 확실시 했는데 실기날 갑자기 아파 가지 못하고 말았다. 역시나 맥락없이 회사에 들어가버린 그는 거기서 누이동생 대신 전화를 받은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그가 회사를 다니며 정기적인 월급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는데 별안간 그는 사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나와 기술을 배웠다.
그의 사업은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잘 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두 딸을 낳아 먹이기엔 평균적으로 부족했는지 그녀는 늘 부업을 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녀는 나름대로 생활비에도 보태고 두 딸의 간식비도 벌며 이웃과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재미만 있으면 좋았으련만 사업은 동업자의 사기로 인해 크게 휘청이고, 알뜰살뜰 꾸려간 세간살이를 담고 있던 집을 홀랑 빨간딱지 한장에 넘겨주고 말았다.
철이 든 큰 딸은 반지하 셋방에 살며 자꾸 잠을 참으며 공부를 했다. 그는 그 때마다 말했다.
"공부해봤자 남을 대신하는 부품만 될 뿐이야. 공부는 뭐하려고 하냐. 깝치지 말고 잠이나 자라."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 뭐하려고 선생같은 걸 한다고 그러냐."
안쓰러워 그랬을 텐데 그걸 곧이 곧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는 거칠게 핀잔을 주는 걸로 그의 마음을 대신했다.
머리가 큰 딸들은 그녀를 괴롭게 하는 그의 어머니를 보러 가는 것을 싫어했다. 그와 그녀의 갈등의 원인은 주로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매주 집수리며 밭갈이며 시골로, 어머니가 계신 시골로 향하는 그 때문에 월에 12만원의 월세를 감당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인내심이 뛰어난 그녀도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을 테다. 그러나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과 조상을 자기 자신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의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괜히 딸들에게 윽박도 지르고 달래도 봤지만 그럴 수록 모든 것을 아는 딸들은 그의 어머니를 멀리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가장 힘들 때 그의 곁을 지키며 자신을 갈아 넣으며 그가 일어서도록 버팀목이 되던 그녀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분명 많은 것을 참고 희생한 그녀였는데, 다시 사업이 좀 잘 풀려 해가 좀 드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그랬던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다그쳐댔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의 어머니를 업어 나르며 화장실로 침실로 모시고 고깃국에 생선에 떡까지 자식들 입에 들어갈 것들을 아껴 극진히 모셨으나 그의 어머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누이들도 가세했다. 어머니와 누이의 말들과 아우의 무관심이 모여 그녀를 지치게 했고, 그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지 않았으므로 그녀를 위해 그의 어머니를 보지 않기로 했다. 사는 동안 두 번을 결심했고 두 번을 꺾었다.
두 번의 결심으로 그가 그의 어머니를 보지 못한 시간이 5년은 될 것이다. 두 번 다 그의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비와 간병인이 필요했던 그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그를 찾았다. 바보처럼 두 번을 당했다. 큰 딸의 결혼식에도, 큰 손주의 돌잔치는 커녕 탄생에도 아무 소식 없었던 그들에게 기꺼이 당했다. 자신의 손가락이 갈라지고 발가락이 굽어지도록 일한 것들을 아낌없이 부었다. 이제는 이미 늙어버린 그가 그녀와 자식들에게 비굴하게 빌어 어머니를 모셔와 밥을 먹이고 도망치듯 그의 사업장으로 모시고 갔다. 그걸로도 고맙다고 말할 정도로 약해진 그였다.
"오늘 할머니 돌아가실 것 같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의 딸은 그날은 진짜일거라 생각했다. 미운 마음을 접고 일도 접고 이른 퇴근을 했다. 모두 그를 생각해서였다. 평생을 자신을 보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그가 어떤 얼굴로, 어떤 마음으로 저 말을 했을지 그저 걱정될 뿐이었다. 그가 그 말을 딸들에게 전한지 2시간도 안 되어 그의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달려가는 그를 보지 않은 채 눈을 감은 덕에, 그는 어머니 가시는 모습도 못 봤다. 가실 때까지 어쩜... 그에게 '주워온 아들'이라 불리는 그의 사위는 경황이 없는 그보다 더 능숙하게 그에게 필요한 것을 물어다 주었다. 아주 멀지 않은 과거에 아버지를 여읜 탓에 장례 절차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만 말하기엔 그의 사위는 그를, 그의 딸보다 더 존경하고 아꼈기 때문이었을 터다.
그는 많이 울었다. 소리를 내며 울었다가, 내지 못하며 울었다가, 어린 아이처럼 꺼이 꺼이 울었다가, 어른처럼 꾹꾹 참으며 울었다가... 우는 그를 보며 그의 딸들은 그가 안쓰러워 울었다. 할머니되는 사람의 죽음보다 아버지되는 사람의 짝사랑이 끝이 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알고 저리 애처로운 모습을 한 그를 보고 그의 딸들은 그처럼 울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의 책무와 효도를 스스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족쇄를 풀고 자기 삶을 산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겠지만, 육십하고도 네 살을 더 먹고야 그는 자유로워졌다. 더 이상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구걸하지 않아도 되고, 딸들에게 윽박지르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이 보이고,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아들로서의 삶이 이제야 끝난 것이다. 그는 이제 세 살이 되었다. 앞으로 그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