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가고픈 그곳

에세이트레이닝 시즌4. 목욕탕

by 시월

어린시절 주말이면 엄마 손잡고 목욕탕엘 갔다. 엄마랑만 갈 때는 좋고 아빠도 함께 가는 건 별로였다. 아빠까지 가면 냉탕에서 수영하는 것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늦었냐는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와 같은 딸 둘 엄마로서 여간 열받는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애 둘을 챙기다보면 최선을 다해도 늦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체로 스포츠머리를 고수해온 아빠는, 머리가 치렁치렁 긴 딸 둘의 머리를 말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상상도 못했을 거다.


그러나 그 언젠가부터는 아빠와 함께 가지 않아도 '장수탕 선녀님'의 선녀님마냥 냉탕이 즐겁기만 하진 않고, 덕지마냥 요구룽 대신 뚱땡이 바나나우유를 먹어도 달콤하지만 않았다.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에 이미 근시 0.7, 0.8을 자랑하던 시력이 점점 떨어져 안경을 쓰고 씻기에는 너무나 불편하고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춘기가 오면서부터는 나온 것도 안나온 것도 아니게 작은 가슴과 그 가슴을 언제든 앞설 준비가 되어있는 똥배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내 눈엔 남들이 보이지 않고 오직 보이는 건 내 비루한 몸뚱이 뿐이다보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괜스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내 마음은 가슴보다 더 작게 쪼그라든 모양새였다. 그러니 제아무리 뜨거운 탕이 있어도 마음이 녹아들지 못했다.



마흔을 앞두고는 그 목욕탕에 가고 싶다. 가슴의 크기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고 그 덕에 아랫배는 가슴을 제쳤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혹은 노안은 올테면 와봐라, 다만 몇 년이라도 편히 또렷한 세상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라식을 하여 이제는 안경없이도 온 세상을 맨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목욕탕에 딸 둘을 데리고 다니던 엄마처럼 나이차가 많은 딸들을 달고 다니느라 어깨가 무거워 뜨거운 탕과 찜질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그저 아무 생각없이 노곤하게 몸을 풀고 엎드려 세신을 받고 싶다. 누가 날 어떻게 보든 상관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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