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힘들고 너는 힘주는구나
끼잉
생후 한 달쯤 된 둘째가 소리를 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꿈틀거리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마는 나보고 가스불을 잘 끄라고 했다. 결혼할 때 사위더러 한다는 말이 집에 가스차단기를 타이머 있는 것으로 꼭 설치하라고 했다. 이유는 갑자기 잘 잠들고 한번 잠들면 깊이 잠드는 내가 불이 나도 몸이 불에 타는 줄도 모르고 잘까봐서였다. 그런데 아주 작은 소리에도-그것이 아이소리라면 깨는 사람이 됐다.
자연스레 아기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린다. 베이비타임 어플을 켜서 수유 아이콘을 길게 터치하고 지난 텀에 오른쪽부터 먹였으니 이번엔 왼쪽을 눌러 타이머를 잰다. 다 먹었다 싶으면 오른쪽을 누른다. 침실에서는 바깥쪽이 높은 수유쿠션을 쓴다. 혹시라도 피곤한 나머지 졸아버릴까 봐.
다 먹이고 눕히려는데 이놈이 글쎄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정말로 주먹정도 되는 크기의 얼굴이, 엄지손톱만 한 입을 앙 다물자, 빨개지기 시작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용하게 “읍”하고 힘을 주니 부그르르르 하며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묽은 황금똥이 세상을 향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몇 번이고 들어도 재미있는 소리다. 곧 쉰 요거트 냄새 같은 게 난다. 먹으면 바로 자야 하는데 똥구멍을 씻으면 잠에서 깨게 생겼다. 아이고.
세상모르고 먹고 자고 쌀 줄만 알아 엄마가 필요한 둘째를 씻겨 달래 재우며 학교에 입학하여 힘들어하는, 그래서 엄마가 필요한 첫째의 얼굴을 바라본다. 곤히 잠들어있다. 감은 눈에는 고민이라곤 보이지 않고 평온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 분명 “학교 가기 싫어”를 남발할 것이다. 울먹거리는 말투로, 눈썹을 약간 모으듯 여덟 팔자를 그리며 물을 것이다. “학교는 왜 가야 해? 엄마도 안 가잖아.“, ”나만 혼자 학교 가고 엄마랑 동생은 집에 있으니까 나도 가기 싫어.“
2년 전부터 첫째 초등학교 입학 첫해에 휴직을 할 예정으로 돈을 모으며 생각했다. 교사 자식이라 학기 중에 교외체험학습을 가지 못할 게 분명하니(교사는 학기 중 연가 사용이 어렵다.) 휴직하면 연간 최대 일수를 다 쓰리라. 생후 6개월부터 기관생활을 했던 첫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절호의 찬스였다. 그런데 갑작스레 둘째가 찾아왔고 공교롭게 입학 한 달 전 태어났다. 체험학습.. 갈 수가 없었다. 마음 같으면 첫째도 끼고 집에 있고 싶지만 안다. 결국 같이 있어도 당장은 둘째를 챙겨야 한다는 것을. 그러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첫째의 심술이 충전되면 우린 부딪힐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괜스레 짠한 첫째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초등학교를 꼭 다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를 경찰이 조사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생각해 봐. 너는 중학교까지만 다니면 그 뒤로는 안 다닐 수 있지만 엄마는 아직도 30년이 남았어. 그러니까 그냥 다녀. “
속으로 말한다. “엄마도 너와 놀고 싶어. 학교 빠질 수 있는 만큼 빠지고, 아니 필요하면 더 빠지고도 집에서 놀고 싶어. 여기저기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안 되게 되어서 아쉽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
동시에 품에 안긴 둘째를 본다.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갑자기 움직이는 자기 팔에, 뱃속에서는 웅크려있느라 본 적 없다 허공을 가르는 그 팔에 놀라는 수준의 하찮은, 그리고 소중한 둘째를 보며 읊조린다. “미안하고 사랑해.“
필요와 선택에 의해 하게 된 독박육아, 아니 독점육아를 하면서 나보다 어린 시절에 두 딸, 그것도 여섯 살 터울로 두 딸의 엄마가 되었을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 마음도 이랬을까. 첫째인 나를 보며 해야 할 것에 대해 일러주며 그 마음 한편에 짠함이 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에 대해 또 하해와 같은 사랑이 샘솟음을 느꼈을까.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랬는지 몰라. 미안하다’는 말에, 그리고 본인의 체력과 시간을 할애해 언제나 흔쾌히 내 자식들을 예뻐해 주는 그 말과 행동에, 분명 그녀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위로를 받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섭고 무거운 일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무겁진 않을 부모의 마음을 감히 추측하게 되고, 소중하여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많아지는 일이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 좋아할 만한 것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일이다. 분명 왜 동생만 예뻐하느냐고, 나도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라고 했던 나인데도 자꾸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하고 이해하게 되는데 그 철없는 과거를 돌이킬 수 없어 또 무섭고 무겁다. 하나랑 둘은 그 무게가 또 한참 다르다. 겪어봐야지만 보이나 보다 싶게.
엉망진창 철없이 투정만 부릴 줄 알던 나와는 다르게 첫째는 이렇게 말한다. “동생이 생겨 웃을 일도 많은데 내가 혼날 일도 많아.“ 생각한다. 절대 동생으로 인해 혼내지는 말아야지, 그리고 앞으로 분명, 헤어짐과 동시에 하루 일과를 줄줄 외며 불안감을 토로하는 그 모습이 사라지고 무엇이든 흔쾌히 시작하고 거뜬히 해내는 너를 보게 될 것이라고. 내가 널 믿으니 너도 널 믿으며 응원해 주라고. 그리고 정말 지금은 동생이 도움이 많이 필요해서 엄마가 더 도와주는 거지, 널 덜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엄마를 엄마로 만들어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고.
둘째에게도 말하고 싶다. 둘은 처음 키워보는 거라 쉽진 않지만 갑자기 찾아온 너를 이미 사랑해 버렸다고. 우리 가족에게 와주어 고맙다고. 지금 네가 날 필요로 하는 모든 순간에 기꺼이 함께 할 테니 조금씩 천천히 크라고. 변치 않는 사랑을 주겠다고.
너희가 힘들면 힘든 걸 견딜 수 있게 함께 있고 힘주어 뒤처리 할 때 도움이 필요하듯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