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어
“엄마, 나 오늘 피아노 학원 가기 싫어.”
“너 어딘데?”
“나 지금 피아노 학원.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돼? 조금만 일찍 오면 안 돼?”
이미 피아노 학원에 간 첫째가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다며, 평소에는 혼자 집에 오는데 데리러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가기 싫다고 한들 안 보내지 않을 걸 알았는지 간 상태로 저렇게 말해오는 첫째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며 흔쾌히, 선심 쓰듯 답한다.
“엄마가 조금 일찍 데리러 갈게.“
“응 좋아, 그럼 5시 35분까지 와. 꼭 와~!”
일찍이 5분이었다니. 적어도 10분 정도는 일찍 데리러 갈 생각이었는데 하며, 응 그럴게 하고 친절함과 상냥함을 담아보내며 전화를 끊는다. 앞으로 남은 시간 50분. 해주겠노라 약속했던 소시지 야채볶음을 하기 위해 채소를 꺼내 다듬는다. 둘째는? 다행히 잠시 주무신다.
냉장고에서 대파, 당근, 양파, 마늘, 케첩, 소시지를 꺼낸다. 소시지는 두세 개씩 집어 칼집을 넣은 다음 끓는 물에 넣는다. 소시지가 뜨거운 물로 불순물 샤워를 하는 동안 잘라서만 넣어두었던 대파를 씻어 종종 썬다. 양파와 당근은 손질해 넣어둔 게 있어 소시지 야채볶음에 넣기 좋게 썬다. 양파는 깍둑 썰고 당근은 반을 갈라 얇게 반달 모양으로 썬다. 설거지를 늘리지 않기 위해 소시지를 건지고 소시지 데치는 데 썼던 냄비를 후딱 씻어 다시 불에 올리려던 차, 자고 있던 둘째가 엥-하고 운다. 얼른 아기띠로 업으며 말한다. “미안해, 아직은 안 돼. 언니 데리고 와서 먹자.” 지금 수유하게 되면 이래저래 30분이 소요된다는 판단 하에 가뜩이나 몸무게 적게 나가는 둘째는 강제로 식사를 미루게 된다.
마음이 급하다. 약간의 식용유와 다진 마늘, 대파를 넣어 기름에 향이 배게 한 후, 썰어놓은 양파와 당근을 넣어 살짝 볶은 뒤, 소시지를 넣는다. 케첩을 쭉 짜서 한 번 뒤적여 준다. 모든 소시지가 케첩의 은혜를 입었는지 확인한 후, 올리고당을 살짝 둘러준다. 채소가 다 익었나 뒤적거리며 불을 끄고 뿌려줄 깨를 꺼낸다.
깨를 뿌리고 다시 집어넣으려는데 써는 김에 넉넉히 썰어 둔 대파와 양파가 보인다. 엄마가 거래처에서 받았다며 준 감자와 금요일에 장터에서 산 맛 좋은 두부를 떠올렸다. 된장찌개를 끓이면 좋겠는데? 생각하는데 오늘내일하는 버섯도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냄비를 하나 더 꺼내 물을 받으며 버섯을 헹궈내고 감자도 껍질을 벗겨 깍둑 썰어준다. 애호박도 있었던 것 같은데? 숨바꼭질하다 들킨 애호박도 깍둑 썬다. 당연 두부도 깍둑썰기다. 된장을 크게 한 스푼 풀어내고, 쌈장도 반 스푼 정도 넣어준다. 계량은 없다. 썰어놓은 재료를 모조리 때려 넣고 푹 끓인다. 간을 보니 무언가 부족하다. 아차, 코인육수를 안 넣었구나. 이제야 넣는다. 딱 됐다. 다행히 둘째는 아직 엄청 배고프진 않은지 잘 매달려있다.
거짓말처럼 시계는 5시 34분을 가리킨다. 된장찌개는 더 끓여야 하니 인덕션을 5 정도로 낮추고 타이머도 설정해 둔 뒤 집을 나선다.
첫째는 나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며 말한다.
“집 앞 분수대 가고 싶어.”
“그래, 그럴까? 그러면 밥 먹고 동생 먹이고 나가자.”
첫째의 한 마디에 심플하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바빠진다. 밥 먹고 먹이고 나면 6시 반은 될 텐데 분수대는 언제까지 하지? 8시면 자는 둘째는 7시 좀 넘으면 졸려할 텐데 쟤를 먼저 씻겨서 나가야 하나? 해는 언제쯤 지지?
맛있게 간이 밴 된장찌개와 함께 약속했던 소시지 야채볶음,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김치, 멸치와 숙주나물무침을 내어주고는 둘째 수유를 한다. 첫째를 데리고 집에 올 쯤부터 칭얼거렸던 둘째는 밥을 차리는 동안 꽤나 보챘다. 홀쭉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얼른 먹인다. 밥을 다 먹은 첫째에게 놀려면 할 거 얼른 해-하니 뚝딱뚝딱 오늘의 학습을 마친다. 둘째에게 젖을 다 먹인 뒤, 첫째가 먹고 난 반찬을 주워 담아 입으로 바삐 넣고 있는데 이 놈 자식, 한다는 말이,
“물총놀이하고 싶다.”
“엥? 분수대 간다더니? 그럼 분수대가보고 분수대 끝났으면 물총놀이할까?”
“어? 물총놀이 해도 돼? 그럼 나 그냥 분수대 안 가고 물총놀이할래.”
토요일 하려고 했던 물총놀이가 무산되어 아직 뜯지 못한 새 물총은 차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첫째에게 물통에 물 좀 받아달라 한다. 첫째가 물을 받는 동안 애벌설거지를 마친 뒤 식기세척기에 넣고 버튼을 누르며 큼지막한 비치타월의 위치를 파악한다. 물에 젖어도 잘 마르는 러닝셔츠와 바지를 위아래로 주워 입고는 차키를 챙기고 둘째를 유모차에 앉힌다. 지하주차장에 들러 물총을 꺼내 첫째에게 들게 하고 놀이터로 향한다.
영문을 알리 없는 둘째는 유모차에 앉아있고 우리는 물총을 뜯어 물을 채운다. 생각보다 물이 많이 들어간다. 물을 가득 채워 뚜껑을 닫고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한다. 놀이터에 노는 아이가 쏴보니 오, 제법 힘이 센 물줄기가 멀리까지 나간다. 내가 누군가. 첫째녀석이 돌도 되기 전에 친구들과 워터밤에 간다고 커다란 물총을 공구했던 사람이다. 모유수유하던 때라 가슴이 퉁퉁 불었는데도 진심으로 물총싸움을 하고 밤늦게 돌아왔던(자랑이다) 사람이다. 그러니 내 자식이라고 봐줄 리 없다. 얄짤없이 쏘아댄다. 아이는 좋다고 꺌꺌(깔깔 아니다)거리며 도망가다 반격해 온다. 물줄기 두 개가 나오는 물총으로 내 얼굴을 정통으로 쏜다. 앞이 잘 안 보인다. 어쭈 도망간다. 쫓아가며 복수를 감행하는데 아이고. 날 저지하려던 첫째의 물줄기의 일부가 그만 둘째를 향한다.
물 몇 방울 튄 거지만 150여 일 산 둘째는 심통을 부린다. 가뜩이나 잠이 오는 타이밍에 좋아하지 않는 유모차에 앉혀두고 지들만 하하 호호 웃다가 물까지 뿌리다니 불쾌한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 물이 두 통 남았다. 빈 물총을 다시 채워 2차전에 돌입한다. 둘째에게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하자 했지만 너나 나나 할 것 없다. 갑자기 세어진 바람이 물방울을 또 둘째에게로 보낸다.
흐엥 흐에엥
본격적으로 칭얼대기 시작한다. 이러다 얘를 방임유기한다며 아동학대로 신고당하진 않겠지-생각하며 첫째에게 물을 다 쓰는 순간 집에 들어갈 거라고 알린다. 첫째는 알았다며 마지막으로 물총을 채워달라 요구한다. 이때다 싶어 실수인 척 물을 좀 흘리며 채워준다. 다행히 물이 동났다. 이번 판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유모차 손잡이를 잡고 앞뒤로 흔들어 둘째를 달랜다. 둘째는 잠시 소강상태다. 첫째는 물총을 나에게 겨누지 않고 허공에 쏜다. 이미 머리와 옷은 흠뻑 젖었고 동생이 울어 엄마가 유모차에 붙어있으니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한 걸까. 높이 높이 쏴보며 웃고 있다. 유모차 손잡이를 놓고 얼른 첫째를 쏜다. 첫째는 꺄악 하고 소릴 지르며 도망간다. 둘째는 에엥-하고 다시 운다. 잠깐만! 하며 물총의 물이 다할 때까지 무자비하게 총질을 한다. 둘째는 이것들 이제 자비란 없다! 하고 외치듯 목소리를 높인다.
“가자 가자. “
첫째에게 타월을 둘러주고 물총의 물을 탈탈 털어 나올 때와는 달리 가벼워진 가방을 얼른 들쳐 매고 유모차를 민다. 흠뻑 젖은 첫째와 눈이 마주친다. 웃는다. 15분 동안 진하게 놀았구나 싶다. 재밌었다는 말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간 첫째가 씻는 동안 물기만 대충 닦아내고 둘째 상태를 살핀다. 물을 얼마 안 맞은 것을 확인하고 시계를 본다. 씻기기엔 너무 늦었네 하며 아기띠를 해서 안아주니 기다렸다는 듯 잠이 든다. 둘째를 침대에 눕히고 나니 첫째가 나온다. 조금 늦었지만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 하여 하나 먹게 하니 티브이도 보고 싶다 한다.
그래 할 거 다 했으니 봐라 하고 동생에게 물총을 쏘며 신난 첫째 사진을 보낸다. 답이 오기 전에 물 맞고 짜증 나 우는 둘째 사진도 보낸다. 카톡을 확인한 동생은 첫째가 신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답을 보내온다. 이에 나는 으쓱하며 답한다.
나 오늘 좀 좋은 엄마 같아ㅋㅋ 아닌가? 둘째한텐?
동생은 답해온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어. 오늘의 토끼는 첫째인 걸로.
아- 나는 그럼 좋은 엄마인가 아닌가. 첫째가 먹고 싶다는 반찬을 해 먹였고,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첫째를 데리러 갔고, 첫째가 놀고 싶다는 방식대로 놀아주었으니 좋은 엄마인가. 아니면 그러는 동안 등에 업혀서 혹은 유모차에 갇혀서 밥도 늦게 먹고 잠도 늦게 자게 된 둘째에겐 나쁜 엄마인 건가. 그래도 첫째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동안 눈 맞추며 놀아주고 안아주었으니 아주 나쁜 엄마는 아닌 건가. 동생 챙긴다고 아침에 알아서 준비하고 나가게 했으니 첫째에게도 아주 좋은 엄마는 아닌 건가.
첫째 돌잔치 때 “아기가 한 살이면 엄마도 한 살이라는데..”하고 입을 열었다 울었는데 엄마나이 여덟 살인데 아직도 어렵고 막막하다. 둘째 엄마는 처음이라 또 참으로 부족하다 느낀다. 그래도 저 말을 붙잡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니 한 놈이라도 잠깐이라도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게 놀아줬으면 나 최선을 다한 거라고. 나 잘했다고.
*사진출처: pixabay, 카톡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