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자도 예상 못한 일이 발생했다.
쌤, 미안해요. 나 못 갈 것 같아.
지난 2월 3일 둘째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갈 때 혹시나 하고 USB를 들고 갔다. 기존 학교에 5년 동안(만기) 근무를 하고 학교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다음 근무지가 결정이 났고 출산과 동시에 기존 학교(A학교)에 전화해서 출산휴가 상신을 부탁했다. 이후 새로 갈 학교(B학교)에 전화해서 휴직원을 메일로 받았다. 조리원 컴퓨터를 빌려 인증서로 로그인을 하고 정부 24에서 등본을 pdf로 저장했다. 양해를 구하고 각종 양식과 첨부문서를 인쇄했다. 모든 걸 작성하고 핸드폰으로 문서를 스캔하고 메일에 첨부하여 회신했다. 원본은 각각 대봉투에 나눠 담아 남편에게 부탁해 우체국 택배로 빠른 등기로 보냈다. 끝.
새로 갈 학교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휴직을 하는구나. 6년 전 A학교로 옮길 때는 그래도 한 번 가보고 쉬었는데. 첫째가 6개월이 채 안 됐을 때-아마 지금의 둘째만 할 때였던 것 같다- A학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번 올 수 있겠냐고. 부랴부랴 아기띠를 하고 택시를 타고(그땐 운전을 못했다) 학교에 갔더니 당시 계시던 교감선생님께서 보자마자 “휴직이죠?”라고 물었다. 그렇게 잠깐 들러 휴직원만 작성하고 집으로 온 뒤 1년이 지나 첫 출근을 했다. 그리고 5년을 내리 근무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지. 하-
생각하면 꼭 겪어야 했나 싶은 너무나 다양한 일을 겪었는데 반면 그걸 버틸 수 있게 해 준 동료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너무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출산은 2월 3일, 송별회는 2월.. 언제려나 했는데 친했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월쌤, 송별회 2월 21일이야. 올 수 있겠어? 오면 좋겠는데. 와서 고기 먹자!
두근거렸다. ‘조리원에서 나가는 다음 주로 딱 잡히다니. 차 타고 다닐 거니까 꽁꽁 싸매고 다녀오면 되겠지? 뭐라고 말하며 인사하지? 그때 남편이 출산휴가를 쓰기로 했으니 맡겨놓고 얼른 가서 밥만 먹고 와야겠다.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진짜 밥만 먹어야겠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할 수 있겠어. 나름 교직생활 중 처음으로 만기 근무한 곳인데 인사는 해야지. 잘 됐다.‘
조리원에서 집에 온 뒤, 몸 상태가 괜찮을지를 계속 살폈다. 추운 겨울에 출산을 한 만큼 찬바람 들어 산후풍이 오는 걸 경계해야 했고 그래야 나갈 수 있으니! 그런데 이를 비웃듯 가슴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설마 또 젖몸살? 첫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슴이 갑자기 엄청 뜨거운 느낌이 나고 몸살처럼 머리도 아프고 몸도 쑤셨던 그 기억.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열은 나지 않았다. 대신 젖꼭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리가루 같은 게 꼭 젖꼭지에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둘째가 유두를 빨 때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 덜덜 떨렸고, 심지어는 날개뼈가 있는 곳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고통이었다.
이러다 못 갈 것 같은데 어쩌지?
사실 첫째를 완모로 키웠기 때문에 모유수유는 별 탈 없이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은근히 있었다. 첫째 땐 조리원에 들어서며 마주친 원장이라는 사람이 가슴을 주물주물거려 토끼눈이 됐더랬지. 하지만 이번엔 누군가 갑자기 가슴이 뭉쳤나 확인한다며 만져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 코로나라는 것이 없던 시절 조리원에 들어가기 전 일면식도 없었던 산모들과 수유실에서 나란히 쉬익쉬익 소리 내는 유축기를 가슴에 붙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젖소가 된 기분을 달랬더랬지. 그러면서 20-30ml가 겨우 나오는 가슴이 크기가 작아 그런가 앞으로도 이러면 어쩌나 하며 불안해했다. 그리고 100ml씩 쭉쭉 뽑아내는 황금가슴을 가진 엄마들을 너무너무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번엔 초유 양이 적어도 먹이다 보면 맞춰진다는 것을 아니까, 양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젖몸살이 오기도 쉽고 사출이 심해 아기가 잘 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 초조해하지 않을 준비도 되어 있었다.
게다가 출산만큼 괴롭다는 젖몸살 경험도 있었다!!(자랑인가) 가슴이 갑자기 딱딱하고 뜨거워지면서 온몸에 몸살기운이 돌고 열이 올라 병원에 갔더니 젖몸살이라며 약을 주고 그래도 계속 물리라고 해서 맛이 이상한지 뱉어버리는 첫째를 어르고 달래 억지로 먹이고, 양이 줄어 늘리기 위해 일부러 더 물렸던 기억이 있었다. 근데 이 고통은... 젖몸살이랑은 달랐다. 뭐지?
하루만 더 지켜보자 싶었는데 나아지긴커녕 몸이 점점 추워졌다. 산후풍인 건가. 간수치가 높아서 약도 먹을 수 없는데! 안 되겠다(못 놀러 가겠다) 싶어 맘카페에 글을 올려 근처 외과를 탐색했다. 오호 가까운 곳에 있구나. 그치만 너무 춥고 또 으슬거리니 차를 타고 출동했다. 너무 아프다고 누워 또 가슴을 드러내놓고 있자니 어이없어 실소가 흘러나왔다.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모유가 정말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아기가 잘못 빨아서 유두가 갈라진 건데 약을 써도 그대로일 것이니, 이런저런 연고를 바르고 유두를 좀 건조하게 유지하셔라, 하지만 아기가 커서 빠는 힘이 세져야 해결될 것이라는 거다. 으악. 시간이 약이라니. 차라리 항생제를 달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우는 가슴을 수습하여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나가고 싶다)! 이번엔 유방마사지를 찾았다. 첫째 때도 젖몸살 이후 유방 마사지가 많은 도움이 됐던지라 이번에도 맘카페의 도움을 받아 괜찮은 곳을 찾아냈다. 아싸뵤, 이번에도 근처다. 얼른 예약해서 가야 하는데... 당장 예약이 안 된단다. 좌절... 떼잉, 글러먹었다 생각하고 주저앉았다. 그래, 내 몸이, 이 아기가 소중하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잘 쉬고 더 잘 먹여 얼른 키워보리라는 생각으로 결국 핸드폰을 들어 연락했다.
쌤. 미안해요. 나 못 갈 것 같아.
그렇게 나는 5년을 꽉 채워 근무한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이런저런 일이 많아 이를 부득부득 갈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라지고 싶진 않았는데. 도망칠 수 있었지만 버텼던 곳이었기에 더욱 잘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별 수 없었다. 이럴 줄 몰랐던 것을. 경력자도 예상치 못한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사진출처: pi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