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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Jul 03. 2023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울었다

덮어두었던 기억, 그리고 알게 된 것

월요일은 정말 학교 가기가 싫어.
월요일은 하루(한 주)를 시작하는 거잖아. 그래서 싫어. 금요일이 제일 좋아. 금요일은 하루(한 주)가 끝나는 거잖아.


초등학교 1학년, 고작 한 학기 학교생활한 아이가 삐죽거리며 학교에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마음이 쓰인다. 아이는 낯선 환경을 정말 싫어한다. 모르는 사람이 말 거는 것도- 제 아무리 호의를 담은 칭찬의 말일지라도- 싫어하고 머리라도 쓰다듬거나 어깨라도 툭툭 치려하면 몸서리치며 인상을 쓴다. 불과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울어재꼈더랬다.


아이의 아침은 하루 일과를 확인하느라 바쁘다. “학교 끝나고 방과후 갔다가 방과후 끝나면 3시 10분에 태권도 차 타는 것 맞지?” 몇 번이고 반복하여 묻는다. 매일매일 비슷한 패턴의 생활을 하는데도 불안한가 보다. 아무렇지 않게 “응, 맞아~너 다 알고 있잖아. 네가 방과후를 잊으면 선생님이 널 찾을 거고, 태권도를 잊으면 태권도 선생님이 널 찾을 거야. 그리고 그때마다 엄마한테 연락 주실 텐데 엄마가 무조건 널 찾을 거야.” 말하지만 사실은 불안해하는 아이가 어쩔 땐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인지라 입학 후 한 달 넘도록 학교 가기 싫다며 울기도 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다 점차 나아져 4, 5월을 가뿐히 보냈고 6월, 아이는 학교에 혼자 걸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학교라는 공간을 처음 접하고 낯설 때 ‘우리 반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시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이미지가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는 운이 좋게 학교를 재미있는 곳이라고 느끼게 해 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입학식의 선생님, 상담 때의 선생님, 알림장 속 선생님... 선생님은 참 유쾌하면서도 진솔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분 같이 보였다. 정말 감사했다. 그랬던 선생님이 최근 건강이 좀 안 좋으신 것 같더니 오늘 아침, 월요일이 싫다는 말을 남기고 아이가 등교한 후 알림이 왔다.



절박유산 사유로 휴직을 결정하였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미안합니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절박유산’.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떠나보냈던 아이가 생각났다. 2018년 겨울 우리에게 찾아와 줬던 ‘해투’. 이름도 지어놨던, 태어났다면 지금 5살이 되어 유치원에 갔을. 당시 담임업무는 극에 달하게 힘들었고 입덧이 너무 심해 체력은 바닥을 기던 차, 절박유산 진단을 받았다. 병가를 내고 2주간 쉬었으나 학부모 전화가 계속되었고 그걸 다 받아내느라 몸이 축났다. 2주간의 병가 마지막 날 병원에 정기점검차 들렀는데 아기의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다음날인 토요일에 소파술을 진행하자고 했다. 첫째와 둘이서 갔던 병원에서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해서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겨우 대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었다. 세 살이던 첫째는 ‘이제 동생이 없냐’며 같이 울었다. 그리고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 난 출근을 했다. 담임이라서, 학기말이라서... 후에 남편은 그때 내가 너무 싫었다고 했다. 아기를 잃고 몸도 마음도 아픈데 의무감에 출근을 하는 내가 바보 같고 싫었다고. 그래서 너무 화났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지 말걸 그랬나 싶다. 이렇게 까지 하고 다음 해, 난 관리자의 괴롭힘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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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에 나와있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던 작년, 마찬가지로 담임이었고 업무스트레스는 극도로 심해졌다. 공황도 겪었던지라 그때와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확실히 쉬기로. 내 아이는 나만이 지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좀만 더 버티면 방학이고 좀만 더 버티면 우리 반 학생들과의 일 년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컸지만, 예쁜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더 중요한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더 후회하지 않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날,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엉엉 울며 부둥켜안았던 것, 퇴근길엔 결석했던 아이와 통화하며 또 울었다. 학부모님께 공지를 보내고, 몇몇 분께 답장을 받으며 울고 또 울었다. 아쉽고 미안했다.






이런 일들이 ‘절박유산’ 한 단어로 다 떠올라서 울었다. 첫째의 담임선생님의 선택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추측이 되어서, 올 한 해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하다는 선생님께 우리 아이의 첫 선생님, 좋은 분이라 감사했고 꼭 건강하게 만출하여 내년 이맘때 우리 둘째만 한 예쁜 아가와 행복한 시간 보내실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좋은 선생님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것에 철렁했다. 아이가 새로 만나게 될 선생님이 어떤 분 일지, 아이가 다시 적응하려면 또 얼마간의 마음고생을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내가 학교를 갑자기 떠나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중학생이었어도, 학부모님들도 이런 비슷한 마음이었을 수 있겠구나 하고. 겪어보니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알게 됐다.




작년에 울며 헤어졌던 아이들은 아마 별 일없이 잘 지낼 것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진 않는다. 이러다 오래 안 가 잊힐 거다. 그래서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한다. 그들의 곁에는 내가 아니라도 부모님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또 새로운 좋은 선생님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내 아이는? 내 아이도 내가 있고 남편이 있으니 또 잘 지낼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이 바뀐 것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볍게 적응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도록 또 좋은 선생님이 오셨으면 싶다.


하교한 아이를 일단 좀 꼬옥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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