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Dec 23. 2022

남편, 미안해. 당신보다 더 기다려져.

목요일에 만나요

날씨가 추워지고 난 뒤로 목요일을 기다린다. 메모장이 이렇게 써두고는     


국화빵 3000짜리 1봉 호떡 5개     


이사 온 지 2년 반쯤 되도록 동네에서 붕어빵 장수를 보지 못했다. 지역 맘카페에는 어디 가면 먹을 수 있다더라 하는 좌표가 있긴 하지만 그만큼의 열정은 없어서 작년, 재작년 겨울은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뱃속에 애가 있어서 그러나. 찬 기운이 느껴지면서부터 팥이 잔뜩 든 몰캉몰캉하면서도 바삭바삭한 붕어빵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만났다. 붕어빵은 아니지만 붕어빵만큼이나 맛있는 국화빵을. 뜨거울 때 김이 나가게 살짝 두었다가 호호 불어가며 베어 물면 달콤한 팥으로 입안을 부드럽게 꽉 채워주는 국화빵을.


날이 추워진 어느 목요일이었다. 호떡과 국화빵을 파는 차를 집 앞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드디어 오셨구나. 반가움에 얼른 국화빵을 사들었다. 그래, 이 맛이야. 올여름 전에도 분명히 있었다. 우리 남편이 국화빵 좋아하는데 하며 한 봉을 샀더랬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국화빵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지. 더워지는 날씨에 잠시 쉬었다 오겠다는 말에 남편만 아쉬워했지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 온 국화빵을 남편보다는 내가 더 반겼다. 남편보다 더 기다린다. 남편이 국화빵을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더 기다린다. 매주 목요일이면 차가 왔나 확인하고는 카카오뱅크 용돈 계좌 잔액을 체크하고 메모를 내민다.


     국화빵 3000짜리 1봉 호떡 5개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메모로 보여주나 의아할 것이다. 이유는 장사하시는 사장님 부부가 청각장애인이셔서 손짓으로 주문해 달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말씀대로 손짓으로 했는데 국화빵이 2000원짜리도 있고 3000원짜리도 있어서 주문하는 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올 때면 사장님과 메모장으로 스몰토크를 했다며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더 자주, 더 많이 사는데. 그래서 메모장에 저렇게 써두었다가 때로는 호떡 없이 국화빵만 사기도 하고 때로는 국화빵을 한 봉 더 사기도 하면서 말을 건넨다.      

저 어제는 우체국 앞에서 사 먹었어요. 아까는 애 데리러 가면서 국화빵 두 봉지 사서 아이 친구들하고 나눠먹었어요. 지금은 남편하고 나눠먹으려고 또 사요.     


사장님이 메모를 슥 읽더니 씩 웃어주신다. 됐다. 나도 스몰토크 성공했다. 남편한테 자랑해야지 하고 있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흰 봉투를 내밀며 말했더니, 너만 어제도 먹었어? 한다. 예상 못했다. 다음번엔 우연히 다른 요일에 사 먹은 건 비밀로 해야지. 이렇게 양껏 사 먹다 보면 목요일마다 지갑에서 13000원, 16000원 순삭이다. 대신 그 돈으로 행복을 느낀다. 돈이 스윽 사라지는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행복이 별 건가.


금요일인 오늘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금요일이라서 좋아."

"왜?"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그말에 2년 전쯤의 기억을 떠올린다. 다섯 살이었던 아이의 말을 듣고 길고 피곤한 출근길에 웃었더랬다.

"엄마는 좋겠다. 오늘 화요일이라서."

"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만 지나면 토요일이니까."


분명 방금까지, 이번주는 왜 이렇게 길어. 아직도 화요일 밖에 안 됐어. 우우우워어얼흐와아아수우우모옥금퇼이라는 말이 딱이다 하고 있었는데 아이 말에 꽤 괜찮은 화요일을 맞아 피식 웃었더랬다.


금요일인 오늘은 내일이 토요일이라 좋고,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이 지나면 목요일이니까 좋다. 좋지 않은 날이 있을 수 없다.   




그나저나 지난주 폭설과 이번 주 한파로 2주째 사장님 부부를 못 뵀다. 다음 주엔 추위가 조금 덜해져서 메모를 내밀 수 있었으면!


     

국화빵 3000짜리 2봉, 호떡 5개  
별일 없으셨죠? 엄청 먹고 싶었어요.





글을 다 쓰고 나니 문제 발생. 국화빵 사진이 없다. 인터넷에서 찾기도 어렵거니와 검색한 것으로는 성에 안 찬다. 사장님을 만나 뵈면 사진 찍어 글 수정을 해야겠다. 안 되겠어요, 얼른 오셔야겠어요!






글을 쓴 지 3주 만에 만나 뵈었다. 정말 기다렸어요! 사진을 연신 찍어대니 호떡 틀을 열어주시고는 여기서 찍으라 손짓해 주신다. 감사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덕분에 국화빵 사진을 올린다. 오늘도 16,000원이 사라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들은 왜 그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