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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19. 2022

엄마들은 왜 그럴까

나는 진심을 말하는 법을 모르는 불효녀다

또다. 또 안 받는다.      


두 시간 전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를 해달라는 엄마 전화를 받았다. 쇼핑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딸과 바지를 사러 나설 참이었기에 쇼핑 후 연락하기로 하고 끊었다. 키가 자라고 살집이 붙어 입을 바지가 없는 딸이 마음먹었을 때 얼른 쇼핑을 마쳐야 하기에 미룰 수 없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며 집 근처 쇼핑몰로 추위를 뚫고 서둘러 걸어갔다. 적당한 옷을 겨우 골라 입어보고 구입한 뒤, 지난가을쯤 사주기로 약속했던 배쓰 밤도 하나 사들었다. 피부를 보호해준다는 오일바도 계획 없이 계산한 뒤였다. 저녁시간이 되어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딸에게 엄마가 약속을 지켰음을 거들먹거리며 꼬셨다. 옆 단지 할머니 댁에 가서 메모리카드만 받아다 집으로 가자고. 그러고 나서 바로 집에 돌아가 불고기에 밥을 먹고 거품목욕을 하자고. 거품 목욕할 생각에 기분 좋은 딸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안 받는다.     




3일 전 목요일에도 그랬다. 눈이 엄청 내렸던 그날, 모처럼 일찍 하원한 손녀딸과 함께 눈 놀이를 하지 않겠냐고 전화했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 일하다 자고 온 엄마는 너무 피곤해 쉬어야 하고, 이따 다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바쁘면 저녁에 또 출근을 하나 생각하고 알았다고 끊었다. 그런데 뭐 때문인가 전화를 하니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동생과 아빠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폭설에 한파에 걱정이 되었다. 몇 번을 더 전화하고 나서야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다는 말을, 아주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들어야 했다. 으이씨, 전화 좀 잘 받지. 왜 전화했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고, 또 안 받았다는 기억만 남았다.     




그런데 또 안 받는 것이다. 우리 쇼핑하는 동안 운동을 한다고 했으니, 운동을 하는 중인가? 운동을 다 마치고 씻는 중이라 안 받나? 핸드폰 좀 들고 들어갔으면 좋았으련만 어휴 하며 동생에게 전화를 걸으니, 동생의 반응도 나와 같다. “또 안 받아? 어휴.”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와서 짐을 푸르는 순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화했었니?


분명 남편이 엄마에게 좋게 말하라고 했는데, 또 말이 막 나온다.


전화를 왜 안 받아?


“목욕해서 몰랐어. 그런데 화장실에 핸드폰을 들고 왔는데 왜 소리가 안 났지? 진동 안 했는데~”

“진동으로 해 놨겠지! 가지고 들어갔으면 뭐해, 받기를 받아야지. 어차피 안 받을 거면서 가지고 들어가는 게 무슨 소용이야.”

“진동 한 줄을 몰랐네~ 이게 왜 진동이었지? 암튼 신경 쓰려고 화장실에도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그럼 무슨 소용이냐고! 받아야 의미가 있는데, 받지를 않아놓고!”     



2절, 3절 잔소리가 길어지자 남편이 옆에서 제지한다. ‘엄마한테 그러지 말랬지!’ 입모양으로 뻐끔뻐끔 외친다. 통화가 끝나면 남편이 분명 엄마한테 잘하라는 잔소리를 2절, 3절 할 것이라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구박하는 소리를 들으며 답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성의 없이 대답하는 내 말을 뒤로하고 남편도 남편의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역시나 그의 엄마도 전화를 안 받는다. 또다. 엄마들은 왜 이러는 걸까?


어머님은 혼자 사시고 나이도 더 연로하시다. 건강상태도 아주 좋지는 않으시다. 전화를 잘 안 받으시는 경우가 많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집에도 안 계신 채로 연락이 안 되어 만삭의 배로 울면서 어머님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미용실에 계셨더랬지. 암튼 전화를 잘 안 받으시는 이유가 진동모드로 해놓은 경우가 많은 터라, 효과 없는 잔소리를 덜 하고자 우리 부부는 어머님의 손목에 갤럭시 워치를 채웠다. 그런데도 전화를 안 받으시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냈듯 어머님에게도 화를 낸다. “어머님 갤럭시 워치 뺏어야겠네.” 남편은 “그러게.”하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면서 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못된 딸 대신 내가 갈게. 하나도 안 추워. 내가 가서 할게. 엄마 딸은 왜 그래?” 수화기 너머에서 됐다고 툴툴대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내 엄마에게 가서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를 해주는 동안 나는 어머님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생각한다. 남편은 현관문을 나서며 말한다. “우리 엄마한테도 잔소리 좀 해.”     




남편은 나가고 딸은 거품목욕을 시작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계속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받기만 해 봐라. 잔소리를 퍼부어줄 테다. 갤럭시 워치 사줘도 소용이 없다고, 며느리 둘째 임신하고 만삭 되어서 또 찾으러 가야겠냐고 잔소리를 할 참이다. 그런데 안 받아도 너무 안 받는다. 차 시동을 걸어야 하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심호흡을 해가며 받기만 해라 하고 통화 버튼을 또 누른 지 열네 번째. 힘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어머님! 어디서 뭐하셔!


“집이야. 잤나 봐..”

“아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편찮으셔?”

“아니야.”

“목소리가 너무 힘이 없잖아. 피곤하셨어? 얼른 다시 쉬셔.”     




남편에게 카톡으로 당신의 엄마가 집에서 주무시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노라고 카톡으로 전달한 뒤, 생각한다. 결국 걱정되는 거였는데, 어머님한테 하듯-물론 어머님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지 않았으면, 아까 생각해 놓은 대로 잔소리를 퍼부었을 텐데- 엄마한테도 할 걸 하고 생각한다. 어머님보다 나이가 젊고 가족도 있고 지병도 없지만 그래도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면 걱정이 되는 건데, 왜 걱정이 된다고 말을 못 하고 전화를 안 받았다고 지랄만 하고 마는 걸까. 전화를 받았고 아무 일 없으면 그걸로 된 건데.     


괜히 머쓱해져서는 엄마를 찾는 딸에게 "나도 우리 엄마한테 전화 좀 할게."하고 핸드폰을 든다. 일곱 살 딸은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잘 생각했어."라고 한다. 오늘도 나만 못난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남편과 딸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말한다. 엄마는 목욕 시작할 때 카톡도 보내 놨는데 왜 안 봐놓고 자기한테만 뭐라고 하냐고 항변 아닌 항변을 한다. "내가 미안해." 사과한다. 같이 씩씩거려준 동생에게도 고해성사하듯, 엄마가 전화 안 받았는데 알고 보니 나한테 카톡을 했었더라며 말한다. 동생은 나에게 나쁜 년이라 욕하고 나는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나만 나쁜 년이 되면-실제로 나쁜 년이다-동생이 집가서 엄마에게 잔소리를 또 할 일은 없을거라 안심이다 생각한다.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를 하고 또 엄마의 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나를 욕하느라 두 시간 반 만에 집에 온 남편이 말한다. “엄마 전화 왔더라. 진동으로 해놓고 자느라 전화 못 받았다고. 그래서 그냥 됐다고 했어. 아무 일 없으면 됐다고. 너도 엄마한테 화내지 말고 전화받으면 그걸로 됐다고 좀 해. 내가 엄마한테 너 혼내준다고 하니까 또 자기 딸이라고 혼내주지 말라고 하더라. 엄마가 우리 딸 등원시키고 그러느라고 날이 덥든 춥든 매번 와주고 그러는데 말이라도 좀 따뜻하게 해.” 알았다고 답하고 다짐한다. 다음번엔 화내지 말아야지 하고.




아니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전화 좀 바로바로 받아주면 좋겠다. 그냥 연락 좀 잘 되면 좋겠다. 엄마들아. 아무 말 말고 전화 좀 받아주라. 걱정 안 되게. 잔소리 안 하게.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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