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Jul 07. 2023

에어컨도 못 켜는 주제에 초밥을 시켜 먹었다

나에게 내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아침 5시 20분, 열네 번째 달리기를 하고 왔다. 그런데 이럴 수가. 몸무게 앞자리가 다시 6으로 바뀌었다. 60.1kg. 어제보다 200g이 더 나가는 거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먹은 초밥 때문인가?



어제는 초밥을 시켜 먹었다. 2월 출산 이후 첫째와 단 둘이 배달을 시켜 먹은 건 처음이었다. 둘이서는 외식도 안 했던 것 같다. 근데 어젠 진짜 밥 하기도 싫고 치우기는 더 싫었다. 첫째가 오자마자 “오늘 저녁은 시켜 먹을까? 먹고 싶은 것 있어?” 물으며 배달앱을 켰다. 첫째가 말했다. “초밥, 저번에 먹은 거 있잖아, 불고기 초밥에 양파 올라간 거, 그거 먹고 싶어.” 불향이 난다는 소고기 불초밥과 이것저것 골고루 들어있는 오늘의 초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달료를 빼고도 3만 원이 넘는 초밥값을 보고 있자니 그냥 집에서 먹을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이미 부엌 파업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먹고 싶은 걸 먹기로 하고 ‘남편카드’로 결제를 했다.


며칠 전 닭가슴살을 비싸게 샀다고, 핫딜 뜨면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던 남편이다. 그동안 당신이 샀던 닭가슴살은 너무 맛이 없었다고, 이게 맛있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만 샐쭉 내밀고 넘겼다. 원래같으면 내 카드로 긁었을 터지만 올해는 연말정산때문에 경제생활을 하는 남편카드로 긁었으니 남편에게 문자가 갔을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쳐다봤다. 뭘 시켜 먹었느냐 물어오진 않을까 걱정을 하며. 배달온 초밥을 맛있게 먹고 치우고 둘째를 씻기고 먹이고, 첫째 공부를 봐주고 책을 읽어주고 함께 잠시 티브이를 보고 재우러 들어갈 때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집에 온 남편은 물었다. “맛있는 거 먹었어?” 서둘러 변명하듯 답했다. “응, 초밥 먹었어. 올해 둘이 처음 시켜 먹었다?” 남편은 ”그래? 좀 자주 시켜먹어.“했다. 괜히 찔려 다시 말했다. “너무 비싸서 안 되겠더라. 올해 가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이렇게 두 번만 더 시켜먹으려고.” “그냥 먹고 싶으면 먹고 싶은 거 먹어~“


닭가슴살에만 야박했던 것으로 밝혀진 남편은 먹고 싶으면 시켜 먹으라고 했지만 한 달 식재료로 30만원을 넘기지 않는데 배달비까지 3만 6천원을 쓰는 건 과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네 가족이 다 같이 먹거나 부모님이나 친구가 오지 않는 이상 외식이나 배달은 꺼려진다. 왜 이런 판단을 하는 걸까 나는.






2월에 출산하고 5월에 출산휴가가 끝났다. 4월까지는 휴가라 월급이 나왔지만 5월부터는 더 이상 월급이 나오지 않는단 얘기다. 작고 소중했던 월급. 10년을 넘게 일해도 바뀌지 않는 앞자리를 가졌던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 육아휴직수당이 들어왔다. 일하지 않고 받는 수당이라며 달콤하게 여기기엔 지나치게 소박한 금액이다. 공무원연금을 내고나면 ‘이러니 애를 안 낳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푼돈이다. 입은 늘었는데 수입은 와장창 줄어버리는.


결혼하며 남편이 가져온 것이 많아 그런지, 묘하게 속상하게도 나보다 월급이 더 많아 그런지, 버는 동안에도 괜시리 위축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용이 보장되어 있어 눈치보지 않고 휴직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아닌가. 반대인가. 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남편은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하기 어려울 뿐더러 남편이 휴직하는 순간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비상이다. 내가 버는 걸로는 네 가족이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러니 육아휴직도 당연히,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 내 몫일 수밖에 없다(단, 1년 이상은 힘들다. 푼돈이라 표현한 수당이 1년밖에 안 나오니까). 그 결과 소비 앞에서 작아지고 말았다.


자라는 동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게 자라서 그런가. 뭐 하나 갖고 싶거나 하고 싶어도 철없이 조르기엔 집안 형편이 빤해서 참고 삼키고 거르고 말하며 컸어서 그런가. 그러다 겨우겨우 말한 것도 어쩔 수 없다며 거절을 당했어서 그런가. 그래서 뭐라도 하려면 경제적 독립이 1순위다 생각하고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열 일곱개에 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기에 돈이 무서웠어서 그런가.


모르겠다. 일단은 맨 앞 줄의 말을 바꾸기로 한다. ‘속상하게도’가 아니라 ‘다행히’ 남편의 월급이 내 월급보다 많다. 육아휴직수당이 푼돈이라는 말도 취소하기로 한다. 그 돈마저 없으면 아쉬울테니까.





뉴스에서 무더위가 왔다고 떠들어대도 집의 모든 창문을 열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어 들어왔는데 얼마 전부터 장마가 시작되며 꿉꿉한 날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비 오는 날은 비가 들쳐서, 맑은 날은 이상하게 먼지 상태가 좋지 않아서 창문을 열 수 없는 날이 계속 됐다. 에어컨 켤까? 하지만 집에는 나 혼자... 는 아니고 아기와 나 단 둘이지만서도 왜인지 에어컨 켜기가 좀 그래서(말 그대로 좀 그랬다..) 켜지 못했다. 난방비처럼 전기사용료도 많이 올랐다던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써큘레이터를 켰다. 일을 했더라면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은 교실을 오가며 카디건을 걸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난 지금 일을 안 하니까. 그래, 이 정도면 참을만하다 하며 에어컨을 쉬게 했다.


그러다 낮잠을 자다 깰 시간이 안 되었는데도 깨어 우는 둘째를 보며 아차 했다. 얼마 없는 머리털이 흠뻑 젖어 꼬불거리고 등이 축축하다. 아, 네가 너무 덥다는 걸 내가 몰랐구나. 더워서 깼나 보다 싶어 에어컨을 켰다. 한 번 켜면 끄기 힘들고 종일 켜야 할 것 같은데. 아직 6월인데 벌써 켜면 9월까지 4개월을 켜야 할 텐데. 밤까지 켜면 백 프로 누진세 구간에 걸릴 것 같은데. 한 번 더 속으로 중얼거리며 생각한다. 아 구질구질해.




돈을 번다고 해서 팍팍 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그만한 돈이 안 되기도 하지만 일하다 쉬는, 그것도 다른 게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하기 위해 쉬는 스스로에게 자꾸 좀스러워지고 야박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했다. 첫째 육아휴직 때도 이랬다. 그땐 오히려 지금보다 경제적 여건이 괜찮았는데도(말하자면 기니, 간략히 설명하자면 대출이 없었고, 교육비가 안 들었다) 뭐 하나 사 먹는 걸 주저했다. 입덧이 심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먹으라고 남편이 준 카드로 기껏 5500원짜리 냉면 한 그릇 먹었던 게 전부였으니 말해 무엇하리. 그냥 못 쓴다.


지금은 교육비도 들어가고 대출도 있고 물가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러하니 돈 못쓰는 나는, 에어컨을 잘 못 켤 수밖에. 배달음식을 못 시켜 먹을 수밖에.





사정이 이러하니 돈 안 드는 달리기는 시간도 많이 안 들고 준비물도 적고 별도의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더하여 최고의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 근데 이게 달리다 보니 내가 나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이렇게까지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의 상태와 마음의 소리에 관심없이 살았구나 싶었다. 돈도 시간도 남편과 아이 위주로만 소비하는 것에 익숙했다는 걸 깨달았다. 듣고 싶은 노래 마저도 뭔지 대답하려면 한참이 걸릴만큼 나를 홀대했구나.


이젠 먹고 싶은 것도 좀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좀 사고 나에게 더 집중하고 나에게 잘 대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출은 있지만 빚도 자산이라 하고 투자는 모르지만 저축도 꾸준히 하고 있지 않은가. 원해서 하는 것이기는 하나 모유수유하며 분윳값도 아끼고 있고, 음식도 거의 다 해 먹고 운동도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 겸사겸사지만 가성비따져가며 한다고! 일일이 나열하며 정당화하지 않아도 나는 있는 그대로 소중하니까, 이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나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좀 더 후하게 해 주기로 했다.


초밥, 지갑을 가볍게 하고 몸을 무겁게 했어도, 맛있었다. 다음엔 무엇을 시켜 나에게 대접을 해줄까?



*사진출처: pixabay, 배달앱 캡처

매거진의 이전글 닭강정을 몰래 먹다 들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