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아, 내가 바람은 아니지만 집을 나갑니다.
당신 집 나가?
카레를 좋아하는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말하고는 했다. 어디 가면 곰탕 말고 카레를 끓여놓고 나가면 안 되냐고. 그런 남편이 퇴근 후 솥에 담긴 카레를 보고 물었다. "당신 집 나가?" "응, 나 집 나가." 맞다. 나는 이번주에 집을 나간다. 애 둘을 데리고서.
집을 나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서재 방에 신문지를 깔아 두고 그 위에 캐리어를 펼쳐 놓는다. 최근 집 정리를 하고 있기에 여기저기서 나온 물건 중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은 캐리어에 던져 넣어둔다. 매일 쓰는 스케줄러 뒷장 메모칸을 펼쳐 무엇이 필요할지 아이 둘의 이름과 내 이름을 적어두고 그 옆에 나열한다. 첫째 세면도구, 로션, 선크림, 폼클렌징, 간지러울 때 바르는 연고, 내복, 속옷, 여벌옷, 양말... 둘째 이유식, 분유, 젖병, 숟가락, 턱받이, 내복...내 속옷, 선글라스, 충전기... 아이들 것은 백 가지쯤 되는 것 같은데 내 것은 웬일인지 단출하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집을 나가 만나러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몸만 와라!!!
몸만 오란다. 설레게. 내 이상형인가. 나와 남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는 집을 나가고 남편은 붙잡지 않고 아이들까지 순순히 보내는 것인가.
사실 나와 남편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다. 내가 가는 곳에 있는 사람의 정체는 바로, 중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 K이다. K가 환전도 유심도 로밍도 잠옷도 외출복도 다 없어도 되니 편히 오란다.
같은 반은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한 달에 한 번 있었던 CA(지금은 동아리라고 해야 하나) 시간에 같은 부를 하면서 CA를 하는 토요일(그때는 토요일도 학교에 갔다! 요즘 애들은 전혀 모를 테지. 놀토도 없었다구. 아, 놀토도 모를 테지.)을 기다렸던 사이다. 우연히 친해진 다른 두 친구도 함께 넷이서 중학교 2-3학년을 서로에게 물들이고 그 시절은 덕분에 즐거운 추억과 함께 불렀던 노래로 가득 차 있다.
나중에 앨범을 보니 유치원도 같이 나왔고, 부모님도 흐릿하게 서로를 기억하는 사이였던 K는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베트남에 있는 지부에 발령을 받아 베트남에서 일하다가 올해 4월 필리핀으로 다시 발령나 옮겼다. 베트남을 좋아하는 나에게 K는 몇 번이고 오라고 했지만, 너무 가고 싶었지만 계속되는 코로나, 예방접종하지 않은 첫째, 무엇보다 출근으로 인한 출국의 어려움으로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완화되어 방학을 이용해 가볼까 했더니 둘째 임신, 그리고 출산.
첫째도 참 살뜰히 챙겨주었던 K는 둘째를 정말 보고 싶어 했고, 지난 추석 한국에 들어왔을 때 시간을 내어 우리 집에 와 주었다. 작년에 만나고 일 년 만이었는데 매일 보던 것처럼 편하게 대화하며 식사를 하는 와중에 "너 진짜 한번 와라"하는데 진짜로 그럴까 싶던 찰나, 남편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다녀와." 정말 그럴까, 애 둘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하다가 결국 표를 사버렸다. 둘째가 70여 일 됐던 때인가, 나와 첫째의 여권이 만료되었음을 알고 이때다 싶어 목도 못 가누는 아이 여권사진을 찍어 신청해 뒀는데. 이게 이렇게 쓰인다.
덕분에 나는 이번주에 집을 나간다. 몸만 오라는 친구 말을 믿고, 환전도 하지 않은 채, 내일모레, 아니 이제 내일 출국을 앞두고 있다. 누구는 대단하다고 하고 누구는 겁도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애가 둘이고 그중 하나는 8개월인데 보호자는 나 혼자다. 또 잘 넘어지는 만큼 길도 잘 잃는데 몇 년만의 해외인지 헤아리기도 헷갈릴 만큼 오랜만이다. 빼먹은 것 없이 가야 할 텐데, 긴장도 되지만 일단은 설렌다. 안전히 잘, 사랑하는 친구가 사는 곳으로 향하겠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고 나면 또 즐거운 기억들로 이 시간이 가득 차게 되겠지. 그리고 정리 후 깨끗해진 공간을 보며 "나 좀 잘했네, 고생 많았네"하고 중얼거리게 되듯이, 애 둘과의 여행도 "나 좀 잘하네, 고생 많았네"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