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능시험이 끝나고...

다시 쓰는 인턴일기

by 아반


학생들 수능시험이 끝났다.

거리에 학생들이 몰려다닌다.


평소에 가끔 오던 여학생도 수능시험을 본 모양이다.

모처럼 개를 데리고 병원에 왔다.

함께 시험을 본 친구도 따라왔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사실상 다 큰 아가씨다..

발육이 좋다.


개를 데리고 온 여학생은 쾌활하다.

원장이 진료를 보는 동안

원장과 웃으며 이야기를 곧잘 한다.


따라온 친구는

조금 수줍어한다.


쌍꺼풀이 없고

약간 까무잡잡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포카혼타스를 닮았다.


아니 그렇게 예쁘지는 않고

그냥 쌍꺼풀 없고 까무잡잡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귀여워 보인다.

예쁜 편이다.


친구가 원장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친구 옆에 서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다.


나도 방긋 웃어 줬다.

모처럼 동물병원이 화기애애하다.


웃을 때

외커풀 눈이 더 가늘어진다.


나를 흠모하는 듯한 느낌이 약간 든다.

말수가 없고 수줍어하는 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비록

가슴에 추노의 낙인을 숨기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 선생님이다.


(*추노: 병원을 탈출했던 적이 있다: 인턴일기 2 참조)


더욱이

얘네들은

방금 수능을 본 학생들이 아닌가?


그 어렵다는

의대를 나와 국시를 합격한

어엿한 닥터, 의사 선생님이고

게다가 젊기까지 하다.


젖냄새나는 고삐리 남자 친구나

선망하는 대학생 오빠들과도

차원이 다른

젊은 의사 오빠인 것이다.


내 뒤에 광채가 나서 눈을 가늘게 떴었던 것일까?

아니면 게슴츠레 나를 본 것인가???


아무튼

진료가 끝나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따뜻하게 배웅해 준다.


테리우스라도 되는 것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학생들이 가버렸다.


테리우스는 무~신...


슬리퍼를 찍찍 끌고

입원실에 들어가

치워야 할 똥오줌이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병원은 무조건

냄새가 나지 말아야 한다.


영락없는

추노 마당쇠 돌쇠다.


그날 밤...

자정 무렵 달빛이 유난히 밝다.


대감 집 담자락 너머로

추노 돌쇠를 부르는

뻐꾸기 소리가 혹시 들리지는 않을까?

부르는 처자가 없다.


에이~

추운 겨울날

전기장판 온도를 높여 놓고

잠이나 자야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

병원문을 흔들어댄다.


"딸랑~", "딸랑~"


일어나기가 귀찮다.


고개만 당직실 밖으로

빼꼼히 내밀어

시선이 병원 복도를 지나

병원 문 쪽으로 향한다.


캄캄한 병원 안과 달리

바깥에 달빛이 은은하다.


아무도 없다.


"딸랑~", "딸랑~"


아니 자세히 보니

뭔가가

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쪽으로

다가가니

사람이 쓰러져 있다.


병원 문을 연다.


여자다.


아까 따라온 그 여학생이다.


술냄새가 많이 난다

고꾸라져 있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어서

고개를 들라 해도

들리지가 않는다.


흡사 사후강직이 온 것 같다.


술을 많이 먹은 걸 보니

시험을 되게 못 봤나 보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여기로 왔지?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지?


아니

일단 바깥이 몹시 춥기 때문에

여학생을 끌고 병원 안으로 들어온다.


학생을 들으려니 너무 무겁고.

상체를 안아

질질 끌고

당직실로 데리고 간다.


영차~영차~


중간에 균형을 잃어

뒤로 자빠졌다.


학생과 포개져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끙~ 끙~ 끙~


간신히 당직실로 끌고 들어왔다.

흡사 굶주린 표범이 육중한 사슴을 끌고

나무 위로 올라간 것과 같았다.


평소에 외로웠지만

굶주리지는 않았다.


외투를 대충 벗기고

자리에 눕혔다.


의식이 없다.


어린 여자가 눈앞에 의식이 없이 쓰러져 있다.


솜이불을 끌어

목까지 덮어준다.

발목도 덮어 가려준다.


쌕쌕 자는 것 같다.


두둥~~~


이제 어쩌란 말인가~~~


당직실을 나와

병원 데스크 책상에 앉았다.


당직실 안에 여학생이 살짝 궁금하다.


어떡하지!


그래 친구 여학생 병원 차트를 찾아

전화를 한다.


"따르릉~따르릉~따르릉~"

한참 만에

전화를 받는다.

잠결에 받았나 보다.


친구가 술에 취해 보호하고 있다고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바늘이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다.


20여 분 만에

친구가 혼자 왔다.


급하게 나온 모양이다.

운동복 차림에 외투만 입고 왔다.


쓰러져 있는 친구를 흔들어 깨운다.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는다.


외투를 다시 걸쳐서 입히고

친구를 부축해 데리고 나간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미안해서

아니 창피해서

눈길을 마주치지 않는다.


쓰러진 친구는 여전히 말이 없다.


쓰러질 듯 기대어 걸어 나간다.


병원 밖으로

나가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친구가 뭐라고 말을 한다.


나가서 도와줄까 하고

바라보는데


다시 일으켜 부축해서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병원 문을 잠그고

다시 당직실로 들어온다


형광등 불빛 아래 당직실이 좁다.

방금 전까지 여자가 누워 있던 자리에

몸이 쏙 들어가

누워 있다.


기분이 묘했다.


퀴퀴하던

총각냄새가

조금 덜 나는 것 같다.


양이온이 음이온에 의해 중화된 것 같다.

여자 페로몬이 뿌려졌나 보다.

좋은 냄새가 난다.


이내 곧 잠들어

잠만 참 잘 잤다.

새벽 3시라 피곤했나 보다...


마당쇠 추노에게 여인네는 사치였다.




10화 [인턴일기 10] 그녀를 좀 더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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