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인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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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번 회에는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혐오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병원엔 원장이 여러 명이었다.
그중 한 분이 강아지 유치를 발치하고 있다.
치과용 송곳인 엘리베이터(Elevator)로 유치를 튕기고 있다.
체중을 실어서 여러 번 튕겨서 유치를 흔들고 있다.
쉽지 않아 보인다.
누가 보더라도 수의사의 진료는 일반인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턴으로서 원장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손님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원서를 읽는다.
치과 기구의 명칭부터 사용법에 대해 읽는다.
엘리베이터의 사용법이 원장에게서 본 것과 약간 달랐다.
이와 잇몸 사이로 엘리베이터를 삽입해 핸들을 돌린다.
유치가 뿌리까지 쉽게 뽑혀 나온다.
재미있다.
스케일러의 사용법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스케일링할 때는 치주포켓을 신경 써서 해야 하고 덴틴이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집요하고 꼼꼼하게 스케일링을 한다.
이에 구멍이 나고 이에 번쩍 섬광이 튄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 뿌리까지 남김없이 발치되면 깨끗이 닦아서
손님에게 기념으로 준다.
지금은 그냥 버리지만 처음엔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치주염과 치근막염의 차이점과 치료법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치과 전문의가 된 기분이다.
비용과 시설의 열악함으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인턴으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익힌다.
인턴 노예로서 병원에 감금 48시간째가 되면
정신이 분열되기 시작한다.
책을 읽는데도 한계가 있고 좁은 공간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혼자 남아있는 시간이 무료하고 힘들다.
그렇다고 대기 중에 개인 시간을 편하게 갖는 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정신적으로 피폐해짐을 느끼게 된다.
주인이 집을 나가고 장시간 혼자 남게 된 개들이 보이는 이상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원장이 나가고 나서 밤늦은 시간
슬슬 사랑니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음식만 먹으면 사랑니와 어금니 사이 공간에 음식물이 끼어 구취가 나고
칫솔질로 제거가 쉽지 않다.
문득 '이걸 확 뽑아버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랑니에 필이 제대로 꽂혔다.
머릿속으로 발치 과정을 그려 본다.
이와 잇몸을 엘리베이터로 분리하고 발치 겸자로 흔들어 본다.
이미 다수의 개의 유치를 성공적으로 발치한 경험을 떠올린다.
이성이 아니라 정신이 분열된 상태에서
뭔가 홀린 듯 집착하게 된다.
집에 혼자 남겨진 개가
베개를 물어뜯고 벽지를 찢어 버리고
난장판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몸에서 차오르는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눈에 거슬리는 사랑니를 당장 뽑아버리고 싶다.
리도카인을 주사기로 뽑아서
잇몸에 찔러 주입한다.
그리고 끝이 예리한 엘리베이터로 이와 잇몸 사이를 헤집는다.
사랑니 전후 좌우 사방을 분리해야 한다.
그러다가
쭈욱~
잇몸이 엘리베이터에 뚫려 구멍이 나버렸다.
국소 마취를 해서
통증이 둔감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잇몸이 뚫린 것이 끔찍했다.
그러나 좌우사방을 온통 헤집었는데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발치기로 이를 집어 흔들어 본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침과 피가 범벅이 된 상태에서
발치기로 이를 물고
거울을 보며 씨름을 하고 있다.
벌써 30분째 이러고 있다.
원장이 늦은 시간에 병원에 잠깐 들렀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주인이 귀가 후에 개들이 해 놓은 광경을 보고 놀라는 것처럼
깜짝 놀란다.
"야, 이 미친놈아!"
"어버어버, 어버버버…"
"뭐라고? 뭐라는 거야. 사랑니 뽑는다고?"
처음에 아연실색했던 원장이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뽑아주마."
원장이 발치기로 사랑니를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꿈쩍도 않는다.
원장이 오른발로 내 가슴을 밟고
다시 한번 몸을 뒤로 젖혀 당겨본다.
꿈쩍도 않는다.
한 시간 만에
안 되는 걸로 받아들인다.
턱이 부어오르고
잇몸이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약장에 가서 진통제를 찾아서 먹는다.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당직실에 가서 찌그러진다.
다음날 치과에 갔다.
진료대에 누워 입을 벌린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케이스다.
학회에 보고해야 하나.
아니다. 이놈은 또라이가 분명하다.
섣불리 건드려서 골치 아플 일이 없다.
엑스선 사진을 보여준다.
사랑니가 누워있고 어금니가 그 앞에 있다.
절대 빠질 수 없는 구조다.
이건 일반 치과에서 뽑을 수 없고 치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 가야 한단다.
자기가 뽑으면 뿌리가 남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단다.
아무래도 나를 보내려는 수작 같다.
의사가 소개해준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단다.
교수님이라 강의가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벌써 자기네들끼리 내통해서 피하라고 언질을 준 건가?
다시 원래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부작용이 생겨도 감수할 테니 선생님이 뽑아 주세요.
잇몸이 너무 부어 부기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했다.
약을 처방받고 일주일 후에 다시 병원에 가서 이를 뽑았다.
그냥 뽑을 수 없어서 이를 절단해서 조각을 낸 후 뽑고
봉합을 했다.
결국은 뽑았다.
사랑니가 빠진 기분
날아갈 것 같았다.
시원했다.
실밥은 내가 거울을 보며 직접 뽑았다.
자가 진료는 학대 행위다.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