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임금협상

다시 쓰는 인턴일기

by 아반


요즘 수의사 게시판을 보면 수의사 인턴에 대한 처우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사회 초년 수의사 인턴들과 기존의 원장들 사이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것 같다.

원장들은 "내가 인턴일 때는 50만 원 받았다"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그랬다.


나는 세 장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5일 정도 병원에서 자고 집에 한번 갔다 왔었던 것 같다.


6개월이 지나자

여섯 장으로 월급이 올랐다.


그리고 일 년이 됐을 때

다시 한번 점프를 기대했건만

월급은 그대로 여섯 장이었다.


이대로라면 연애도 할 수 없고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면 병원을 박차고 나와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 일 년간 난 원장에 의해 사육되고 길들여져서

원장과 오래 함께 하고 싶었다.


학대당하는 부인이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심리,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연약한 밧줄을 끊지 못하고 탈출하지 못하는 심리를 난 이해 한다.


병원 밖 정글이 무서웠다.


오늘은 크게 용기를 내어

원장과 임금 협상을 벌였다.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뭐냐~"


"원장님과 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월급이 어느 정도 현실성 있게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원장이 약간 상기되어 목소리가 커진다.

아무래도 돈 문제는 서로 말하기가 껄끄럽다.


(이건 열정 페이도 아니고 '열' 빼고 그냥 '정(情)' 페이다.

우리는 선후배로서 서로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눈 사이다.)


"니가 그런 정신 상태로 일하면 안 된다.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오히려 내가 돈을 너한테 받아야 한다."

(이건 흡사 70년대 악덕 공장주들이 날릴만한 멘트 수준이다.)


(약간 수준을 높여 자본주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보다 높다는 걸 알아야 해.

알~겠느냐? 뺀질아 "


어렴풋이 알 듯 모를 듯하다.


쉽게 말해 내 월급보다 집주인의 임대료가 언제나 훨씬 많다는 얘기다.


원장이 말을 이어간다.


"나도 투자한 돈의 이자도 못 벌고 있다.

너는 한 푼 투자 없이 월급이라도 받지, 나는 투자한 돈의 이자 원금 갚고 나면 없어.

내 노동에 대한 대가는 '0'이야. 나는 정~말 네가 부럽다."


정신줄을 붙들어야 한다. 원장의 현란한 수사(修辭)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그래도 너무 힘들고, 저도 원장과 함께하는 걸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전혀 협박스럽지가 않다. 가지고 있는 협상 카드가 없다.)


"그래 그러면 다음 달에 너 하는 거 봐서 생각은 해보마."


"네 그러면 그리 알겠사옵니다."


뭔가 끝맺음을 못한 것 같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것 같은, 최소한 다시 말할 여지는 남겨놓은 그런 협상이 끝났다.

(이건 거의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 합의 수준의 협상 결과였다.)


하지만 "너 하는 거 봐서, 너 하는 거 봐서, 너 하는 거 봐서, 너 하는 거 봐서..."

계속 귓가에 맴돈다.


그래 열심히 하면 "생각은 해보마, 생각은 해보마, 생각은 해보마, 생각은 해보마... "

(사실은 "생각만" 해보마)


그래 열심히 하면 월급이 오를 여지가 있다.


왠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긴다.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야수의 모습으로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뚜뚜뚜뚜~ 먹잇감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안고 숨 넘어가듯 병원으로 달려온다.


"우리 애가 뭘 잘못 먹었어요."

아마 바퀴벌레 약 같은 것으로 조금 위험하다고 여겨지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그 무언가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내 두뇌는 어떻게 하면 먹잇감으로부터 맥시멈을 이끌어 낼 것인가의 연산 작용에 총력을 쏟고 있느라 기억 저장장치를 가동하고 있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위 세척을 해야 합니다."


일단 조금 처져 있는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고 마취를 했다.

그리고 기관 삽관을 하고 위 튜브를 통해 카올린 흡착제등을 섞은 미온수를 위 내에 주입하고 빼내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수액을 장착하고 입원실에서 회복되기를 기다린다.


십만 원을 불렀다.

아직 받지는 못했다.


아주머니가 집에 다녀오겠다며 아이를 맡기고 나가셨다.


그래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가 하는 만큼 번다.

이게 자본주의다.



잠시 후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어딨어?"


"네?"


"어딨냐고. 우리 개."


입원실을 가리키자 앞장서서 성큼성큼 들어간다.


"꺼내."


"네?"


"꺼내라고"


"회복하는 동안 수액을 좀 더 맞아야 합니다."


"필요 없어, 당장 꺼내."


수액 줄을 풀어주자마자 개를 데리고 나가려 한다.


"아직 계산을 안 했습니다."


"계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날강도 같은 놈들. 못 줘."


맞을 뻔했다. 그대로 나가버린다.


나중에 알게 된 조금 전 상황은 이랬다.


(아주머니 집에 와서 남편에게 위 세척 이야기를 한다.

십만 원이라고 이야기한다.

"뭐가 그리 비싸?"

여기저기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서 위 세척 비용을 알아본다.

동물병원 직원들은 친절하게 '3~4만 원'이라고 알려준다.

비싸 봐야 5만 원을 넘지 않는다.

"썅~" 아저씨 흥분해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다. )


월급 적은 것도 서러운데 이제 개나 소나 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난다.


원장이 돌아와서 사태를 파악한 후

전화를 한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어디 남의 병원에 와서 수의사 선생님한테 행패야. 당신 경찰서 가고 싶어."


원장이 쌍욕을 하며 아저씨와 맞짱을 뜬다.


원장이 멋있어 보인다.



다음 달 기대했던 임금인상은 없었다.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




05화 [인턴일기 5] 자가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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