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몽상가 LEE의 글을 읽고
글쓰는 몽상가 LEE작가님의 심리노트 속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
문득 이 그림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1889년, 남프랑스 생레미의 정신병원, 그곳에서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의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 그림을 살펴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그림 왼편에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검은 기둥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입니다.
고흐는 죽기 1년 전, 정신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이 풍경을 그리며 이 나무를 "검은 색조의 조용한 기운"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구권에서 주로 묘지에 심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죽음과 불멸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고흐는 이 나무를 통해 삶의 고통 끝에 맞이할 죽음을 하늘의 별들과 연결하려 했습니다.
이 나무의 검은 실루엣은 어쩌면 땅과 하늘을 잇는 거대한 통로처럼 보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별에게 데려간다."
고흐가 친구에게 쓴 편지 속 문구입니다.
고흐에게 이 그림은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할 인생의 종착지로의 염원을 그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도의 검은 점을 누르면 프랑스의 도시로 가듯, 하늘의 빛나는 점을 누르면 그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기차를 타고 루앙에 가듯, 우리는 죽음을 타고 별로 간다."
고흐에게는 저 소용돌이치는 별밤이 우리가 언젠가 돌아가 안식을 취해야 할 최종 목적지였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은 사이프러스 나무의 솟구침과 별 사이 공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건 결국 별에 다다르기 이전에 우리가 겪어야 할 수많은 고뇌와 번민의 소용돌이 일 것입니다.
고흐에게 이 소용돌이는 자신을 괴롭히던 발작과 가난, 외로움이 우주의 거대한 질서와 충돌하는 마음속의 폭풍의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폭풍을 지나야만 비로소 별의 평온함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마을은 우리의 현실 세상이고 정적이지만 우리의 염원과 희망과 욕구는 결국 별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이란 걸 고흐는 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별이 뚜렷하지 않고 빛의 번짐처럼 표현한 것은 희망의 불확실함을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로 인한 빛의 번짐인가?
이것은 우리가 품은 염원이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사실은 거대한 고뇌의 소용돌이 너머에 있어 결코 쉽게 닿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심각한 환청과 환각, 그리고 고독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별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가 바라본 별빛의 빛 번짐은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로 인한 빛 번짐이었을 것입니다.
맺힌 눈물이 시야를 가릴 때, 세상의 빛은 날카로운 점이 아니라 둥글고 몽롱한 달무리나 별무리처럼 번져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들판에서 스스로에게 총을 쏘고 이틀 뒤, 동생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그렇게 3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그린 또 다른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별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언제나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던 것일까요?
<론강의 별의 빛나는 밤>에는 상상화인 <별이 빛나는 밤> 과는 달리 아를의 강가에서 실물을 직접 보고 그린 실경(實景)이었습니다.
론강의 강변에 서서 그가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았을 별빛의 빛 번짐은 유난히도 두드러집니다.
후에 그가 그린 그림에는 그때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볼수록 그가 느낀 지독한 고독과 슬픔을 느끼기에 그가 그린 또 다른 그림을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