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의 오류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한때 유행하던 광고 카피다.
현실 세계에서는 "아니요" 하는 순간, 돌 맞는다.
모름지기 사회생활이란 적당히 타협하고 눈치껏 편승해야 성공한다.
적어도 돌은 안 맞는다.
남들이 하는 대로 안 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자라면서 고집이 세서 수도 없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수의사란 직업은 통념에 의해서 보호자의 입맛에 맞춰서 따라가는 직업이 아니다.
수의사는 언제나 사실에 기반해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직업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을 때로는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더라도
언제나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하지만 나라면 정말 다수가 '예'라고 하는데 혼자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기획안을 놓고 회의를 하는데
모두가 '예'라고 하는데 혼자서 '아니요'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과장님, 부장님, 이사님까지
모두 'OK'라고 했는데
일개 사원인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내 말처럼 '아니요'가 옳았다 하더라도
그러면 '예'라고 말한 과장님 부장님은 뭐가 될까?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나의 '아니요'가 맞는 것으로 판명 나더라도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될 게 뻔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 기획안에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나만이 알고 있는 어떤 사정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 순간, 침묵해서는 안된다.
다수에 묻혀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파리약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것은 먹는 파리약이었다
달콤한 과립에 살충제를 섞어서
농장에 뿌려 놓으면 파리들이 알아서 잔치를 벌이다가
모두 나자빠지는 그런 약이었다.
나는 이 파리약의 광고 문구를 기획하는 일을 했었는데
파리를 유인하는 페로몬으로 파리를 유혹해서
그러니까 암컷 파리의 매혹적인 유혹에 파리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그런 광고 카피를 만들어서 대박을 터트리려고 했었다.
(아니 파리가 남자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이게 맞아?)
여하튼 파리가 아니라 농장주 아저씨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파리약을 팔아보겠다는 그런 심산이었다.
파리가 아니라 농장 아재들을 유혹하는 그림을 넣고...
실제로 늘씬한 미녀가 중국 치파오를 입고 다리를 허벅지까지
드러내고 파리를 유혹한다.
그런데 정작 파리약이 유혹한건 파리가 아니라 동네 개들이었다.
개들이 파리약을 먹고 구토를 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제품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파리약에 고미제를 섞기로 했다.
어린 아이나 동물이 먹으면 너무 쓴 맛에 금방 뱉어 버리게 하는 그런 성분의 물질을 제품에 섞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제품에 새로운 물질을 넣어서 판매 허가를 받으려면 적어도 3년간의 안정성, 효능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구멍가게 같은 회사 매출에 파리약이 간당간당하게 연명시켜주고 있는데
이걸 3년 후에 팔아야 한다는 그런 말이었다.
이제부터 수완 좋은 차장님, 부장님, 그리고 이사님의 실력 발휘가 들어간다.
잘 아는 연구소 소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3년 걸리는 보고서를 3주 안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범죄지.)
모 정치인은 돼지 발정제를 탄 술을 여자에게 먹였다가 정치생명 끝날 뻔 헸는데...
나도 이제 국회의원 출마는 이것으로 접어야지.
어쨌든 나의 역할은 그 '가라'로 만들어진 보고서를 가지고
등록 서류를 꾸며서 제품 허가를 받는 실무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모기 양심은 있어서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구멍가게 회사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
(그래 이건 연구소 소장과 이사님 결제까지 난 사항이야, 나는 결정권자가 아니라고...)
속으로 고개를 드는 양심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눈 딱 감고 등록서류를 제출하고야 말았다.
서류를 제출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거하게 회식에서 술 한잔 했다.
이제부터 파리약으로 농장 아저씨들을 하나둘씩 유혹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고미제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파리도 "퉤퉤~" 하고 꼬이질 않았던 것이다.
효능 시험을 제대로 했어야 파리가 꼬이는지 안 꼬이는지를 알지...
결국 만들어진 제품은 폐기처분했고
연구소에서 인사를 나누던 연구소 직원의 퇴사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그 일 때문에 퇴사한 건 아니겠지만
내가 눌렀던 양심이 나에게 고개를 들고
욕을 하기 시작한다.
"거봐 내가 나 누를 때 알아봤다고..."
"씩-씩 -"
정말로 조직 내에서 혼자만 "아니요"라고 말하는 건 사회생활의 존폐가 걸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정말 혼자서 "아니요"라고 외치던 사람이 있었다.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 약 400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물었습니다.
“내가 라못길르앗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올라가셔야지요! 하느님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열왕기상 22:6
이스라엘 왕이 출전을 앞두고 예언자들에게 출전 여부를 물었다.
모든 예언자들이 출전을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다른 의견을 말했다.
그는 바로 미가야였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그에게 일러주며 말했습니다.
“보시오, 다른 예언자들은 모두 한 입으로 왕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예언하고 있소.
그러니 당신도 제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왕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말을 해주시오.”
열왕기상 22: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그에게 왕에게 좋은 말을 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미가야는 자신은 맹세코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는대로만 말하겠다고 말한다.
미가야는 하늘에서 하느님과 천사들이 하는 대화를 왕에게 들려준다.
여호와께서 물으셨습니다.
“누가 아합을 꾀어내어, 그가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 거기서 죽게 하겠느냐?”
그러자 천사들이 저마다 이런저런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때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제가 가서 그를 속여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어떤 방법으로 하겠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가서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라면 충분히 그를 속여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가서 계획대로 실행하여라.”
보십시오. 바로 이런 이유로 여호와께서는 지금 왕의 예언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어두신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왕에게 이미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열왕기상 22:20~23
미가야는 여호와의 천사가 왕을 속이기 위해 400명의 예언자들에게 거짓 계시를 한 것이라고 말한다.
400명이 하는 말과 한 명의 미친 예언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왕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합 왕은 미가야가 여호와의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는 400명의 예언자들의 말을 듣기로 결정하며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합은 그 전투에서 사망하게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왕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하는 말,
참 예언자라는 걸 알지만 언제나 듣기 싫은 말만 하는 예언자의 말,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해서 자신에게 영예가 돌아가기를 바라는 자신의 욕망,
더군다나 400명 앞에서 전투를 포기했다면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아합 왕의 두뇌는 한 편으로 찜찜하지만
그런 찜찜한 예언자를 감옥에 가두어 버리고 전투에 참전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건 결국 그의 두뇌가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합의 두뇌가 일으킨 연산 오류, 즉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오류를 내버려 두신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다.
아합 왕을 속인 것은 천사도 미가야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오류의 작용'을 일으켜서,
그들이 거짓된 것을 그대로 믿게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를 즐겼던 그들 모두가,
결국 자신이 선택한 그 거짓에 의해 심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1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리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 보기 싫은 것은 애써 외면한다.
이것은 그들의 두뇌가 '오류' 그러니까 '판단의 에러'를 일으키는 것이며
이것을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따라서,
그냥 쭉 해오던 것이 편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것은 어쩌면 진리에 대한 사랑보다 그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기뻐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불의와 다수의 사람들을 따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속이는 힘에 이끌려 오류를 믿도록 내버려 두신다.
그들을 바로잡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인 셈이다.
오류를 일으킨 시스템은 결국 모두 파리약처럼 폐기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제목 이미지 : [The Prophet Micaiah before Ahab and Jehoshaphat]
얀 루이켄, 1708년. Rijksmuseum.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