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戰時) 강간 : 베를린의 어느 이름 모를 여인

전시 성폭력의 종말

by 아반

강간범으로 오해받다


최근 여성의 강간 문제를 다룬 심층 르포 기사를 읽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풋내기 대학생에게 사회적 강간 문제는 흥미롭고 인상이 깊을 수밖에 없다.


얼마 후 수업이 일찍 끝나 오후 시간에 여유가 있던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캠퍼스를 걷고 있는데 같은 과 동기 여학생과 방향이 같다.

특별히 약속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할 이유도 없다.

같이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았다.


여학생은 재수를 해서 나보다 더 어른스럽고 사귀는 선배가 있다.

그래서 아주 편한 자리였다.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다가 마음속에 가득한 사회의 강간 문제에 대해 내가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고 이 단순 무식한 자슥아...'


특히 강간범의 심리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했는데

"사실 강간범은 성욕이 강한 게 아니라 여성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심리가 있대." 라며 마치 모르던 걸 '유레카'를 외치며 깨달은 사람처럼 진지하게 말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수의학과 여학우의 지적 수준은 낮지 않았다.

사회적 문제라 곧잘 반응하고 우리의 오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아무런 문제 없이 손을 흔들고 헤어졌지만

그 후 여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내내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오해했으리라...




전시(戰時) 강간


제목 사진은 '베를린의 여인'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전시 강간이라는 주제를 다루었고 실제로 소련군이 독일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 대규모 강간이 발생했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에 의한 강간 사건은 동부 유럽 140만 건, 베를린 60만 건이나 되었다고 한다.



Gemini_Generated_Image_xh43iuxh43iuxh43.png 기록사진 : 전후 베를린 거리(戰時)


전쟁은 누구에게나 비극이지만 여성들에게는 더욱더 참혹하다.

비단 소련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발생한 현지인의 매춘과 혼혈아 문제도 전시에 발생한 전시 성폭력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이교 나라의 침략


네가 한 여인과 약혼하여 정을 맺었으나,
정작 전쟁의 포화 속에서 다른 남자가 달려들어 그를 강제로 유린할 것이며,
네가 피땀 흘려 집을 세웠으나 너는 그 문턱조차 넘지 못할 것이요,
네가 포도원을 일구어 가꾸었으나 그 열매를 입에 대기도 전에 약탈자들의 차지가 되고 말 것이다.
신명기 28:31


이스라엘이 불충실해서 하느님의 보호가 거두어졌을 때

그들은 이교의 야만적인 나라들의 침략을 받고 그로 인해 전시 강간이 필연적으로 발생될 것이 예견되어 있었다.


그건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보호가 거두어지게 될 때 전쟁으로 인해 있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느님을 잊어버렸고 그들은 이교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야빈 왕은 철낫이 달린 병거 900대를 가지고 있었고, 2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칠게 압제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폭력의 무게 아래서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도, 야엘의 날에도, 큰길에는 발길이 끊겼고 여행자들은 으슥한 뒷길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사사기 4:3;5:6


가나안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그들을 거칠게 압제했을 때

분명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있었고

길에도 마을에도 인적이 끊기고 사람들은 뒷길로 다녔다.


그들이 왜 뒷길로 숨었겠는가?

길을 다니는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유린당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당시, 세상은 강간과 약탈이 일상화된 상태였다.


실제로 베를린의 여인들을 보면 그들이 취한 대표적인 방어 수단은 숨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하실이나 다락방으로 그리고 아이들과 노인들이 사는 집으로 알려진 집으로 은신했으며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고대에는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살해되고 여자들은 성적 노리개로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들이 어찌 노획물을 나누지 못하겠느냐?
군사 한 명당 여자(자궁) 한두 명을 취하지 않겠느냐?
(A womb, two wombs for every man?)
시스라에게는 화려한 채색 옷을, 약탈한 자들의 목에는 정교한 수놓은 옷감을 두르지 않겠느냐?

사사기 5:30


여기서 처녀를 뜻하는 일반적인 단어 대신 '자궁(Womb)'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주목해야 한다.

히브리어로는 '라함'(Raham, רַחַם)이며 그 의미는 바로 '자궁'이다

이것은 여성을 인간이 아닌, 군인들의 욕구를 해소하고 전리품을 생산하는 '생식기'로만 취급하는 전시 성폭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자들의 복수


드보라가 대답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전선으로 가리라. 그러나 바락,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공을 세우러 가는 이 정벌의 길에서 영광은 결코 네 몫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성을 유린하던 그 시스라를, 바로 그가 경멸했던 한 여인의 손에 처참하게 팔아넘겨 처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을 이끌고 게데스의 결전장으로 향했다.
사사기 4:9


여호와께서는 여자들을 폭행했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군대에 대해 여자가 복수하게 해 주셨던 것이다.


그때의 사건에 관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데 여자에게 전쟁의 승리에 대한 영예를 돌리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여성 중에 단연 독보적인 이름, 야엘을 기억하십시오.
장막에 거하는 그 어떤 여인보다도 위대한 영광이 그녀에게 돌아갔습니다.
도망자 시스라는 목이 타들어 가는 듯 물 한 모금을 구걸했으나, 야엘은 우유를 내주었습니다.
그것도 귀한 손님이나 쓰는 최고급 잔에 담아, 그놈이 취해 잠들 수 있도록 가장 달콤한 안식을 선물했습니다.

그놈이 잠에 취해 무너진 순간, 야엘은 움직였습니다.
왼손으로는 차가운 쇠말뚝을 잡고, 오른손에는 가해자의 머리를 부술 묵직한 망치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리쳤습니다.
망치는 여성을 '자궁'이라 모욕하며 유린하던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단숨에 뚫어버렸고,
그 더러운 대가리를 바닥에 그대로 박아버렸습니다.

보십시오. 시스라가 그녀의 발치에 거꾸러집니다.
발작하며 쓰러지고 널브러집니다.
여성을 제 발아래 두려던 자가 도리어 여인의 발치에 처박혀,
그 굴욕적인 현장에서 비참한 시체가 되어 파멸했습니다.

사사기 5:24~27


자신들을 압제하고 성폭력을 일삼던 가나안 군대가 패하고 군대 장군이 여자의 손에서 고꾸라졌을 때

분명 여자들은 통쾌함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전쟁 폭력의 종말


여호와여, 여성을 물건 취급하며 유린하던 저 모든 가해자가 이토록 비참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십시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며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이제 구름을 뚫고 솟구치는 태양처럼
세상을 압도하는 눈부신 기세로 당당하게 일어서게 하십시오!

그제야 비로소 그 땅에는 더 이상의 폭력도, 유린의 비명도 들리지 않는 사십 년의 깊고 평온한 안식이 찾아왔습니다.

사사기 5:31



하느님께서는 전쟁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과 특히 여자들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유념하시며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자들에 대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모든 성폭력을 근절하시고 여자들에게 쉼을 주실 것이다.


여성을 압제하던 자에게 여성이 직접 복수하게 하고

그 여성에게 승리의 영예가 돌아가게 한 이 성경의 기록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을 압제하는 모든 폭력적인 자들의 머리에 쇠말뚝이 박히게 되는 그날까지...








제목 이미지 출처: 영화 <베를린의 여인>(Anonyma - Eine Frau in Berlin, 2008)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