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르호보암의 선택

by 아반

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갈림길에서 한쪽 길을 가면서 끝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다른 쪽 길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잘 그려진 시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어떤 학교로 진학할 것인지, 누구를 만나 사랑할 것인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까?


외근을 나갔다가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전화가 왔었다는 쪽지가 책상 위에 남겨져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찾더라는 내용이었다.


회사에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눈여겨봐 왔던 어느 어머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 딸을 좀 만나봐 달라고 하는 청이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선자리였다.


그녀는 순한 얼굴에 키도 크고 풍만한 풍채를 가진 베이글형 미인이었다.

나도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암만 봐도 그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는 알쏭달쏭했다.

나에게 말 한마디 안 붙이고 이따금 지나칠 때도 하는 둥 마는 둥 인사를 한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됐는데

그 어색함이란...

오히려 그녀는 내가 아는 형을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 형 앞에서는 곧잘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한다.

그 형은 나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직장도 더 좋다.

역시 여자들이 보는 눈은 다 똑같다.


그리고 그녀보다는 그녀의 어머니가 더 적극적이었다.

이런 자리는 어른들이 나서서 다리를 놔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밀어붙이셨다.

그래서 결국 그녀와 만남을 갖기로 약속을 했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첫 만남을 가지면 왠지 그 어머님에게 단단히 발목을 잡힐 것 같은 두려움이 계속해서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내 눈에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눈웃음을 치는 여우 같은 매력적인 여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련되고 옷맵시가 좋은데 단정한 것보다는 전위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녀가 나를 보며 알듯 모를둣 새침함 속에 살짝살짝 웃는데

나는 그만 여우에 홀리고 말았다.


내가 만약 그 선자리에 나간다면 나는 이 여우와는 영영 이별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선뜻 경솔히 결정하지 말고

너무 마음이 있는 것처럼 내비치도 말고

거절을 하더라도 딱 잘라 거절하기보다는 여지를 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상대도 마음 상하지 않고 사람 일은 또 모르니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충고하셨다.


그런데 나는 회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여우를 택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선자리가 있던 그날,

중요한 회식자리가 있어서 갈 수 없게 됐다고 양해를 구하고

순한 양 같은 그녀를 바람맞히고 말았다.


실제로 그날은 회식이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빠질 수 있는 자리였건만

나는 그 회식 자리에서 연이어 나오는

일식을 코스대로 먹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용기를 내어 여우 같은 그녀에게 만나줄 수 있는지 소심하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곤란하다는 말로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그녀는 남들 모르게 만나는 남자가 있었던 것이었다.


악!!! 여자! 여자! 여자!

(여우! 여우! 여우!)


그제야 양같이 포근한 그녀가 삼삼하게 눈에 어른거렸다.

괜히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주위를 서성여 보는데

이미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고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때 내가 우리 어머니 말씀을 듣고

여지를 남겼더라면...

그때 내가 여우가 아니라 양을 선택했다면, 하고 되뇌며

두고두고 그 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다른 쪽 길을 선택했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제부터 왜 그런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젊은이들의 조언


르호보암 왕은 솔로몬의 아들이다.

부역 감독자인 여로보암과 백성이 그들에게 부과된 노역을 줄여달라고 르호보암 왕에게 요청하였을 때

연로한 자들은 르호보암에게 백성의 청을 들어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르호보암 주위에 있던 젊은 조언자들은 백성의 청을 들어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르호보암 왕은 연로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젊은이들의 조언대로 그들에게 말했다.


르호보암 왕은 연로자들의 지혜로운 조언을 내팽개치고, 백성들에게 아주 거칠고 매정하게 대답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부추긴 대로 백성들에게 이렇게 내뱉었다.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메운 멍에가 무거웠소? 나는 그 멍에를 훨씬 더 무겁게 만들 것이오.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다스렸지만, 나는 당신들을 전갈의 독침 같은 가시 채찍으로 다스릴 것이오!"

역대기하 10:13,14


르호보암 왕이 젊은이들의 조언대로 백성의 청을 거절하자

백성은 노역을 거부하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되어 북쪽 열 지파 왕국과 남쪽 유다 왕국으로 나뉘게 되었다.



Gemini_Generated_Image_plvwtdplvwtdplvw.png 르호보암의 오만-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



우리는 여기서 젊은이들의 조언이 틀렸고 연로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과연 그럴까?


물론 일반적으로 연로자들은 연륜과 경험이 많으며 지혜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적으로 그들의 말을 고려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에 불과하고 연로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은 조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르호보암의 경우에는 연로자들의 조언이 올바랐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느님의 약속과 사태 진전


이처럼 왕이 백성의 간청을 끝내 외면한 것은, 참하느님께서 사태 진전을 지켜보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려는 섭리였다.

역대기하 10:15


이 성구를 보면 왕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것이었다.

이 말은 하느님이 르호보암이 그런 결정을 하도록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르호보암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 사태 진전을 살펴보신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하느님께서 여로보암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을 이행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여호와께서는 이미 솔로몬의 불충실함으로 인해 그의 왕국의 나누어지게 하여 여로보암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결과적으로 르호보암이 내린 결정은 하느님의 약속대로 그의 왕국이 나누어지게 하였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연로자들의 조언을 따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이 경우에도 이스라엘 왕국을 나누어 여로보암에게 주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왕국을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에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살아있는 동안 이집트에 피신해 있었다.

그리고 솔로몬이 죽자 다시 돌아와서 백성과 함께 르호보암에게 가서 노역을 줄여달라고 요청하는데

이건 여로보암이 백성을 선동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연로자들의 조언을 따랐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르호보암이 연로자들의 조언대로 여로보암과 백성의 청을 들어주어 노역을 줄여 주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아마도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신임을 얻게 되고 백성들은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여로보암의 세력은 힘을 얻고 르호보암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백성을 이끌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르호보암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상관없이 사태 진전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왕국이 나뉘어 여로보암에게 열 지파가 가도록 사태를 이끄셨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르호보암이 여로보암의 열 지파와 싸움을 하려고 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르호보암을 막으셨다.

그분은 르호보암에게 '너희는 너희 형제와 싸워서는 안 된다. 내가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두 지파는 르호보암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계속해서 르호보암을 지지했으며 하느님께서는 르호보암의 두 지파를 축복하셨다.


르호보암의 예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젊은이들의 조언은 틀리고 연로자들의 조언은 맞다는 단순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자유 의지를 사용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하느님께서 목적하신 것이 실행되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태 진전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결정을 지켜보시고 그것이 그분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조정하실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다음과 같은 회한을 남긴다.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20 여년이 지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지금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의 미숙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여자에 대한 무지를 떠올려 보면,

설령 양같이 순한 그녀를 만났더라도 오래지 않아 퇴짜를 맞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두고두고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못내 아쉬워하며 바라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